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어느 좋은 날.
친구와 둘이 지리산 둘레길로 떠났습니다.
추석연휴의 시작이라 그런지 사람도 꽤 많았지만 발걸음 가볍게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점심 무렵이 다가오자 배가 고파져 둘레길 중턱의 허름한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자 했더랬죠.
그곳에는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 두 분이 아주 바쁜 일손으로 꽤나 허둥지둥하고 계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연휴의 시작인 데다가 쾌청한 날씨에 사람이 여간 많은 게 아니었거든요.
"할머니~ 비빔밥 돼요?"
라고 손님이 물으면
"되지~되지~."라고 대답만 하시고는 허둥지둥하시는 모습.
테이블을 치우기는커녕 설거지는 산처럼 쌓여있어 수저나 식기류는 턱없이 모자라고, 주문은 쇄도하다 보니 손님이 각자 밥을 퍼서 비빔밥이라도 만들어 먹여야 하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거 안 되겠다. ]
저희는 동시에 그렇게 생각하고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 설거지합니다."
저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주방싱크대로 쪽으로 들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이며 수저며 종기며 컵이며 이것저것을 닥치는 대로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테이블을 치우며 바삐 움직이고, 저는 설거지를 하고…
그렇게 얼마간 했을까요.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 아니 세 시간쯤 지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팔다리는 후들후들거리고 손톱 끝도 부러져있었죠.
그렇게 해도 아직도 설거지거리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상황이 좀 진정되니 할머니께서는 당신들 드시려고 한 삐쩍 말라붙은 누릉밥과 다 식어빠진 돼지김치찌개를 주시고는
"힘들지? 밥 먹어야지~."
하시며 엉덩이 토닥거리십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국수 맛있게 만들어줄 텡게. 그거 먹고 있어 잉."
하십니다.
구석자리 테이블 한자리를 차지해 후덜 거리는 손으로 우걱우걱 처묵처묵 먹던 이 꿀맛 같은 식사는 얼마를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그렇게 공짜밥도 얻어먹고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시.
당일여행계획이었던지라 서둘러 움직이려는 우리에게 만 원 한 장을 쥐어주십니다.
이러려고 한 거 아니라고 극구사양하는 우리에게 만 원 한 장을 더 쥐어주시려고 하십니다.
고맙다며 손녀 같다며 다음에는 우리 집에서, 내 옆에서 자고 천천히 돌아가라고 연거푸 말씀하시는 할머니에게
"저희 잊지 마세요 꼭 다시 올 거니까요."
라는 말을 남기고 뒷걸음질로 손을 흔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그렇게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가끔 그날을 생각하며 웃음도 나고 즐거운 기억이 새록새록 일어나 다시 또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히 듭니다.
그렇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렇게 행복한 여행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