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사라졌다

슬플 겨를도 없이

by 그레이스 강

만삭이 되어 오 내일 출산일을 기다리는 산모의 마음은 기대와 설렘 이외에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풍선같이 부풀었던 배가 깜쪽같이 사라질 것을 고대하는 마음이 더 크다면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할까?

특히 여름에 출산하는 막달의 산모는 눕지도 앉지도 못한 채로 너무 더워서 울고 싶은 심정에 빨리 아기를 낳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런데 10개월의 산고를 거쳐 태어난 아기가 연기처럼 어디로 사라졌다면 산모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불임이면서도 아기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정을 위해서 아기를 낳아 주는 것, 미국에서 처음 '대리모'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10만 불 가까이 드는 경비를 부담하고서라도 대리모를 통해서 아기를 낳아서 데려갔던 일이 숱한 반향을 일으키며 문제가 되었던 아기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었다는데.


대리모가 어제오늘의 아닌 일이 된 요즈음에 손자 학교의 학부모 한 명이 만삭이었다가 출산을 했는데 그녀가 대리모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창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면서 찬반 의견이 분분하던 때에 그녀가 동성결혼을 지지하면서 그 가정에 아기를 보내기 위해서 대리모를 자처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쨌든 쌍둥이였던그 아기들은 떠나고 없다고.


아이들이 동생이 태어나면서 겪는 갈등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자기가 차지하던 엄마의 무릎을 새로 나올 동생에게 빼앗기도 싫고 자기 장난감도, 자기가 쓰던 아기침대도 동생에게 빼앗기는 것은 더더욱 싫어서 이상하게 떼를 쓰고 무조건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들이 많아지게 된다.

동생 옷을 감추고 자는 아기의 눈을 꼭꼭 눌러도 보고 엄마가 아기를 안을라치면 목청을 높여서 울면서 방해를 하든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첫째의 마음이 안정이 될 때까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게 된다.

혹시 안전사고라도 날까 싶어서.


앞에서 이야기한 대리모의 경우는 위의 아이들이 동생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사라져 버렸으니 이런 시샘을 할 겨를도 없었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초창기의 한 대리모는 모든 계약을 수락하고도 아기를 낳자마자 모성애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해서 법정까지 갔다고 하는데 인간의 출생을 계약대로만 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러나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계약을 한 것도 아닌,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때문에 대리모가 되어 아기를 낳아서 동성결혼 가정으로 보내는 캐네디언들이 있다.

씨받이나 대문 앞에 놓고 가던 업둥이도 그렇고 가정에는 반드시 아이가 있어야 한다는 종족 번영의 법칙에 철저했던 예전의 한국.

대리모의 심정과 아이들이 느끼는 정서는 동서양의 차이가 있겠지만 예전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혼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세상의 풍조는 사람들의 고착화된 가치관과 전통을 흔들어 놓으며 또 다른 세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같다.


동성결혼만 해도 남성끼리 생활할 경우에 여성 액팅을 하는 남자가 부엌을 하이 엔드로 갖추고 체력이 좋으니까 설거지부터 모든 살림을 번쩍번쩍하게 한다고.

보통 주부들이 '피곤 하네' 힘드네'하면서 싱크대가 가득하고 미처 못 버린 쓰레기때문에 집안이 엉망인 것을 남성주부에 비교해서 게으르다고 하면 억지일까?

그런 것이야 아주 지엽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캐나다나 미국의 동성애자 중에 그들을 위한 합법적인 조치나 대우 혹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2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그냥 내버려두어 알아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모인 여자 엄마는 없고 남성중 한 명을 엄마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도 남자 둘이 살고 여자둘이 살면서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을 통해서 알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동생이 병원에서 사라진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아니면 영영 이해를 못 해서 상처로 남을지 혹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