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면접보게 된 이유
IT 쪽에서 거의 20년간 일해서 스위스에서도 일하고 싶었다.
(참고로 일자리는 jobs.ch에서 찾으면 된다.)
그런데 PM이나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분야는 안될 거 같고, 개발은 안 한 지 오래되었고,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테스트(QA)로 하기로 해서 이력서를 10곳 정도 보냈다.
영어가 메인인 곳은 아예 지원도 안 했고, 대게 독일어가 메인이고 영어도 할 줄 알면 좋다. 이런 쪽으로 지원했다.
거의 다 서류부터 탈락이다.
나이 때문인가?
그러다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온라인으로 면접 본다고 해서 DOC파일로 예상질문들을 적어두고 연습도 많이 했다.
여차하면 보고 읽어야지 싶어서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수요일로 면접날을 잡고 이것 때문에 한국 가는 비행기도 일부러 일요일로 끊었는데, 면접 10분 전에 연락 와서는 다음 주로 연기하잖다. ㅋ
"일요일에 한국 간다."
"어차피 온라인이니까 괜찮지? 그럼 한국시간으로 17시 어때?"
"콜"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한국에 가는 건데 ㅠㅠ
아무튼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면접 봤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나는 한국사람이고 일본에서 일본어로 오랜 시간 동안 일했고... 블라블라... 테스트는 이런 거 저런 거 했고, 마지막에 일한 회사에서는 근태관리시스템을 만들었는데 그때 자동화시스템도 만들었고....."
반응도 엄청 좋고, 흥미로워했으며, 예상질문 내에서 물어봐서 꽤나 순조로웠다.
면접관은 자기 얘기하고 질문 있냐 하길래, (사실 별로 없었다) 억지로 짜내서 팀원은 몇 명이고 어떤 툴을 쓰냐고 물었다.
면접관이 대답했지만 사실 거의 못 알아들었다.
예상 못한 질문 역시 거의 못 알아들었다.
돌려서 말하면 못 알아들어서 몇 번이나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다.
예를 들면
"급여는 얼마를 원하냐?" 이러면 알아듣지만, "요구는 어떻게 되느냐?" 이러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또 "무언가를 위해 3년 후에 어떻게 할 건지, 3년 동안 어떻게 했는지" 물었는데 이런 것도 못 알아듣고 헛대답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영어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라길래 영어로 꾸역꾸역 대답했는데 엉망이었을 거다.
"계속 영어를 안 썼고 지금 너무 긴장해서 즉흥적으로 말이 안 나온다. 하지만 독일어만큼 하는 거 같다."
"우리는 사실 대화할 때 스위스어가 메인이긴 하다."
"미안타. 스위스어는 거의 못 알아듣는다."
"이해한다."
"스위스에 온 지 얼마 안 된 거 치고 독일어 잘하네."
"감사하다." (적은 거 읽었으니까 그렇지...)
막바지가 다 되어가자
"언제 돌아오냐?"
"8월 13일에 돌아간다."
"언제부터 출근가능하냐?"
"19일부터 바로 가능하다. 하지만 9월부터 하면 좋겠다."
"9월부터 괜찮다면 19일에 우리 회사로 직접 와서 팀원들이랑 테크닉얘기도 하고 회사분위기도 보면 좋겠다."
"감사하다."
이 정도 말하고 나니 거의 합격한 거 같아서 혼자 김칫국부터 마셨지만 한편으로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현타가 세게 와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이틀 후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메일이 왔다.
"Wir haben Deine Unterlagen sorgfältig geprüft und wissen die Zeit und Mühe, die Du in Deine Bewerbung und in das Gespräch investiert hast, sehr zu schätzen.
Leider müssen wir Dir mitteilen, dass wir uns in diesem Fall für andere Kandidaten entschieden haben. Auch wenn Deine Qualifikationen beeindruckend sind, entsprechen sie derzeit nicht ganz unseren spezifischen Anforderungen.
Wir wünschen dir viel Erfolg für deine Stellensuche."
"우리는 당신의 서류를 주의 깊게 검토했고 당신이 당신의 신청서와 대화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에 감사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경우에 다른 후보들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이다. 귀하의 자격은 인상적이지만, 현재 당사의 특정 요구 사항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다.
취업에 성공하시길 바란다"
장난치나.
새벽 1시에 메일 보고 나니 더 이상 잠이 안 왔다.
에이...ㅠㅠ
예전에 취리히대학병원 의약품 데이터베이스 쪽으로 지원했던 게 생각난다.
"40%-20%만 일해도 된다. 니 자리는 여기가 될 거다."
사무실까지 들어가서 시스템도 보여주고 거의 될 거처럼 말하더니 2-3일후에 떨어졌다고 연락받았다.
아니, 얘들은 안될 거 같은데도 왜 희망을 주지?
좋게 좋게 생각하자. 이것도 아마 무언가를 위한 예정된 길일지도 모른다.
내가 예전에 스위스에서 모든 면접에서 떨어졌기에 일본 갔던 거처럼.
스위스에서 뭐라도 일을 했다면 일본에 안갔을테지.
분명 탈락해야 하는 빅픽쳐가 있을거다!
면접 후기 : 말도 재대로 못 알아듣는데 일하겠다는 나 스스로가 가상타. 맥도널드에서 일하면서 좀 더 독일어에 자유로워지면 다시 IT 쪽으로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