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역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어.
오래 전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이 사람은 천재다! 보통이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 범접할 수가 없다!
고 생각했는데 노벨문학상이라니.
받아 마땅합니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다채로운 한글의 표현을 감히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들 하지.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한강의 책들은 그 번역할 수 없는 표현들을 뛰어넘었다는 뜻이잖아?
"갑"이 뭔가!!
내가 굳이, 애써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지 않고 내 언어로 조잘대도 지들이 알아서 번역기를 돌려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갑 오브 갑"이 아닌가!
슬퍼하고 분노하며 마음 무겁게 이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끊임없이 흐느끼며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담담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봤을 때도,
"쿠데타가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했고,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권이 바뀌고 있는데...,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감정이 흔들려야 하나?
영화자체만 봤을 때, 그 후 전두환의 만행을 모른다는 가정하에, 내가 본 [서울의 봄]은 그냥 좀 식상한 신파극에 지나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도 사실 마찬가지다.
내가 왜 이렇게 감정이 매말랐냐면,
국민학교 저학년 때 읽은 만화책이 [삼청교육대]였고,
이휘소가 다리 촉대뼈에 뭔가를 넣어서 귀국했는데 그것 때문에 암살당했다는 뜬구름같은 얘기를 어린 나이에 듣게 되었으며,
실미도로 보낸 간부급 군인 중 한 명이자, 전두환의 개가 내 친척이라는 복잡한 사실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 버렸던 터이다.
그런 와중에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수많은 [김대중]에 관한 책들까지...
나는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들려오는 너무도 많은 충격적인 사실들 속에서 자라왔고, 아닐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진실이었기에, 이 책 하나로 슬퍼하거나 분노하기엔 내 마음과 머릿속이 이미 순수함과 너무도 멀어져 있었다.
그런 감정으로 무덤덤하게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확 하고 쏟아진 부분이 있었다.
사랑채에선 남매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직하던 음성이 조금 높아지는가 싶으면 누군가가 다정히 달래고...,
[......]
잠들 때까지 너는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와 달래는 소리,
낮은 웃음소리를 점점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상상이 간다.
부모를 여읜 남매가 사랑방에서 알콩달콩 속삭이며 대화하는 모습이.
누나가 두 번 쓰다듬어준 내 얼굴,
누나가 사랑한 내 눈 감은 얼굴
더 많은 기억이 필요했어.
더 빨리, 끊어지지 않게
기억을 이어가야 했어.
이 부분에서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서로 아껴주는 남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사랑하는 동생의 눈을 감겨주는 누나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1장에서 영혼얘기가 왜 나오나 싶었는데, 2장에서 바로 죽은 정대의 혼이 "나"가 되어 1장부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전개였다.
동호가 "너"고, "나"가 정대였던 것이다.
아!!! 다들 이렇게 죽어간 거 였구나 ㅠㅠㅠㅠㅠ
5.18에 관련한 책은 사실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 내가 추천하고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품을 적어보겠다.
[김철수씨 이야기] - 수사반장 웹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소설
[26년] - 강풀 웹툰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신해철의 70년대에 바침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한때 유시민이 수감복입고 감옥에 끌려가는 사진이 너무 멋있어서 스.샷해서 배경화면으로 해 놓은적도 있었다.
전두환의 개들아!
책을 읽으서 여러작품들이, 이미지가, 상황이, 연출이 눈앞을 스쳐갔다.
한번도 가본적 없는 전남대, 도청, 광주시도 친숙한 듯 눈앞에 스쳐갔다.
두려웠을 것이다.
오금이 저릴만큼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도청으로 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내 필름에 기록된 모든 것은 내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 피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ㅡ 위르겐 힌츠페터(당시 5.18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러 온 서독의 기자)
나무위키 발췌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것이
서서히 미모됩니다.
피해자는 눈감는 그날까지 피해자다.
살아남았다는 치욕을 느끼면서
그렇게 눈감는 그날까지 피해자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누가 모독을 받아야 하는가.
전두환은 그렇게 팔자좋게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모독만땅 채워서 디졌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