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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류 Oct 08. 2024

[서평 15] 허삼관 매혈기 - 위화

츤데레!

인간미!

내가 본 허삼관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사람이다.


맨날 부인(허옥란)에게 욕하고, 투덜대고, 자식들에게도 욕하는데 사실은 순박하고 마음이 따뜻한 게 느껴진다.


허삼관의 "아버지로서의 성장기"라도 봐도 될 듯하다.


일락이 국수사건만 봐도 일락이를 등에 업고 그리 욕을 하면서도 "아버지 우리 국숫집 가는 거예요?"라니까 온화한 목소리로 "그래."라고 한다.


처음에는 피를 판 돈은 하소용의 아들인 일락이에게는 쓸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나중에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는 자신의 목숨과 바꿔도 될 정도로 수어번 매혈을 해서 살리려고 한다.


대약진운동과 문화 대혁명시대의 상황도 해학적으로 다룬다.


하루에 옥수수죽을 두 번밖에 못 먹어 거의 두 달을  굶주리는 아이들과 허옥란에게 상상으로 요리를 해서 주는 내용도 너무 신박하다.


굶주림이 안타까운 허삼관은 매혈을 해서 가족들에게 국수를 사 먹인다.


매혈(買血)...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헌혈과 다른 건가? 싶었는데 매혈은 피를 돈을 주고, 그것도 꽤 큰 돈을 받고 파는 것을 말한다.


과거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나 메이지 시대에 일본 역시 이런 것이 있었다.


지금 시대는 헌혈이지 매혈은 아니지만, 퍼뜩 "장기매매도 충분하겠구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허삼관은 집안에 큰돈이 필요할 때마다 피를 팔았고, 그 돈으로 어떻게 근근이 생활을 유지해 갔다.


나는 허삼관이 피를 뽑다가 죽는 건 아닐까, 일락이나 혹, 다른 아이들이 죽는 건 아닐까 마음 졸이면서 읽어 갔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화는 일본의 [오쿠다 히데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위트가 차고 넘친다.


너무 웃긴 게 많아서 키득키득 웃은 부분도 상당하다.


허옥란이 아기 낳으면서 남편 호로자식 개자식  웅덩이에 처넣을 자식 나를 힘들게 하고 자기만 히히낙락거린다며 욕을 욕을 하는데 이를 보던 의사가

"둘을 낳아도 저 난리군."

이라는 말에 현으로 빵 터졌다.


작가는 책의 서론 부분에 이런 말을 한다.


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작품을 읽는다.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도서처럼 뭔 말인지 모를 애매한 묘사 따위도 없다.


눈물이 그의 얼굴 위로 뒤엉킨
그물처럼 흘러내렸다.
마치 유리창을 때리는 빗물처럼,
금방이라도 깨질 듯 금이 간 그물처럼,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뭇가지처럼,
논밭에 대는 물처럼,
도시 곳곳으로 뻗어나간 길처럼,
눈물은
그의 얼굴에 커다란 그물 하나를
짜 놓은 듯 했다.


읽어보라.

하나하나가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묘사들 뿐이다.


미국문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거나, 쓸데없이 추상적인 묘사가 많은데

중국 문학은, 특히 위화는 일상이 녹여있는 표현이 너익살스럽고 자연스러워서 한 줄 한 줄이 감동이고 리얼이다.


그렇게 매혈하며 살아온 허삼관은 나이가 들어 늙고 이가 빠지고 백발로 매혈을 하러 가고 깔끔하게 거부당한다.


"당신같이 늙은 사람의 피를 뽑을 수 없다."


자신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를 뽑으러 왔는데 할 수 없다니....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 자식 삼 형제도 모두 장성해서 가정을 꾸렸고 부부 둘만 살면서 돈도 부족함이 없기에 굳이 매혈을 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


허옥란은 그런 허삼관을 달래 본다.


"우리는 가진 건 돈 밖에 없는데 왜 피를 팔려고 했어요?"

"돼지 간볶음과 황주가 먹고 싶었다."

"그럼 돈 내고 사 먹으러 가요."


그리고 허삼관은 여태 먹은 수많은 돼지 간볶음과 황주 중에서 이날 최고로 맛있게 먹으며 이 책은 마무리된다.




2015년 한국식으로 각색해서 하정우, 하지원 주연의 영화[허삼관]이 개봉되었다.

요약판만 보긴 했지만 뭔가 이게 아닌데 싶었다.


배경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이고, 일락이가 병에 걸린 것도 문화 대혁명 때 시골에 끌려가서 노동한 게 이유인데 여기서는 생부인 하소용과 같은 병인 듯 이끌어가는 것도 엥? 스러웠다.


감독의 해석에 조금은 실망했고, 네이밍 좋은 배우들만 앞세운 것 같았고, 뭘 말하려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특히 책에서 주는 해학적인 감동과 재미, 허삼관이 아버지로써 성장하는 과정, 부자의 끈끈한 정, 형제간의 우애, 부부싸움 안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점 등이 재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이 하정우라니 ㅠㅠ 그냥 연기만 하세요




위화의 책 [인생], [제7일]도 다 너무 좋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세계적인 작가임에 분명하다.


[인생]은 영화로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찾아보니 원작이 있었고, 그 후에 [제7일]을 읽으며 심장이 쫄깃해졌다.


저 중에서 뭐가 가장 좋았냐고 하면 개인적으로 [인생]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허삼관 매혈기]가 인기 있다고 한다.



물론 톱 클라스의 레벨이긴 하지만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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