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페이지가 넘는 걸 "겨우" 다 읽었다.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할 게 없어서 읽기 시작한 제노사이드
단숨에 반정도 읽었다. 그 후에 시간도 없고, 바쁘다는 핑계로 접어놨다가 4월에 되어서야 다시 읽었다.
와! 다 읽었다.
두 번이나 감탄하는 이유가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 끝나고 완전 뒷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자문도 엄청 많이 구했고, 참고문헌도 너무 많고 다양해서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하긴 이렇게 방대한 전문지식이 들어있는 "소설"을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없을 거다.
실제로 혼자 다 썼다면 이 작가는 박사학위를 몇 개나 딴 거냐고.
약학, 의학, 과학, 군대, 전쟁, 정치, 문화, 일본사, 세계사, 인류학, 돌연변이.... 등등 모든 학문이 들어있는데 하나같이 전문지식을 요하는 것들 뿐이다.
얄팍한 지식으로 쓴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읽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걸 조사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엄청난 참고문헌과 자문이라니..!
나는 참고문헌이라고 해봐야 고작 유튜브 몇 개 보고 관련 서적 보는 게 다인데...., 내 책은 불태워 도랑에 던져버려야 하는 심정이다.
제노사이드란 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대량 학살하는 행위다.
떡하니 떠오르는 게 유대인말살 홀로코스트라 하겠지만 사실상 르완다학살, 난징대학살등 수많은 제노사이드가 지구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났었다.
그런 내용을 전범국인 일본인작가가 거침없이 써 내려갔고 같은 일본인용병 "믹"의 거친 행동에 동료인 예거에게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저렇게 국뽕을 하나도 안 넣고 쓸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외국물 좀 먹었더라.
이 책은 세 파트가 교환하면서 플롯을 형성한다.
1. 백악관 : 대통령, CIA, 각 정보요원, 특수작전, 정부의 행정시스템, 그들의 회의 등을 마치 해킹이라도 한 듯이 역동적이고 완벽하게 그려나간다. 저 중에 한 가지만 쓰려고 해도 겉핧기밖에 안되는데 죄다 집어넣고도 흔들림이 전혀 없다. 필시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조차 이 정도로 쓰지는 못할 거다.
2. 용병 : 네 명의 용병이 피그미족인 바이러스 생명체를 죽이는 임무를 받고 아프리카로 가지만, 결국에는 초인류 누스(바이러스 생명체라고 알고 있는...)와 그를 지키는 인류학자를 구출해 낸다. 여기서도 지리적, 밀리터리면에서 어느 하나 손색이 없다.
3, 일본대학원생 겐토 : 내가 아는 도쿄가 배경이라 눈에 확 그려졌다. 실험실로 정한 아파트도 안 봐도 훤한 모습이고, 대학에서 공항까지 오토바이로 한 시간 걸린다는 것은 좀 의아했지만 뭐 가능하겠지 이해는 되었다.
겐토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신약을 개발하게 되고, 그를 한국인 "이정훈"이 조력한다.
이 부분에서는 의학, 약학, 과학(DNA)등에 대한 지식이 방대하게 나온다.
1,2,3중 한 파트의 한 분야만 써도 머리 깨지는데 저 많은 걸 백과사전처럼 다 집어넣고도 여유만만 그 자체다.
다 댐벼!
읽다가 알게 된 지식이 상당하다.
민간군사기업 용병은 돈을 엄청 버는구나. 그 가난했던 스위스도 용병으로 꽤나 돈을 벌었겠군. 싶었다.
그리고 음부티(Mbuti)라는 민족이 나오는데 M으로 시작하면서 바로 또 자음(b)이 오는 게 신기했다.
음바페(Mbappe)도 그렇고 어떻게 자음 바로 다음에 모음 없이 바로 자음(b)이 올 수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M 다음에 바로 자음(b)**이 오는 이름은 주로 프랑스어권 또는 아프리카계 언어 이름에서 나타나는 패턴이라고 한다.
Mbala, Mboma, Mbenga 등 주로 콩고, 카메룬, 앙골라 지역에서 사용되는 성씨라고 한다.
이 작가는 이런 디테일한 것 까지도 조사해서 이름 붙힌게 틀림이 없다.
등장인물을 그냥 만든 게 아니다. "이정훈"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한 끝에 이정훈이 탄생한 거다.
콩고 남아공, 버뮤다삼각지대를 실제로 답사를 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게 철저한 분석을 했을거다.
이 책의 핵심은 방대한 전문지식과 경험과 조사와 문헌과 플롯이 어느 하나 손색없이 완벽하다는 거다.
그러나 이 책의 단점은 독자가 어느 정도, 얄팍하게나마 지식이 있지 않고서야 가볍게 읽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부분도 많고, 내용면에서 어려운 부분, 깊이 들어가는 부분도 꽤 있다.
관심 없거나 지식이 제로라면 읽다가 지겨워지는 부분도 있다.
나 역시 모르는게 있어서 읽기를 멈추고 인터넷에 찾아봤던 부분도 한두개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사피언스"나 "총 균 쇠"같은 인문서가 돼야지 "소설"이라 하기에는 음..., 너무 지식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
이 책을 내 주변 지인중 누구에게 추천 가능할까?
어쩌면 몇 페이지 열다가 욕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독일드라마 "다크"를 보라고 했다가 "조금 봤는데, 어디서부터 재미있어져요?"라는 말을 들었기에...ㅡㅡ;;;;)
책 앞 부분에 원주민을 사냥해서 먹는다는 게 나온다.
이들에게는 인류애라는 게 없나? 아니면 정말 원주민을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다가 돼지고기를 먹는 나로서 돼지도 사실 형상만 그러할 뿐,
“사실은 인간의 다른 변형이야."라고 한다면 그제야 토하고 난리 부릴 건 아니지 않나.
인간이란 동물은
원시적 욕구를
지성으로 은폐해서
자기 정당화를 꽤 하는
거짓으로 가득 찬 존재다.
무서운 것은 지력도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이렇게 철학마저 들어가 있으니 읽다가 머리 깨짐 주의 (도대체가 없는 분야가 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