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미친 듯이 화가 난다.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에도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남편에게 화가 나고 아들에게 화가 나고 나한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에게 화가 난다.
회사에서도 화를 내고 길에서 담배 피우는 인간에게 화가 나고 시도 때도 없이 화가 난다.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옆집 일본여자의 잘난척하는 말투도 화가 난다.
갱년기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남편은 "아니, 원래부터 화를 잘 냈어."라고 답한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날까.
사실 여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문제긴 하다.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되었으니까...
예전에 누가 나에게 화를 좀 다스려보라는 조언을 해서
틱낫한의 "화"도 읽어보고,
감사일기도 써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거기서 거기고 그 순간뿐이었다.
화가 나면 이성은 사라지고 될 대로 되라는 식이고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화가 가라앉게끔 내 속의 모든 걸 발산해야 하고 심지어 불도 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확 터트려버리고 우아아악!!! 소리를 질러버리면 개운함마저 느껴졌다.
실제로 이게 운동하고 땀 엄청 흘린 것처럼 기분 좋은 엔돌핀이 도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악"이 있으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며 여태 고칠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면서 드디어
화를 다스려야겠다고 "깨"닫"게"된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아들 때문이다.
우리 아들...
밖에서 화를 엄청 잘 내고 공격적인 우리 아들.
애가 화를 내는 걸 보니 나랑 판박이더라. 내가 하는 말투까지 똑같아서 섬뜩했다.
모두 나한테 배운 거다.
처음에는 스위스에 와서 스트레스 때문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일본에서도 쌤한테 여러 소리 들어왔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걸 묻고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알아냈다.
가정교육...
바로 가정교육이 문제였다.
가정교육이 잘 안 되어있으니 아이는 학교에서나 어디에서나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 거였다.
내가 그렇게 증오하는 아버지한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배웠듯이 아이는 나한테 공격적인 성향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부부싸움을 해서 집안이 무거운 분위기가 되면 그 불안감을 밖에 나가서 화로 분출해 왔다.
아빠에게 무시당하는 상처받으면서
엄마가 화내며 소리 지르는 것에 겁을 먹으면서
쌓아온 마음의 상처들을 밖에 나가서 화를 내고 소리 지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 책가방에 물을 뿌리고, 자기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던 아이에게 콜라를 뿌렸다.
돌을 던지고 가위로 위협하기도 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고 나면 개운해지는 마음도 든다고 한다.
그것까지 나랑 똑 같 다.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 보이고, 그 모습이 아이에게까지 투영되는 걸 보고
한참을 오열했다.
이런 식으로 애를 키울 자신이 없어짐과 동시에
이걸 끊을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느꼈다.
내가 완전하게 바뀌지 않으면 절대 바꿀 수 없는 굴레.. 올가미.. 카르마..
내가 잘했던 못했던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나는 모든 걸 내 뜻대로 해야만 하는 "통제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옳으니까.
내가 하는 방식이 가장 현명하고 가성비가 좋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안 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 되고, 어이가 없고, 나중에는 일이 진척이 안되거나 틀어져 나에게 영향이 미치면 화가 나서 폭발하게 된다.
그 타깃의 제1번은 언제나 남편이고 아들이며 내가 소속된 모든 집단이다.
나한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중에
한 글자에는 하나의 발음만 나온다고 2년 동안 말해도 "김치"를 "기무치"라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
"김치"는 두 글자라서 두자로 발음해야 한다. 기무치는 세 글자잖아.라고 2년 동안 쭈욱 말해도
"월요이루"라고 하고 "십이"랑 "열둘"을 여태 구별 못하며, "없으신"을 "어부수신"이라고 읽고 있다.
화딱질 난다!
그래서 화가 이빠이 나서 표정이 울그락불그락 해지면 학생은 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이게 과연 화를 낼 문제인가, 아닌가?
여기서 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나는 "인정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사람이 감히 못해!?
내가 가르친 사람은 잘해야 한다. 자격증에 합격해야 한다. 실력이 향상되어야 한다.
이러한 푸시를 나 스스로 가지고 있다.
잘했을 때, 합격했을 때, 뭔가 잘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인정받음을 느낀다.
불합격이라던지 너네 선생이 못 가르치는 거 아니냐 는 말을 들으면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테스트하고 검토해서 승인한 것이 혼방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나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동안 패닉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리버트 하면 되지.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초조하고 자존심 상하면서 나중에는 개발자를 불러서 화를 낸다.
이따위로 만들고 승인받으러 온 거냐고!
왜 그럴까...
그건 내가 "예민보스"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예민보스가 되었을까.
그건 바로... 어릴 때... 아니면 커가면서,
가정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엄마의 화내는 성향, 아버지의 회피하는 성향을 보고 배우고, 불안한 심리상태를 바깥에서 공격적으로 분출하듯이
나도 어릴 때부터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아버지의 언어폭력과
어머니의 방관에서 자라온 탓이 이런 나로 만들었음을 느낀다.
가화만사성
모든 건 가정에서 나오는 법이다.
여기까지 깨닫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럼 이제는 화를 안내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다음 네 가지만 꼭 생각할 것
이 문제가 정말 내게 중요한가?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때는 중요하다고 느껴서 화를 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별게 아닌 것도 사실 많긴 하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한가.
항상 적절하다고 느껴왔다.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게 맞다고 느껴왔지만, 돌이켜 봤을 때 오버인 경향도 있긴 했다.
화내고 내일 또 봐야 할 사람인데 서먹한 적도 있다. 사실 대화로 풀 수도 있는 것들도 있고 못 본 척 회피해도 될 일도 있었다.
이렇게 화를 내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가
사실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화를 내본 적은 없다.
내가 화를 낸 이유는 대체적으로 내 맘속의 화를 겉으로 표출해야 직성에 풀렸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뻥 뚫리는 것 같으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내 화를 풀 수 있을까.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두 번째는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심호흡을 크게 세 번 한다.
그래도 화가 나면 그 마음을 글로 적나라하게 쓴다.
나는 이 방법을 하기로 했고, 아이는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샌드백을 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긍정적인 사고로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사람이라 이게 가능할지 미지수이긴 하다.
한국어 학생이 2년 동안 기무치라고 한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다.
그 학생 잘못인 걸 내가 굳이 개선시키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속의 인정욕을 내려놔야 한다.
통제욕도 마찬가지다.
남편이나 아들이 이것저것 안 하거나 굼떠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에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질책하지 않는다.
애가 국을 쏟고 숙제를 안 해도 내 탓이 아니다.
쏟은 국은 아이에게 닦으라고 하면 되고 숙제를 안 하면 아이가 선생님에게 혼나면 되는 거다.
그거 가지고 내가 화를 낼 필요는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게 있다. 이것만 절대 명심하자.
화를 내서 변화되는 건 절대 네버 결코 없다.
화를 내면 내 얼굴만 빨리 노화되고 우리 아이의 성격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뿐이다.
화는 담배와도 같다. 백해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