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개인전, 태양을 입고 발아래 달을 두고, 2025
한지가 작은 조각으로 찢겼고, 수없이 덧붙어졌다. 빚어낸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먹물이 번진 자국, 본래 종이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결, 가느다란 섬유들... 시각과 촉각이 엉겨 붙는다.
한지의 맑고 투명한 재질은 빛을 머금었다. 먹물이 흘러 들어가 그 빛을 되찾아준다. 빛이 어둠을 물리치는 상황도 있겠지만, 어둠이 빛을 되찾아 주는 상황도 있다.
그 투명한 재질로 인해 존재는 비어 보인다. 유령 신부처럼 서글프고 수줍다. 하지만 달빛은 자애롭다. 찢긴 자국과 얼룩을 보듬어 주고, 존재의 윤곽을 드러낸다. 달빛은 강력하다. 어떤 것들은 달빛 아래에서 경계를 초월해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살갗에서 정성스럽고 치열한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내부의 공허함을 물리치고 있다. 뿌리가 없거나 약하다고 해도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호소하는 것 마냥.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두 아이, 완벽한 가족의 형태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4인 가족이다. 어느 먼 시대에서 거슬러 온 듯 이들의 자태와 복장이 낯설다.
그 가족의 일부이기에 슬프고,
슬프지만 강인한 모습이다.
세상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과 그들이 꾸었을 단 하나의 꿈, 부서지고 흩어진 줄 알았던 그 꿈이 달빛을 받으며 찬란하게 펼쳐져 있다. 애도는 삶을 향한 강력한 의지이다.
태양빛은 잔인하다. 그 빛 아래에서 들춰지지 않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강렬한 빛 아래에서 부끄러운 모든 것은 타버리고, 민낯은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 껍데기를 불태우고 투지를 발휘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한번 거듭난다. 그리고 그날의 달빛을 맞이한다.
<전시정보>
김명진 개인전 _ 태양을 입고 발아래 달을 두고 _ 2025.1.15-2.23
갤러리 밈 _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작가소개>
김명진 _ 세종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021년과 2020년 갤러리 담에서 개인전 <기뻐하라>와 <축제>를 개최하였고, 2018년 인디프레스에서 개인전 <다른 나라에서>를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