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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Mar 31. 2020

지금은 돈세탁할 때

더러운 돈, 깨끗한 돈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유언이 아닌 유언까지 생각하는 이 젊은 애기 엄마는 캐나다 동부의 종합병응급실에서 근무하는 30대 의사인 나의 사돈이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군사처럼 비장한 각오를 하며 응급실을 지키고 있다. 실제 총, 칼 없는 전쟁이다. 캐나다도 뉴욕처럼 병이 창궐하면 응급실 의료진이  제일 먼저 밀려오는 감염 환자를 맞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극성을 부리고 캐나다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들에 비상이 걸렸다. 집안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최전선에 있는  의사들의 생명에 대한 우려가 결코 먼산의 불이 아닌, 발등의 불이라는 것을 실감을 하고 있다.  한 조카는 소아과 전문의로  집에서 근무를 해서 다행이지만 오늘 돌을 맞는 첫딸의 생일 축하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취소하며 섭섭해서 울었다고.

장례식, 결혼식이나 생일모임까지 이제는 사치가 되어버린 시절이 되었다.

                         나홀로 돌상


병원에서, 패밀리 닥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나라에서는 검사를 하고 일주일 이내에 패밀리 닥터 오피스에서 전화가 오면 검사 결과에 이상이 있거나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한 주 지나서도 아무 연락이 없으면 이상이 없다는 뜻이고.

며칠 전에 복용 중인 약 처방을 받으려고 연락했더니 병원에 오지 말고 닥터가 나한테 직접 연락을 한다고 하더니 연락이 온 것이다. 병원에 약속시간에 맞춰서 가면 의사를 만날 때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지루하게 기다려야한다.   

집에서 전화를 기다리니 너무 .

할 일을 하다가  전화가 오면 받으면 되니까.

전화로 진료를 하니까 마스크를 쓰고 환자에게서 감염될까봐  비스듬히 앉아서 급하게 진료를 하고 끝나는 것보다 더 여유 있고 의사의 목소리도 편안하게 들렸다.  약 처방을 내가 가는 약국으로 직접 보내준다니 약이 준비되면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비대면의 끝판왕이랄까? 다 병원 진료도 원격으로 하는 날이 오다니.

급하지 않은 검사들은 다 연기되고 웬만하면 응급실에 가지 않는 추세이다.

 

전 국민의 무료 의료화를 하는 나라에서 수많은 감염자가 나오면 무료로 치료해 줘야 하는 보통 수준의 의료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가까스로 기본만 하는 국민 건강과 급한 수술 외에 일반적인 보건시설만 있는 캐나다에서 의료인을 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는 것이 큰 관건일 것이다. 자구책으로 손 씻기등 개인위생, 자택 격리와  거리 두기만을 강조하고 진단이나 검사등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른다. 의료장비도 넉넉치 않아서 생길 문제를 생각하면 두렵기까지 하고. 의료진이 무사해야 환자들이 보호를 받을텐데. 제발 의료 후진국이라는 말을 안 듣게 잘 대처했으면 좋겠다만.

'산소호흡기가 한 개이고 환자는 두 명이라면 누구에게 사용해야 할 것이냐'라는 윤리적 딜레마는 이미 많은 공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렇게 해서 전달된 약을 찾으러 약국에 갔더니 x표 한 곳에 서서 멀리 있는 약사와 약을 확인하고 내가 카드를 결제하고 영수증을 빼서 약과 함께 가지고 나왔다.

모든 것이 셀프.



자가격리에다가 5인 이상 모이지 말고 식당이나 카페는 테이블 서비스는 안 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주인은 5만 불의 벌금을 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쇼핑시간을 별도로 마련한 마켓들의 선한 의도를 마냥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유 인즉은 노인들은 병이 잠복을 해도 느리게 발현되다가 갑자기 사망하는 확률이 높은데 무증상인 그들끼리 쇼핑하다 옮으면 어떡하냐는 이상하지만 그럴듯한 이론도 있고. 젊은 사람들과 섞이면 노인들이 기다린다고 해서 만들어도 탈이네.

