그것이 나의 안위를 지키는 게 되었구나.
25.7.11 금 / 삿 5:19-31
> 묵상
이스라엘은 승리했고 드보라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메로스를 지적하고, 야엘을 높이 평가한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23)’
메로스의 주민들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느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전혀 힘 없어 보이는 한 여성인 야엘이 결국 시스라를 죽였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여성인 시스라의 어머니가 나온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30)’
시스라는 당연히 자신의 아들이니 기다린 것도 있겠지만, 시스라를 통해 올 노략물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식을 전장에 보내고도 나의 유익을 추구하는 자,
민족이 전쟁에 참여했지만 나의 안위를 추구하는 자,
그렇게 비겁하고 자신을 챙기는 캐릭터가 나다.
자녀일에 깊이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나의 안위를 챙기를 메로스 같은 모습과
유익을 추구하는 시스라의 어머니 같은 모습이 있다.
괜히 잘못 관여했다 자녀에게 후폭풍 맞을 것이 두려워서 더욱더 피하게 되고 안위를 지키려고 한다.
동시에, 개입하지 않음으로 인해 ‘내 정신이 피폐하지 않는’ 유익을 챙길 수 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내 욕심을 내려 놓으면,
유익이 없고, 안위가 손상된다 하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담대함이 존재할텐데
두려움에 매여 그러지 못하고 있다.
두려움이 크고 강해서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도 두려울 지경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삶, 내 역할에서 궂은 날 마른 날 다양한 날들을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니라
궂은 날을 피하고 싶어 최대한 많은 날들을 자녀로부터, 부부로부터 시선을 피하고 있다.
참여해야 할 전장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기를, 그리고 노략물을 보는 것이 아닌 구원과 생명을 바라볼 수 있길 소망한다.
> 삶
1.두려워 자녀들과 대화하거나 눈 맞추는 것을 미리 피해버리지 않고 눈맞춤하고 대화를 피하려하진 않겠습니다.
2.남편과 부부관계를 두고 얘기하고 기도하는 것
> 기도
주님, 저는 두렵습니다. 전쟁이 싫고 무섭습니다. 특히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려 원망을 받는 자리가 너무 무서워 언제부턴가 전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기 싫고, 혹시라도 말을 걸까 자리를 뜨게 됩니다. 주님,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엄마와 아내의 자리이니 그 자리를 지켜내게 도와주세요. 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기 까지 전쟁같은 하루하루의 시험장에서 오직 구원과 생명을 보며 살고 싶습니다. 오늘 아이들을 보고 웃을 수 있게 하시고 긴장되서 짜증나 있는 상태로 대하지 않게 저를 인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