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이 많이 사는 빈민촌에서 자라나면서 가난 속에서 허덕이는 삶의 좌절을 랩뮤직으로 풀던 '지미'. 백인 래퍼인 '에미넴'이 자신의 삶을 영화로 만든 '8 mile'은 어둡고 암울한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보는 슬픈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엄마는 자포자기한 채로 'white trash'로 살아가고.
에미넴 자신도 실제로 흑인들의 전유물인 랩뮤직을 하면서 'M & M'상표가 붙은 새알 초콜릿처럼 겉은 다른 색깔이지만 속은 까만 초콜릿처럼 흑인의 정서를 닮았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백인이면서 흑인을 이해하고 흑인 친화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양인이면서 백인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30여 년 전에 북미로 이민을 온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동양인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인지 아니면 넘치는 교육열 때문이었는지 집에서도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못하게 한 가정도 많았다.
순수한 어린아이들은 영어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좋아서 영어만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얼굴이 노랗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에서 거절당했을 때에 백인이 되고 싶었다는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위 '바나나'라는 호칭처럼 겉은 황색인종인데 속은 백인과 같은 사고와 정서를 지니고 살면서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을 저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괴로워하는 2세들이 많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 유리천장을 실감하기도 전에.
지금처럼 한류가 뜨기 전에도 백인이 동양식을 너무 좋아해서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까지 동양식인 '젠 스타일'에 '초밥'을 먹고 어른에 대한 예의를 따라하느라고 허그 대신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등 모든 것을 따라 하고 싶어서 안달인 백인들도 있었다.
김치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김치 레시피를 달라고 해서 어설프게라도 담가 먹는 가 하면 한국 슈퍼에서 사 먹기도 한다. 김치가 먹으면 먹을수록 개운하고 질리기는커녕 계속 먹고 싶으니 아무래도 마약성분이 있어서 중독되는 것이 아니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기도 했다.
캐나다 음식처럼 지루한 것도 없다는 푸념과 함께.
그 정도로 한국을 포함해서 동양에 푹 빠진 사람들을 겉만 흰색일뿐 속은 노랗다고 '달걀족'이라고 한다나. 왜 그런 백인들이 신기한가 하면 캐나다 북쪽의 몇 만 명밖에 살지 않는 한적한 타운에 사는 북미 사람들은 그냥 거기서 살다가 결혼 30주년이나 50주년에 크루즈를 타 보는 것이 일생일대의 큰 행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 많은데 언제 동양인의 생활을 접했다고 동양 스타일 그것도 김치까지 섭렵을 했을까 하고. 빅 이벤트인 크루즈 여행도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자기 돈으로 간다. 자녀들이 비용을 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부모도 바라지도 않고 자식들도 전혀 생각도 안 하고.
한국처럼 연휴나 명절 때 공항이 미어터지도록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을 평범한 북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행에 목숨을 거는 서양사람들 중에도 빠듯한 살림에다 만만치 않은 여행 비용을 생각하면 그렇게 잦은 여행은 힘들다고 말한다.
가족이 모이는 부활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일 년에 세 번 정도 다른 도시에 살던 가족들이 모이는 것 조차도 땅덩어리가 넓어서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자녀가 부모를 보고 싶어서 방문하려고 해도 갈 때 차비는 되는데 돌아 올 차비까지는 미처 준비가 안 돼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예산에 맞춰 살아야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럴 경우 부탁을 하던가 빌려서 가든가 하면 될 것이지 그 부모나 그 자녀 둘 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샤워를 하다가 오줌이 마려우면 그냥 샤워 물에 흘러가게 일을 보면 될 것을 샤워하다 말고 굳이 나와서 변기에 오줌을 누고 다시 샤워하는 사람들과 누가 더 고지식할까?
물론 돈이 개입되어 있으니 다르긴 하지만.
이민을 온 우리들도 이민 와서 정착 하면서 처음 1~ 2년 정도는 나이아가라 폭포다 록키 관광이다 해서 신나게 다닌 후에 어느 한 곳에 터를 잡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활 반경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도 공항 근처인 인천에 사는 것이나 캐나다 밴쿠버의 공항 동네인 리치먼드에 사는 것이나 한 곳에 둥지를 틀면 생활하는 것은 나라만 틀릴뿐 다 똑같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전 국민이 정치나 부동산에 일사불란하게 관심을 가져서 화제가 풍성하고 열 올릴 곳도 많은 반면에 스트레스를 풀 맛집과 풀 곳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영어도 원활치 않고 시스템도 아는 것만 알아서 열 받을 일도 없으니 스트레스 없는 것이 스트레스이다.그러다가 진짜 말이 안 되게 흥분한 일이 있었는데 동네의 백인 아이가 프로빈셜 시험에서 영어과목에서 통과가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서 태어나서 영어만 하는 애가 영어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그들에겐 영어가 국어이니 국어점수가 부족하면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은 당연.
마가렛 조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쓴 'I'm the one that I want'라는 책이 있다.
그녀는 오래전에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동양 이민자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시트콤으로 만든 'All american girl'이라는 시리즈에서 주연으로 나온 한국인 여자 코미디언이다.
술과 마약, 낙태로 얼룩진 그녀의 젊은 삶을 진솔하게 엮어낸 그녀의 책에는 북미 대륙에 이민 온 동양 이민자의 자녀들이 겪어야 했던 것들이 다 들어있다. 아무도 안 만나고 일 밖에 모르는 이민 부모의 삶과 정서가 마가렛에게는 생경하고 닫힌 삶으로 보였었다고. 그런 갈등이 많은 세월 동안 쌓이면서 결국 그녀로 하여금 치료를 요하는 상태까지 몰고 갔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부모의 행복하지 않은 결혼이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자녀들에 대한 배려나 따뜻한 애정 표현에 서투른 동양 부모의 무뚝뚝함이 어린 마가렛에게는 사막에 혼자 던져진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의 과체중과 우울증, 아버지를 제외한 그들만의 식습관(엄마와 함께 맥도널드나 피자헛에서 실컷 먹고 집에 가서는 안 먹는 척하며 아버지와 다시 저녁을 먹는 일)들이 가정 내에서의 위선과 유대감의 상실 때문에 음식을 먹는 일이 기분 좋은 일인 동시에 죄악시되는 일로 기억되었다고 한다. 체중은 점점 늘어나고 방치되었다고 느끼는 가운데 코미디쇼를 하면서 왜곡된 가치관 즉 자신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자신이 일을 잘했을 때만 자신을 수용하는 조건부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러다 보니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비하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 하고 모든 관계가 뒤죽박죽이 되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쳐서 전문가를 찾게 되었다고.
드디어 치료를 통해서 회복되어 건강과 자신감을 찾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어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무엇인가 느끼기를 바라면서 책을 냈다고 한다.
흔히들 이민 오면 아이들은 잘 적응을 하는데 부모가 문제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속에는 낯선 땅에서 온갖 슬픔과 갈등을 겪는 부모들의 비애와 아이들만이 겪는 숱한 스트레스가 포함되어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잘 되라고 뼈 빠지게 일 하면서 애들만 바라본다. 그러나 자녀들은 이 책의 마가렛 조처럼 아이들과는 공감이 안 된 채로 일만 하는 부모에 대해서 힘들어 한다. 외로운 아이들은 마약에 손을 대고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한 채 이 땅에서 바나나도 달걀족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마가렛 조가 자신의 책에서 '엄마 아빠 사랑해요.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진실과 사랑과 아픔을 알아주세요'라고 절규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