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한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중고거래를 많이 한다.
주로 Craigslist에서 사고팔고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거래앱이 있다.
간단한 전자기기부터 명품백, 옷, 주방용품 외에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거래된다.
문제는 거래자들끼리 만나서 돈과 물건을 교환해야 하는 장소가 어딘가이다.
집 앞까지 오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처럼 정보, 정보 하는 시절에는 좀 찜찜하다.
그래도 소파 같은 가구를 팔 때는 건장한 두 사람이 트럭을 가져와서 사가야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신발을 신은 채 저벅저벅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섬찟하기도 하지만 아이템에 따라서 어쩔 수가 없다.
터키에서 어떤 사람은 휴가 갔다 오니 집안의 모든 가구와 물건들만 아니라 먼지 한 톨도 안 남고 사라졌다고 한다. 앞집, 옆집에 물어보니 이사 가는 줄 알았을 정도로 트럭을 대 놓고 카펫까지 둘둘 말아서 트럭에 실었다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캐나다야 아직도 순진하고 고지식해서 그런 수법까지야 없지만.
랩탑이나 이어폰 같은 것은 제3의 장소에서 만나면 되어서 맥도널드나 스타벅스 앞에서
만나면 손쉽다.
취업난과 고물가, 감히 집을 구입할 엄두도 못 내는 미쳐버린 집값 때문에 암울한 현실이 모두를 짓누른다. 알뜰 구매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밴쿠버에서도 정부에서 중고 거래 시에 만나는 장소는 밝고 불빛이 많은 곳,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북적이는 데를 택하라고 한다.
그러다가도 강도로 돌변할 수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고.
물건 거래와는 다르지만 생활고 때문인지 희한한 갈취범들도 생겨나고 있다.
다른 주의 번호판을 단 차량에 아기까지 태운 여자가 멈춰서 차창을 내리고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보는 척하면서 할머니가 얼굴을 가까이하면 목걸이를 탈취하는 떼강도 사건이 일어났다.
좀도둑이라도 당한 사람에겐 얼마나 충격이 클지.
예전에 터키에 있을 때 유명 쇼핑센터에서 한 여자가 행인에게 어머니에게 선물할 향수인데 향이 어떠냐고 맡아보라 했다가 실신한 사람을 지탱해서 데리고 사라졌다고.
인신매매와 장기적출이 한창 뉴스거리였을 때 그렇게 장기적출 당할 수도 있다는 뜬소문이 있었다.
이같이 각종의 신출귀몰한 범죄 수법에 대항해야 하는 사람들은 피곤할 뿐만 아니라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으니 점점 불안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경찰서는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그 외의 몇몇 시의 경찰서 내에서 한 장소를 지정해서 그곳에서 자유롭게 중고 물품 거래를 하게 해 놓았다.
빵빵한 CCTV와 순간적인 범죄행위에 즉각 대비할 경찰인력까지 완벽하니 불순한 생각을 원천 봉쇄한 안전지대이다.
얼마나 이용하는지는 모르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좋다. 일단 안심이라서.
이혼한 가정에서 아이들이 엄마네 집, 아빠네 집을 번갈아 가면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이혼가정은 비록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해도 EX 자녀들의 왕래를 옹졸하지 않고 쿨하게 대한다. 간혹 중독자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상사가 있을 수 있으니 경찰서에서 이렇게 어느 한쪽이 불안할 경우에는 아이들을 전 남편이나 전 부인에게 보낼 때 인계 인수할 장소로 이용하라고 한다.
북미에서 노인과 아이들 우대로 유명한데 특히 아이들 보호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요란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엄마집, 아빠집으로 갈 때 납치처럼 보이거나 학대의 요소가 있을까 봐 경찰서에서 보호차원으로 시민들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세금으로 만든 사회기관이 이렇게 시민 생활 전반에 걸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주니 고마운 생각이 든다.
동네마다 넓은 공원과 나무가 많아서 해가 나는 날에는 무조건 집 앞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오늘도 12월 치고는 봄날씨같이 푸근해서 공원에 가서 걷기 시작하는데 적막강산 같은 조용한 동네에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멈칫 서서 옆을 보니 저쪽에서 배낭을 멘 남자가 내 쪽으로 뛰어오고 경찰 두 명이 그를 향해 멈추라고 소리치며 좇아오고 있었다. 총은 안 들고.
거의 내 앞으로 뛰어 오다가 공원 트레일의 한쪽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개울 하나 사이로 내 앞에서 멈추더니 경찰 쪽으로 돌아서서 멈추었다. 경찰은 엎드리라고 계속 소리치는 것을 듣고는 오던 길로 다시 빨리 걸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경찰차들이 몇 대가 서 있는 것을 보니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게 확실했다.
만약 개울이 없었으면 나에게 달려들어 나를 인질로 잡을 수도 있었...
하도 영화를 많이 봐서 나는 이미 그의 팔이 내 목을 옥죄는 상황을 상상하면서
종종걸음으로 집까지 왔다.
세상 어느 곳에도 안전한 곳은 이미 없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