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일인당 일 년에 3억 원
'이혼하기 참 쉽더라'
첫째는 출장이 잦아지고 둘째는 신용카드를 주로 쓰는 이 나라에서 현금이, 그것도 급하게 필요하다고 돈 심부름을 자주 시키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고. 남은 재산이라도 지킬려면.
출장 도박에 돈이 필요한 것이었다. 도박을 할 사람이 아닌 너무나 착실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자상한 아버지였던 친구의 남편은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된 것일까?
보통 도박에 중독이 된 사람들이 이혼을 당할 것 같아도 오히려 중독자가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좀 더 자유롭고 가정의 책임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도박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선 가정을 떠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면서 가정의 의미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끊어내고 나면 남들이 보기에는 비참한 수렁이지만 홀가분해진 자신은 끝 모를 쾌감과 언젠가는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망상의 블랙홀로 황홀하게 빠져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신기루를 잡는 것 같이 허무한 일에 자신을 던지는 것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로또를 사거나 슬롯머신에 동전을 넣는 순간, 어쩌면 대박이 터져서 그동안 못 했던 것을 실컷 해 보고 어려운 형제나 친지들을 도와주고 좋은 일도 좀 해 보겠다는 소박한 꿈도 꾸어 보고. 그러나 이솝우화의 우유통을 이고 가던 처녀의 꿈을 담은 우유통이 깨어지는 순간, 연기와 같이 사라지는 것들이 무한 반복되는 경험을 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미련이 죄라면 죄.
그러나 전율에 떨었던 몸은 기억한다. 그 짜릿함 때문에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비장함.
초짜들에게는 좀 따게 해 주고 갈수록 잃게 만들어진 기계를 이겨 보겠다는 머리 좋은 인간들의 오만함이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은 무모한 행위를 계속 하는 것이다.
아무튼 무엇인가에 중독이 된다는 것은 균형을 잃은 삶에 틀림이 없다.
예전부터 화투를 못 끊어서 패가망신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 손가락을 절단하고 붕대 묶은 손으로 다시 화투장을 잡는다고 하지 않는가?
캐나다도 은근히 도박을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
TV광고에도 포커넷 선전에다가 로또 광고는 황금시간대에 할애한다. 어떤 채널에서는 하루 종일 포커 게임을 하는 프로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와, 이 나라 되게 웃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사는 밴쿠버와 차로 두 시간 남쪽으로 내려가면 되는 시애틀에도 크고 작은 카지노들이 있다.
진짜꾼들도 있지만 작은 곳들은 머리 하얀 노인들이 심심풀이로 게임을 한다.
그러나 도박도시인 '라스베가스'나 '리노'가 가까이 있는 캘리포니아는 판이 다르다. 한인들이 힘든 이민 생활에서 낙이 없으니까 그곳을 들락거리다가 가정이 거덜 나고 폐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가정상담의 80 퍼센트는 술도 마약도 아닌 도박으로 인한 가정문제라고 한다.
도박에 빠진 의사들은 일찌감치 병원 건물을 날리고. 새벽부터 손톱이 닳도록 야채를 다듬어 청과업으로 성공한 사람은 재산을 다 잃고 노숙자가 되어도 라스베가스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맴돈다. 연금에 의지하는 할머니들은 찾아오지도 않는 자녀들을 기다리기보다는 좀 더 능동적(?)으로 살아보고자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러다가 쥐꼬리만 한 연금을 다 붓고도 모자라서 같은 노인 아파트에 사는 친구 할머니 집에서 돈도 안 되는 무엇인가를 훔치는 좀 도둑질에 나선다.
구걸이 별거냐? 오랜 이민 생활 동안 알게 된 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기웃거리며 나중에 갚겠다면서 푼돈을 꾸어가고 안 갚으면 구걸이지. 그때의 비굴함은 창문, 거울, 시계가 없고 머리가 맑도록 항상 산소공급을 충분하게 해서 쾌적한 카지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알 수 없는 용기와 전 유럽을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용맹함으로 충만해진다고 하니 어느 누가 그를 말릴 것인가?
그곳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손주한테도 코 묻은 돈을 달라고 무릎을 꿇으래도 꿇을 정도의 수욕을 참은 대가를 가지고 한 판 붙을 기세이므로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는데.
더 큰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자유를 찾은 이들이 노숙의 삶에서도 자유를 느낀다고 한다. 어디에 매이지 않고 구걸해서 돈이 생기면 도박을 하고 정부에서 주는 밥을 먹으면서 대박의 꿈을 옹골차게 이어가는 그들의 삶.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결국은 비용이 문제이다.
노숙자들이 길거리에서 자고 생활하는데 무슨 시설이 필요할까 하겠지만 사실 수많은 시설과 관리 인원이 필요하다. 잘 못 움직이는 마약 중독자들과 제 발로 걸어 다니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정기적으로 마약을 맞아야 하는 칸막이 주사실, 찬밥, 더운 밥을 가릴 처지가 아닌 것 같은 노숙자들에게도 정부의 세심한 배려하에 아침저녁엔 뜨거운 수프와 빵, 점심엔 워낙 찬 음식인 햄 앤 치즈 샌드위치와 여러 종류의 빵들이 정성 어린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로 제공된다. 쉘터와 상담자들, 약과 의료와 청소및 방역에 이르기까지 인건비가 비싼 이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비용 명세서가 쌓인다.
노숙자 한 명이 추위에 죽어가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가면 병원으로 옮겨서 돌봐주고 다시 본인이 원하는 대로 거리에 데려다준다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매너 짱. 왜 구급차와 소방차는 항상 세트로 다니는지. 비용이 더블로 나가게.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시설과 인원과 해프닝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벌이가 없어서 세금도 내지 않는 그들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조금 과장되게 하면 한 사람에게 half million달러 정도 들어간다고 하는데 노숙자 일인당 일 년에 대충 한국돈으로 3억 원이 들어간다고 보면된다고. 각종 도네이션과 기금 모금과 세금으로 충당된다고는 하는데. 언제가 한 번은 노숙자들을 버스에 태워서 다른 주로 보내려다가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치 프랑스 정부가 하도 속을 썩이는 집시들 때문에 고심을 하다가 몇 백 명의 집시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루마니아로 보낸 적이 있는데 그와 같은 발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그들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뇌의 홀몬 문제이든 집안 내력이든 DNA이든간에 중독자는 항상 있게 마련이므로
순간적으로 행복하고 그다음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매달리는 그 도박 중독의 뒤안길에는 끈적한 늪이 있어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둡기만 하다.
모든 중독은, 중독에 빠진 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끼치는 영향력 또한 폭탄급이기 때문에 모두가 좌절한다. 단, 중독된 그 사람만 빼고.
밴쿠버 다운타운의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 바로 옆의 고풍스러운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