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죄가 없는 나라

친절한 카디르 씨

by 그레이스 강

새해의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면 '착하게 살지만 이용당하지는 말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이민 조차도 거의 정확한 매뉴얼을 가지고 외국으로 떠나는 시대이다. 그렇다고 이민 생활이 그대로 되는 것라는 것쯤도 알고 있고.

그러나 새로 온 이민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해서 도와주면서 그 친절을 이용한 정신적 물질적 갈취 수법이 하도 교묘해서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나도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신실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게 되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아이들 학비를 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처음 일 년은 아파트 렌트를 해서 살면서 동네도 정하고 정착을 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매달 렌트비를 12장의 수표 집주인에게 보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도 절박하게 아이들 학비를 이야기하는 통에 매달 렌트비만큼 받아서 집주인에게 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후에 일 년 치 렌트비를 목돈으로 빌려주었다.

돈을 빌려줄 때는 앉아서 주고받을 때는 서서 받는다던데 서서라도 받으면 다행이지, 몇 달은 신사적으로 제 날짜에 주더니 그다음부터는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정해진 수순대로 전화를 안 받고 핑계를 대고.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사를 오기 이틀 전에 은행에 가서 'certified cheque'을 받고 해결을 한 적이 있었다. 돈을 꾸지도 꾸어 주지도 않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냥 주자고 인생의 철칙을 세웠건만 이민이라는 대명제 하에서 그 원칙이 흐물흐물 해 진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의 경우는 이스탄불에 가서 아파트를 구했는데 신축 건물이라서 모든 설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들어갔다. 터키는 우리나라 옛날처럼 최고급 아파트가 아니면 냉장고부터 가전제품이 빌트인이 되어있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이사를 다녀야 한다.

나도 텅 빈 부엌을 보고 한심해서 망연자실, 왜냐하면 터키라는 중동 나라도 생소하고 천년 고도라는 이스탄불의 난개발 된 건물들과 옛것과 신식 건축물과의 부조화에서 오는 어지러움에 멀미를 할 지경이었을 때였다.

그렇다고 나중에는 적응됐느냐 하면 캐나다로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안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쨍쨍 내려쬐는 햇빛과 마차와 신형차들이 사이좋게 고속도로를 달리는가 하면

동네 골목마다 모스크가 있어서 그 앞의 광장에는 유치원생 책상만 한 작은 티테이블에 엉덩이만 가까스로 걸쳐 앉을 수 있는, 밀짚으로 엮은 네모 의자에 앉아서 '차이'를 마시는 동네 할아버지들.

새로 지어 입주가 덜 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두 번이나 갇혀서 문을 두드리며 동물같이 포효하던 일, 밖에서 웅성거리기만 하지 문은 절대로 안 열리다가 서서히 열리면서 빛이 들어올 때 천국의 빛이 이럴까 하면서 감격에 차서 내딛으려는데 벽과 복도의 중간에서 문이 열려서 바지가 찢어지도록 다리를 들어 올려서 가까스로 탈출을 한 적도 있었으니 한없이 낯설기만 했었다. 유럽식의 높은 천장과 거실에도 방처럼 문이 따로 있고 긴 복도를 따라가야 침실이 나오는 구조, 일자형의 부엌은 어찌 넓은지 휑한 데다가 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은 없는데 구석에 붙박이로 바비큐 굽는 곳은 설치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불필요하기도 하고

그 부엌에는 어울리지도 않고.


더운 나라답게 바닥이 타일인 터키 부엌

약간 모던한 터키의 부엌

이스라엘의 부엌


파란 글씨는 우유, 빨간 글씨는 고기라는 히브리 문자.

음식을 하면서 고기와 우유가 섞이지 않도록 분리해 놓은 두 개의 싱크대가 있는 전통적인 부엌


4층에 사는 관계로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로 주로 계단을 이용해서 다니다가 아래층의 터키 아저씨를 알게 되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동양인이라고 신기해하는 동네 사람들, 우리 부부가 산책할 때면 길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야반지'라며 히쭉이며 곁눈질을 하곤 했다. '야반지'는 터키어로 외국인이란 뜻이다.

한국에서 미국 사람이 지나가면 외국인이라고 했던 바로 그 외국인이 터키에서는 우리였다.

아래층 카디르 씨가 우리 집에 오더니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친구를 통해서 싸게 사주겠다고 해서 그를 쭐래쭐래 따라나섰다. 허름한 상가의 이층으로 데려가서 우선 '차이'를 한잔씩 시켜주고 영화에서나 봄직한, 광대뼈에서부터 검은 털이 나서 턱 전체가 수염으로 뒤덮인 주인아저씨랑 어찌어찌해서 가전제품을 사 오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친절했던 우리의 카디르 씨가 일말의 쭈빗거림도 없이 당당하게 돈을 좀 꾸어달라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며칠 후에 돈을 으면 주겠다고. 많은 돈도 아니고 고마운 마음도 있고 해서 안 받을 생각을 하고 빌려 주었다. 그냥 준다고는 했지만 이 사람들의 거래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몇 번을 물어보았더니 아직도 딴 데서 돈을 못 받았다면서 능청스럽게 웃는데 친절이 엉큼함으로 변하는 것도 순간이더라. 결국은 못 받았다.

