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_ shyar #1
< 연약함 >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 채 자라왔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걸 본 것은 딱 한번 이였고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엄마와 아빠는 싸우지 않았다. 날 많이 공감해주고 사랑해줬던 아빠는 나와 엄마가 부딪히는 순간이면 늘 엄마편을 들었다. 그럼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은 아빠는 없어지고 엄마편인 아빠만이 나에게 남겨져 있었다. 난 그렇게 엄마편인 아빠를 보면서 엉엉 울었다. 마치 2:1로 싸움을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럴때마다 늘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곤 했다. ‘나도 어른이되면 빨리 결혼해서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을 만날거야.’ 그렇게 자라온 난 정말 남편을 내편일거라 여겼다. 그런데 살아보니 남편은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나와 남편의 에고가 부딪히는 순간에는 당연히 내 편이 아닐뿐더러 타인과 내가 부딪히는 순간조차 내편이 아닐 때가 많았다. 어릴 적 내가 바라보았던 엄마편인 아빠는 아빠와 엄마에게만 해당되었던 거다. 게다가 엄마 아빠가 싸우는걸 보지 못한 채 자란 나는 부부가 이렇게 많이 싸우게 된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결혼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도 그랬다. 어른이 되는 것은 자유롭고 무언가 멋진 일이며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하기 싫은 것들도 해내야 하며 질서속에 끼인채 가정을 위해서 내 욕심대로 해댈 수 없다는 불편함을 가진 것이 어른일 줄 몰랐다. 책임져야 할 것들은 엄청나게 늘어나며 그 책임진다는 것이 이런 무게감이며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도 당연히 난 몰랐다.
한마디로 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부부라는 것에 대해서 현실적인 모습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내가 가진 환상속의 어른과 부부의 이상만 가지며 자라 왔다는 걸 알았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데는 시간이 걸렸고 그 현실에 적응 하는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절대 좋은면만 얘기하지 않는다. 부부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들이 가져오는 고통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그렇게 현실을 적응하기까지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며 난 엄마와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왜 엄마는 내게 어른이 된다는건 힘든거라고 말해주지 않은거지? 왜 아빠는 내게 부부란 때론 죽일만큼 미운 존재가 된다는걸 알려주지 않은거지?’라고..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엄마 아빠의 연약함이 아니였을까? 힘든걸 힘들다고 말하고 슬픈걸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의 연약함.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는 그냥 그 모든 힘든 것 들을 마음 속 어딘가에 꾹꾹 참아내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거 아닐까? 힘들다고 슬프다고 괴롭다고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말해본적 없는 그래서 말할 수 없는 엄마 아빠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엄마와 아빠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엄마,아빠. 힘들었지? 엄마랑 아빠도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며 가정을 지키며 살아 간다는게 많이 힘들었지? 그렇게 힘들어도 내 앞에서 내색하지 않느라 엄마랑 아빠가 너무나도 애쓰면서 살았을 것 같아.’
지금도 나는 때때로 어른인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왜 어른 같은게 되어버린 것일까? 하고서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의 연약함을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것에 감사하기도 하다.
이제 나는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것만 듣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다양한 것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고 수용할 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른여섯에서 서른일곱살이 되어가면서 그저 나이만 먹어가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성장해 나가는 어른이 되기를 애쓰며 살아가는 내가 되자고 다짐한다. 상대방의 연약함은 인정하고 수용하며 나의 연약함은 인정하고 훈련할 수 있는 어른. 성장하는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멈추지 않고 자라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