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겨울은 '님과 함께'가 아닌 '비와 함께' 일 년의 반이라고 보면 된다.
우산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던 과거의 우기가 아닌 장대비와 소나기가 퍼붓고 해가 나는 등, 전형적인 밴쿠버의 겨울 기후는 사라져 가고있다. 눈이라고는 일 년에 두세 번 오면 많이 와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동부의 탐스러운 눈송이를 그리워할 때가 있었는데 이번 겨울은 2월 내내 눈이 왔다. 이상기온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요즈음, 이에 질세라 밴쿠버 날씨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벚꽃도 떨어지고 봄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렇다고 확 따뜻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이른 봄같은 쌀쌀한 공기.
비가 올 듯 흐렸다가도 해가 반짝 나는 변덕스러운 캐나다 날씨 때문에 우울해지다 못해서 어디론가 뛰어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것도 어두컴컴한 구름을 뚫고 맑은 하늘 위라면.
그렇다고 비행기를 타고 드라이한 기내식을 먹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반팔 티셔츠에 후드 재킷을 두르고 소시지와 빵을 사서 이층 버스의 이층 맨 앞자리에 앉았다. 오스트리아의 '린쯔'에서 출발해서 체코의 '프라하'로 가는 길이었다.
사진으로 보면 초가을이네.
우리가 말하는 비엔나소시지는 존재하지 않고 가늘고 긴 그들만의 비엔나소시지만 있을 뿐.
음식을 먹으며 몇 사람도 타지 않은 버스안의 널널함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버터가 필요 이상으로 들어가서 느끼하지만 고소하고 쫀득한 빵을 뜯어먹는 맛이 여행의 달뜬 기분을 더해 주는듯 했다. 게다가 기다란 비엔나소시지를 땅따먹기 하듯이 야금야금 잘라먹는데 이빨 사이로 짭짤한 돼지기름이 흘러들어오는 중에 씹는 맛이 대단했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피곤하던 차에 살짝 졸다가 눈을 떠 보니 차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한적한 농촌의 밭이 길가에 이어지고 멀리 농가들이 구순하게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치면서 갑자기 한 지인의 말이 떠 올랐다.
유난히 빨간 지붕이 많은 주택과 그 옆에 별채처럼 혹은 헛간처럼 서 있는 작은 집들을 보면서. 아름답고 고즈넉한 동유럽의 농촌 마을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슬픈 사연이 있는지를 알아버렸다.
아주 오래된 미투같은 사연이기보다는 이율배반적인 참상에 가까운 전쟁의 상흔이.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뱃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뭉클거리면서 가슴이 아프다.
체코나 슬로바키아같은 동유럽은 유난히 외세의 침략이 많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발전을 못 하고 러시아 연방국가들로써 변방에서 연명을 하다가 순차적으로 독립을 하고 EU에 들어가면서 전형적인 농업국가에서 다른 산업들도 차츰 발전을 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 같이 자력갱생을 못 하고 EU 자금을 퍼다 쓰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건초더미와 농기구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는 헛간이 가장 연약한 여자들의 몸과 마음을 유린당하는 장소로 쓰였다는 것이 경악스럽다. 전쟁이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여자들, 아이들과 노인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사춘기 소녀들은 전쟁이 나면 정신적이 충격인지 아니면 방어 기제인지 생리를 안 한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서 승전 군들이 마을로 들어오면 약탈이 시작된다. 곡식이나 가축들 외에 여자 사냥까지도.
그런데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한 농가에 군인 떼거리가 밀어닥치면 그 가정의 여자 한 명을 헛간으로 보내주면 그 집의 소출이나 물건은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물러간다는.