남의 나라에서 가뜩이나 어리바리하고 지저분하고 탁한 공기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에서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패닉이 된 데다 카디르 씨의 친절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기분에 덥석 따라간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었다. 그로 인해 파생된 돈 문제도.

러나 며칠 후, 냉장고를 배달하려고 온 터키 청년들은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 저리 가라고 할 만큼 진한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에다 스파이크 머리로 껏 멋을 부렸다. 그 중동 젊은이들의 활기가 삼성 냉장고와 함께 부엌을 가득 채웠던 것 때문에 마음이 좀 누그러졌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터키에서 일 년에 한 번 양을 잡는 '쿠르반 바이람'이라는 희생 절인 대명절이 있다.

말만 들어도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명절인데 민족 대이동은 물론이거니와 시골에서는 골목 어귀에서 어른들이 남자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양 잡는 모습을 양의 목을 따고 정교하게 피를 빼고 고기를 각을 떠서 동네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전통이 내려온다. 그러나 하도 아무데서나 양을 잡으니까 위생상 문제 때문에 정부에서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물론 죽은 양의 피는 땅 속에 묻기는 했지만.

도시에서는 '까르푸'같은 대형 슈퍼마켓 운동장 같이 넓은 지하 주차장에 도살 기계를 설치하고 젊은 알바 직원들을 고용해서 소나 양을 잡는다. 임시로 만들어 놓은 가축우리에 있는 양과 소를 고객이 고르면 직원이 양의 눈을 천으로 가린 채 도살장으로 끌고 간다. 그런데 눈을 가린 천이 빨간색이었으니 초장부터 뭔가 섬찟한 느낌이 드는데.

노란 비닐 방수복을 입은 젊은 남, 녀 직원들이 일단 말 타듯이 양 위에 올라타고는다.

능숙한 솜씨로 목과 급소를 따고 피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고는 털과 가죽을 벗기고 살만 잘 발라서 비닐 쇼핑백에 넣어서 고객에게 준다. 한 술 더 떠서 고객들은 자기 양을 잡는 그 도살 장면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양 잡는 젊은이들은 한 손으로는 칼질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휴대폰을 들고 신나게 수다를 떠는 그 강한 비위는 어디서 나왔을까? 어릴 때부터 양 잡는 어른들 옆에서 시중을 들면서 양 잡는 법을 보고 자란 그들의 능란한 칼 솜씨에의 탄성은 슈퍼마켓 주차장의 다른 한쪽 소를 잡는 도르래 같은 도살 기계가 소의 몸뚱이를 가르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소와 양의 가격차이 때문에 거기에도 빈부 차가 있더라는.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터키에는 사기죄가 없는 대신에 빚을 지고 안 갚은 채로 도망 다니다가 잡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칼로 찔러서 죽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한국에서 다 같이 형편이 어려운 사람끼리 그나마 좀 더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나쁘게) 돈 냄새도 안 나는, 애들이 주렁주렁 달린 친구한테 죽는시늉을 해 가며 보증을 서 달라고 하고는 야반도주 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사기를 당한 가장은 홧김에 술만 퍼 마시고 순종적이고 착하디 착한 어머니들은 보따리 장사나 시장에 좌판장사로 나선다. 단지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머루알 같은 까만 눈동자를 보며 먹여 살려야 된다는 투지를 불 사르면서.

뭐가 좀 있었어야지 재기도 할 텐데 벼룩의 간을 내 먹은 친한 친구 때문에 고생 고생한 가정이 한 둘이 아니었다.

사기죄가 있는 나라도 떼인 돈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지루한 법정 다툼으로 소진되는 에너지와 쌓여만 가는 분노가 원한이 되어 화병을 얻어서 돈을 꾸어간 사람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기도 하고.

사기죄가 없는 터키에서 처럼 화끈하게 칼부림을 할 수도 없고 법으로 다스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삶들.


항상 착한 사람도 사기를 당하고, 인정 때문에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호구 인증이 됐고, 돈, 돈하면서 작은 이익을 좇다가 허황된 것에 걸려서 소탐대실을 하기도 한다. 누구나 아킬레스 건이 있는데 그것이 돈이 아니기를 바란다. 칼잡이의 물리적인 칼 보다도 더 무서운, 개인과 가정을 무너뜨리는 어마 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사기꾼들에게 걸리기도 쉽고 그래서 삶이 송두리 채 난파되기 쉬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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