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했던 TV 드라마 중에서 데뷔때 부터 이미 늙어버린 '피터 포크'라는 이탈리언 배우가 등장하는 '형사 콜롬보'라는 수사물이 있었다. 후줄근한 코트에다 잘 빗지 않은 머리 때문에 구질구질한 인상을 주니까 그가 LAPD에서 제일 유능한 수사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늘 무시 당하고 구박을 받다가 나중에야 알아보고 설설 기는 경찰들. 새벽에 나오면 삶은 달걀을 차의 본넷에다 톡톡 쳐서 까먹으며 궁상을 떠는 그의 마지막 질문에 여지없이 걸려드는 범인들의 낭패한 모습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날렸었다. 그중에서 마말레이드에 의한 독살 사건을 수사하던 콜롬보가 독이 들어있지 않은 마말레이드를 먹고 독이 든 것처럼 쓰러지면서 독살범의 반응을 살피는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에 홀딱 반했었다. 총 한번 안 쏘아서 총알값도 안들어간 대표적인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노숙자 쉘터에서 목격자를 만나러 갔을 때 봉사하던 수녀 한 사람이 노숙자인 줄 알고 친절하게 대할 정도로 허름한 차림새라 '언더커버'수사로도 손색이 없었다. 지금처럼 캡션이 없던 시절에 '최응찬'이라는 성우가 더빙을 해서 실제보다 더 맞는 이미지를 찰떡같이 재연해서 한국형 콜롬보를 탄생시킨 인기 만점의 수사물이 있었다.
주인도 없는 수사 현장에서 졸고 있는 콜롬보
언더커버 수사하면 북미가 역대급이다. 뉴욕이나 시카고에 가 보면 넓은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인 차에 험상궂은 흑인들이 달려들어서 차창을 대충 쓱쓱 닦고는 돈을 요구하는 것 때문에 기겁을 한다. 미국에 비해서 캐나다는 그런 '스퀴즈 보이'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밴쿠버에서도 다운타운에 가면 그런 젊은이들이 가끔씩 눈에 뜨인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그들 중에 경찰이 섞여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벨트를 했나 안 했나 체크를 하려고 그런 형태의 근무를 한다나.
안전벨트를 했는지 안 했는지 제일 잘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적발을 하겠다는 경찰의 의지를 꺾을 이유는 없지만 사실이라면 그 발상 자체가 좀 유치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요즈음에는 스마트폰을 운전 중에 못 하도록 500불이 넘는 벌금을 부과하고 앞으로도 더 올릴 기세이니 다들 조심하고 있지만.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L(learner)' 또는 'N(novice)를 붙인 차를 탄 경찰이 자기 차보다 먼저 가는 차를 과속으로 잡기도 한다고. 전에는 그런 사인을 붙인 차들을 보면 새로 운전을 배우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가 천천히 가면 '나도 처음엔 저랬었지'하면서 비켜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적한 도로에서 신나게 달리다가도 그 표시가 있는 차가 나타나면 혹시나 경찰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휙 스쳐 지나가면서 그 뒤를 느긋하게 따라가곤 한다. 괜히 잘난 척하면서 느리게 가는 생 초보차가 답답하다고 빠른 속도로 추월했다가 과속 티켓을 받을 수도 있으므로.
이렇듯 경찰들이 시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가장을 하고 법규를 어긴 사람들을 잡아 내려고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한다는 말이 도니까'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차가 신호대기 중인데 어디선가 꾀죄죄한 여자가 나타나서 음식 살 돈이 없다는니, 차비가 없다느니 하면서 잔돈을 달라는 종이를 들고 차를 기웃거리면 일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혹시 여자 경찰이 아닌가 하고.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어떤 의사한테 진찰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묻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마침 패밀리 닥터가 아니고 스페셜 닥터인데 하도 불친절해서 그러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약을 처방받았는지 꼬치꼬치 캐 물었는데 마침 날짜를 기록해 놓아서 자세히 알려 주었단다.
어떤 컴플레인이 들어가서인지 아니면 랜덤으로 크로스 체크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캐나다 정부가 허술한 것 같아도 이럴 때는 정이 떨어질 정도로 치밀한 것에 깜짝깜짝 놀라고 긴장이 된다. 피 같은 세금이 정부 손에 들어가서 줄줄 새지 않는 것 같아 안심이 되면서도 '빅 브라더'의 감시 속에 살고 있는듯한 약간의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나 깨나 경찰 조심에다가 일단 다 믿어주지만 거짓말이 드러나면 뼈도 못 추릴 정도의 불이익과 벌금을 당당하게 주는 이 사회에서 움치고 뛸 수도 없을 정도로 숨이 막힌다. 그것을 잘 따르는 시민들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촐하게 살아가는 깨끗한 사회를 누리는지도 모른다.
한 동안 밴쿠버에 일본 갱들의 자녀들이 많이 유학을 와서 그들을 보호하느라고 범죄가 없었다는 루머가 돌았었는데 아무렴 그것 때문이었으려고. 만에 하나 위에 열거한 것이 뜬소문이 아니고 사실이라면 촘촘한 그물에 잡힌 물고기 같아서 답답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면 그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하지 말라는 제약이 많고 그것을 잘 지키는 것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면 보이지 않는 양심까지 자발적으로 작동한다면 한층 더 제대로 된 건강한 사회가 될지 모른다.
또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요즘에 소시지나 베이컨에 대해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유명한 소시지 회사의 소시지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고 난리를 쳐서 매출이 줄어들 것이 눈에 확실히 보이는데도 회사는 사과보다는 느긋한 태도를 보였었다.
'이미 어릴때 부터 길들여진 우리 제품의 맛 때문에 급격한 매출 감소는 없을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나쁜 음식도 중독이 되면 사 먹는다라는 그 배짱은 어디서 근거한 것 인지.
어이없는 그런 멘트때문에 불매 운동을 벌여도 될까 말까한데도 그 제품이 지금도 버젓이 잘 팔리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