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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고백

by 소류

중학교 2학년 겨울, 친구 기다린다고 새마을금고 앞에서 벌벌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2차선 건너편, 저 위쪽에서 한 남자애가 다다다다 뛰어 내려오다가 내가 서 있던 맞은편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간다.


그 건물을 눈으로 따라 올라가 보니 당/구/장

그때의 그 풍경과 그 애의 모습이 30년 지난 지금도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스토커 같지만 결국 그 아이를 수소문해서 이름을 알아내고, 다니는 독서실도 알아냈다.

나랑 동갑이고, 옆 남자 중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소위 날라리였다.


첫 번째 고백은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그 애가 공부는커녕 하도 싸움질만 하고 돌아다녀서

"야!! 왜 공부 안 하는데?? 고등학교는 가야 할 거 아니가?!"라며 따라다니면서 시비를 걸었고

"네가 뭔 상관이야!!!!" 라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내가 니 좋아하니까 그렇지!!!"

라고 큰 소리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게 첫 번째 고백이었다.


그 애는 당황한 얼굴로 뻘쭘 뻘쭘해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그게... 아니.. 이러다가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두 번째 고백은 고등학교 들어가서였던 거 같다.


우리는 고새 상당히 친해졌고 그날은 그 애가 나한테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시내에서 만나게 되었다.

혼자 너무 들뜬 나머지 분위기도 좋고 웬일로 친절하기까지 하기에 또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고백해 버렸다.


그 애의 대답은

"친구로 지내자. 사귀고 헤어지면 못 보지만 친구는 그런 게 없잖아." 라며 거절했고 좀 머쓱해진 나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였다!



"벌써 9시야! 시간 진짜 빨리 가네 ㅠㅠ "라고 화제를 돌리니

"뭐라고? 와~ 시간 진짜 안 가네. 아직도 9시다 ㅠㅠ 일찍 들어가라~."

라며 입 삐쭉 나온 나를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



세 번째 고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다.


그 애는 고등학교 자퇴 후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내가 또 굳이 연락해서 먼 길까지 찾아갔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너는 사귀는 사람도 없냐는 말에 울컥해서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말해버렸다.

"진짜? 왜 지금 말하는데! 축하한다. 나한테 데리고 와봐라. 남자는 남자가 봐야 안다 아이가!"

"근대 걔가 나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니가 뭐 어때서~. 와 금마 사람 볼 줄 모르네. 니 진짜 괜찮은 아라고 내가 잘 말해줄게. 델고온나"

라고 한 후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는 타이밍에 내가 대답했지.

그 애를 빤히 보면서 대답했지.


"바로 내 앞에 앉아있네."


그 말에 그 애는 마시던 음료수를...(진짜 만화처럼) 푸악!! 하고 내쪽으로 뿜어내는 것이 아닌가 ㅠㅠ


이렇게 나는 한 사람에게 세 번이나 고백하고 세 번다 화려하게


차/였/다/


이후로 그 애를 두 번 다시 못 보게 되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실은 마음속으로 수소문중이다.


어릴 적 친구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 애 얘기를 하면 아직도 찾고 있냐고 제발 그만 찾으라고 하지만 진짜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그 애도 내가 궁금할까


여전히 나는 나의 오래된 첫사랑 그 애가 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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