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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Oct 30. 2018

저출산이 웬 말 이냐

친구 따라 강남 가네

Backpack Kid dance를 따라 하는 손자의 재롱을 보는 내 마음은 흐뭇함이 반이요, 알 수 없는 부담감이 반.

이미 세명의 손자들이 그득해서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마당에 딸을 낳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딸 이름을 '줄리아'로 지어놓고 넷째 운운하는 우리 며느리. 한 술 더 떠서 아들까지 흥분해서 더 낳고 싶다니  온 집안이 들썩거린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며느리 친구들의 아이들이 기본이 셋이요, 네 명도 있고 다섯 명도 있다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도 아니고 친구 따라 아이를 많이 낳으려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흑백 TV가 있던 아주 먼 옛날에 가수 유주용 씨의 누이인 모니카 유가 나온 '파란 눈의 며느리'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어릴 때라서 그 내용을 다 기억은 못 하지만 서양 며느리가 한국에 시집을 와서 겪는 좌충우돌 신부 일기였던 것 같다.          그 시대에는 국제결혼이 흔치 않았을 뿐 아니라 금기시될 정도로 기피하고 그들의 자녀들도 혼혈아로서 겪는 아픔이 심했던 시절이었다.

그 후로 반세기지나 보니 글로벌화의 기치 아래 한국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나가 살면서 낯선 땅에서 자녀들을 낳아 키우고 결혼을 시키는데 그들의 배우자가 같은 한국 사람이어야 마음이 편한 한국 부모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외국 처녀, 총각들과 결혼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나도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서양 며느리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들이 미래의 신붓감을 집으로 데려온 날, 식사를 하면서 깍두기 김치를 잘 먹는데 놀랐고 미래의 희망이 현모양처라는데 또 놀랐다. 문화와 언어, 특히 음식이 다른 사람과의 결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실제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 이민자 할머니도 치매에 걸리면 영어를 다 잊어버리고 한국말만 한다든지, 오랜 외국생활에서 늘 먹고 살았던 서양 음식에 아무리 익숙했어도 서양 양로원에 들어 간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매 끼니마다 나오는 감자에 질려서 양로원을 뛰쳐나오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음식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나였으니.


그 많은 (그렇게 많지만은 않지만) 한국 아가씨를 두고 하필이면 서양 며느리를 봐야 하나 하고 구시렁대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 며느리가 싸 준 도시락 가방을 들고 초등학생처럼 신나게 출근하는 아들을 보면 며느리의 꿈인 현모양처가 실현되는 듯하다.

단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학교 선생님인 것 까지는 좋은데 자신의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 하는 것이다. 셋째를 낳고 나서 일 년도 안 되어서 넷째 운운하는데 친정을 닮아서 다산형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친정엄마는 며느리와 오빠, 남매를 낳았지만 외할머니는 11남매를 낳고 95세까지 병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피를 묽게 하는 약만 한 가지 복용 하다가 본인 의지로 일주일 곡기를 끊고 돌아가셨다.

11 남매의 중간인 안사돈이 어릴 때의 식사 시간은 항상 2조로 나누어서 식사를 하는데 그때 급하게 먹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지금도 음식을 빨리 먹는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소위, 아이들 우유값이라는 아동복지 수당을 출생부터 18세가 될 때까지 정부에서 지급한다. 물론 부모의 수입에 따라서 차등으로 수당 액수가 정해지는데 수입이 없는 극빈층은 아이 일인당 500불 정도 나오는 집도 있어서 아이가 세 명이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보조해 준다. 다시 말해서

정부는 국민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세금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생활보조금을 받는 수혜자가 본래의 취지와 벗어나는 일을 하면 금방이 아니라도 보조금을 거나 소급해서 정산을 한다고 한다.   이 나라가 어떤 면에서는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모든 진행이 느리며 어리숙해 보여도 끝까지 추적해서 진실을 규명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잔머리 굴리는 것도 안 통하고 얼렁뚱땅은 더 안 통하는 원칙의 나라인듯.

 


들, 며느리가 넷째를 낳겠다고 몇년을 들떠 있는 것을 보면서 같이 흥분할 수만은  없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더블케어의 기간이 연장될 거라는 예감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들 세 명을 돌보고 집에 와서  잠시 쉰다고 침대에 누우면 거의 기절 상태가 되곤한다.

한국에서는 출산은 둘째치고 결혼도 옵션인 시대가 되어가는데 우 파란 눈의 며느리는 넷이 아니라 다섯도 낳을 기세이니.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한 마디 질문을 하면 차분하게 열 마디 대답을 해 주는 며느리와,  컴퓨터를 보면서도 아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몸이 부서지는지도 모르며, 아이들이 먹다가 잠이 들면서 쥐고 있던 뜨뜻 미지근한 사과를 먹는 비위 좋은 아들, 둘 다 자격은 있다만.

요즘 같은 경쟁이 심한 세상에서 아이를 많이 낳으면 다 힘들 거라는 나만의 별난 원초적인 걱정 때문에 배지도 않은 넷째 아기에 대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집에서 저출산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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