멀리서 자기 집으로 다가오는 군화 소리를 들으며 가슴으로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 된 가장을 떠올려 보기도 싫다. 딸이 없으면 부인을 내 보내야 하는데 전쟁통에 동물처럼 변해버린 군인들의 잔인함을 상상하면서 보내야 하는 시간을 어찌 견뎠을지.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허구이며 죽을 것 같은데 살기 위해, 재산을 지키기 위한 윤간의 시간은 끝이 어딘지 모르는 죽음과도 같았으리라. 아직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 딸이며 그 배를 빌려 생명을 세상으로 내보낸 아내가 무참히 짓밟히는 것이 전쟁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고.
차라리 그 시간이 빨리 와서 지나가기를 바랐던 전쟁소설 속의 여인처럼.
그 지역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 그곳 주민의 이야기를 전해준 그 지인이 부디 잘못 알았기를 바랄 정도로 참혹한 전쟁 이야기였다.
그런 생각에 몸을 떨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버스는 어느새 프라하에 도착해 있었다.
무조건 카를교를 걸어보기도 하고 노천식당에서 양고기 요리를 먹고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저녁이 되어 어두움이 얇은 솜이불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가운데 공사 중인지 크레인이 하늘 높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올려다보는데 크레인 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세상에! 사람들이 만화에 나오는 인형들처럼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크레인 위의 레스토랑인 것을 알고 갑자기 섬찟. 특별히 고소 공포증은 없지만. 한참을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는데 크레인이 서서히 내려오더니 바닥에 안착을 했다. 사람들이 바로 몰려나올 것 같은데 안전벨트를 푸느라고 지체하고 있었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주방 직원들과 안전 요원들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비행을 마치고 오는 항공사 직원들과 비슷했다.
그 희한한 레스토랑을 보고 나도 호기심이 생겨서 가 봐야지 하고 들떴다가 연예인 일정처럼 바쁜 여행 스케줄에 밀려서 포기하고 말았다.
갔었다면 아마도 짙은 강물에 비친, 은은한 조명으로 장착한 프라하의 궁전들이 풍기는 고상하고도 안온한 느낌을 맛보았을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그 분위기를 맘껏 느꼈을 테지만 패키지도 아닌 자유 여행인데도 시간에 쫒겼다는 것이 분하고 그저 아쉽기만 했다.
크레인 바닥에 의자를 고정시키고 옆면에 난간만 있지만 식사를 하고 내려온 사람들은 매우 흥분되고 신나 보였다. 안전벨트를 하고 음식을 먹어서 배가 조이지나 않았는지 궁금.
무언가 특별한 것, 특별한 장소, 특별한 순간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아는 이 공중식당은 벨기에와 프라하에 있고 세계 곳곳에 더 많이 오픈하려고 한다나.
캐나다에도 들어오면 태평양과 스탠리 팍의 우거진 숲을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 멋질 것 같았는데. 최근 웨스트 밴쿠버라는 동네에 생겨서 태평양 저 멀리까지 내려다 보면서 식사를
한다니 생각보다 멋있을 것 같다.
기나긴 우기가 끝나가고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없는 밋밋한 일상의 밴쿠버에 뭔가 쨍하고 충격을 줄만한 곳을 찾는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겨우내 부족했던 비타민 D 때문인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터져 나오는 것인지 뭔지 모를 우울감 때문에 지금에서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dinner in the sky' 즉 '하늘에서의 저녁식사'라는 레스토랑에 가서 그야말로 공중에서 시원한 풍광을 보면서 식사를 하면 비에 젖은 밴쿠버의 음습함을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전엔 가고 싶어도 비행기를 타고 한없이 멀리 가야 된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었다.
유럽까지 연휴 동안의 여행은 너무 짧고 여름휴가에는 찌는 날씨의 유럽보다는 여기가 더 서늘하니 굳이 가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비행기 타고 가는 노역대신에 차로 슝 가면되니 웬 떡이 하늘에 떠 있나 싶게 반갑다.
우울하다고, 침체된 삶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 좀 특별한 장소를 찾아서 가 보고 싶어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나?
오히려 조국을 지킨다는 명분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가정들을 파괴한 참혹한 역사가 더 죄로 얼룩졌다고 말한들 누가 뭐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