혼돈의 상태에서 외출도 삼가고 배달이 원할치 않은 요즈음은  집에서 음식을 해 먹으면서 지내는 수 별도리가 없다. 미용실이나 이발소, 스파도 문을 닫게 했으니 이 상태로 몇 달이 가면 여자들은 댕기머리를 하고 남자들은 타잔이 되어 나타나겠네.


시내 교통수단도 전철은 역에서 티켓을 사야 하지만 연계해서  버스를 타야 할 경우에는 무료이다.

왜냐하면 티켓을  스캔하는 센서가 운전석 옆에 있기 때문에 앞문을 사용해야 하는데 운전자를 보호하려고 앞문 사용을 금지했다. 그래서 센서가 없는 뒷문을 사용해야 하므로 차비를 낼 수가 없게 된다.

버스에서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므로 버스가 승객으로 반만 차면 더 이상 태우지 않고 떠난다.

밴쿠버 병원들의 주차 공간과  거리의 유료 주차장은 앞으로 무료로 주차하라고 한다. 주차 기기를 만지고 거리 두기를 못 지키면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있으므로.

이는 돈 사용을 되도록이면 금지하려는 의도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친구네 집에 가끔씩  놀러 오시는 친척 아주머니가 있었다. 동네 골목 어귀에 그 아주머니가 나타나면 동네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알았다. 왜냐하면 골목을 곧바로 들어오지 않고 몸이 벽에 닿을까 봐 지그재그로 걷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웬일인지 한센병자인 나환자, 즉 문둥이가 많았다. 그래서 어린 나도 하교 시에 문둥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또 아이들의 간을 빼서 먹으면 그 병이 낫는다는 무서운 소문도 돌아서.  그 아주머니는 심한 결벽증이 있었다는데 외출을 하고 와서는  옷을 몽땅 빨고 손을 너무 씻어서 손이 다 헐었으며  눈썹이 흐린 기사(혹시 문둥병자인가 해서)가 운전하는 택시는 타지 않았다고 한다. 소독약을 푼 물에 돈을 몽땅 담갔다가 말려서 사용하는 특이한 분이었다.

어릴 때 병원에 가기 싫었던 이유는 병원문을 열자마자 풍겨 나오는 소독약 냄새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병풍 앞에서 피워진 향내와 같이 막연한 공포감을 주어서였다.

 라떼는 말이야  '소독약' 하면 크레졸이라고 불렀다. 사과도 옷에다 쓰윽 닦아서 먹던 시절에 그 아주머니를 유별나다고 하면서 외계에서 온 사람처럼 이상하게 쳐다보았는데. 그때는 심한 결벽증, 지금은 정상.


이제는  카드만 사용하지,바이러스에 오염됐을지도 모르는  현금 자체를 쓰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한국 돈은 면으로 되었고 캐나다 돈은 '폴리머'라는 특수재질로 되어있어서 구겨지거나 꺾어지지도 않고  하도 뻣뻣해서 긴 지갑에 넣어야 할 정도이다. 마냥 뻣뻣해도 많기만 하라고 했었는데 이젠 없앨려고 애를쓰네.

돈을 소독하고 다리미로 다리고 할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다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이제야 돈 보다 생명이 더 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것도 잠시,  이 시련기가 지나면  또다시 돈 때문에 울고 웃겠지.

살아남은 자들 끼리.

현란한 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야만 사라질 것인가?

 수 십년전에 친정어머니의 종양제거 수술 후에 보여주었던  혹 덩어리가

징그럽기도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보라색이었던것에 당혹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네 집 초대음식도 먹어 본지 오래이고

집에서 밥만 열심이 하자.

살이 쪄서 헐크가 되든 말든.

손자들을 주차장에서 만나고 차에 있는 모습만 멀리서 보는데 마스크를 써보지도 않고 쓸 줄도 몰라서 장난하고  있으니 어이없다.

맥도날드 패티오도  닫고 오직 드라이브 쓰루만 하고

앙상한 가지에도 봄은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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