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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Aug 13. 2020

시니어 브런치

55세부터 시작

드럭 스토어에 갈 때나 집을 구할 때에도 55+ 일 경우에는 시니어 혜택을 받는다. 상품 구입 시 20% 할인을 해 준다거나 55+만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에는 부부가 들어갈 경우에는 배우자 한 사람이 55세 이상이면 가능하다. 어떤 빌딩은 19세 이상만 살 수 있으니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해당이 안 된다. 55세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주다가 65세가 되면 본격적인 노령 연금의 수혜자들이 된다. 한국과 캐나다 간의 사회보장 협정이 되어 있어서 한국 이민자들도 한국에서 연금을 내고 살았다면 한국 거주 기간을 캐나다에 이민을 와도 캐나다 거주로 간주해 주어서 적기에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시니어가 되면 어린이와 함께 최우선으로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고령층들이 최우선적으로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아서 꼼짝 못 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전쟁을 지 않은 세대이지만 그렇다고 '국제시장'도  실감이 나지 않는 바로 그 아래 세대이다.

그러나 70년대에 유럽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갖고 하는 것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뼈저리게 겪은 친한 친구가 하나 있다.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나오고 덴마크에서 정착을 해 보려고 병원에 취직해서 2년 동안 일을 하다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년 동안 병원에서 한 일은 그 육중한 유럽 사람들의 시체를 씻긴 것 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그 친구를 통해서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파독 간호원의 실상과 애환살짝 알았다고나 할까?


친정, 시댁 모두가 사선을 넘은 피난민들이라서 1.4 후퇴 때의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게 고 자랐다. 제일 끔찍한 것은 기차 위에 가족끼리 끈으로 묶어서 연결하고 있다가 터널을 지나고 나면 우수수 떨어져서 죽었다는 이야기와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범일동 판잣집에서 살던 실화는 눈물 없이는 못 듣는 피난민 이야기가  세월과 함께, 부모님들이 돌아가심으로 서서히 잊혀 갔다.

 

하루는 유치원에 다니던 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여고생이던 사촌언니랑 가족들이 이야기하는데 그때가 4.19가 일어나서 온 나라가 술렁이던 때였다. 이어서 다음에 5.16이 일어났지만 어린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언젠가는 화폐개혁을 앞두고 부모님이 돈 가치가 떨어지니 집을 사야 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지만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계속 친구랑 고무줄놀이만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산림녹화를 위해서 워커힐 뒷산으로 다니면서 송충이를 잡았는데 나무젓가락과 깡통을 들고 그 징그러운 송충이를 잡는 날은 공부를 안 해서 좋았다. 때가 되면 구충제인 '산토닝'을 먹고 약이 어찌 독한 지 노란 물을 토하기도 하고 기생충 그림을 보면서 뱃속에서 꿈틀거릴 회충들을 상상하며 메스꺼움을 참느라고 거의 죽을 뻔했다.


동네마다 리어카(손수레)에 생선, 과일, 두부 등 각종 먹거리를 싣고 골목마다 팔러 다닌 아저씨들, 그 더운 여름에 땀에 젖은 러닝셔츠를 입고 목에는 쉰내나는 타월을 두른 채로 수박을 팔던 아저씨의 둥그스름한 얼굴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무거운 수박을 그렇게 많이 싣고 어떻게 다녔을까?  수박을 두들겨 보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뒤돌아서는  아줌마에게 수박을 삼각뿔로 따서 맛보기로 주면 알뜰한 아줌마도 군소리 없이 사게 마련. 제철 과일인 복숭아, 포도 등을  앉은뱅이저울에 올려서 대충 달아서 주던 인심이 넘치던 시절.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온기라곤 없이 전화 하나로 장을 보고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피하는 세상이 왔다.

알레르기나 갑작스레 목이 간질간질해서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눈치가 보이고 죽음의 병을 퍼뜨리는 숙주가 되는 기분인 것도 괴로운데 주변 사람들마저 흘끔흘끔 보면서 피하는 때에 살고 있다.

캐나다인들도 방귀를 뀌는 것이 실례가 되어서 조심을 하다가도 혹시 방귀가 나오면 기침을 하는 척하면서 그 소리를 상쇄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기침이 나면 방귀를 뀌면서 기침이 아닌 척한다니 자다가도 웃을 세상이  되었네.


우연히 브런치를 접하고 이 앱에 뜨는 글들에 그만 반해 버렸다. 전문적인 글이면 전문성이 대단하고 감성적이면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다 못해 멍하니 창밖을 보며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글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원하고 써 보기도 했지만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는 별로 못 들어본 나 홀로 작가. 그러다가 브런치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써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인생의 굴곡과 인간관계들을 쓰는 브런치 작가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되고 삶을 승화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 글 속에 배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망이나 회환 같은 어쭙잖은 변명 대신에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는 확고함들이 묻어나는 글들을 브런치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들의 활동을 보면 20대부터 40대가 가장 활발하고 직장, 육아, 퇴사, 경제, 이혼, 백수생활과 여행, 해외 이민, 투병기 등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총망라한 글들로 가득 차 있고 문화계와 예술, 의학, 건축, 요리 등의 전문분야에서의 지식들도 그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퇴사에 관한 기록은 그래도 남성 작가도 많은데 유독 이혼 일기는 거의 남성의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브런치의 자격에 도달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거나 여자들의 이혼 사유에 토달일이 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인가? 아이들 데리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혼의 삶에 대한 기록은 타인이 어떤 말도 건넬 수 없는 치열한 고통이 배어있는 글이 많다.


  50대가 넘어가면서 인생의 언덕 마루에서 한숨을 돌리며 지난 일을 일기 형식으로, 또한 면서 느꼈지만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꺼내어 주옥같은, 그러면서도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는 글들도 있다. 그러나  60대, 70대에 관한 글은 그 나이의 작가 글보다는 그들을 부모로 둔 젊은 세대들을 통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조명되고 있다. 예를 들면 시부모나 친정부모, 돌아가신 할머니들에 대한 추억으로 대신하는 글들이.

시니어라 해도 쓸 말이 왜 없겠냐마는 손주 육아로 피곤하고 눈도 잘 안 보이고 쉬 피곤해지며 지나간 일 들춰봤자 열불만 나니 생각하기도 싫다는 친구도 있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뚜껑을 열어 보면 장하다는 친구들, 이래 저래 나이가 들면서 느낌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렇다고 메모도 잘 안 하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은 언감생심.

제일 큰 문제는 방금 전에 생각했던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것. 특히 한번 생각 안 나는 이름은 계속 안 나니 돌아버릴 지경.

생각은 '설렘' 입 밖에 나온 말은 '망설임'.

그래도 지난 이야기들을 물  흐르듯이 잔잔하게 쓰시는 시니어 분들,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브런치의 생리를 잘 몰랐을 때는 40여 개 도시를 돌아다녀 보았으니 여행기나 끄적이면 되겠지 하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뭐, 그렇게 해 가지고는 불성실한 회사원 마냥 명함도 못 들이는 판국이다.


지금은 브런치에 너무 빠져 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좋아하는 분들의 새 글을 찾느라 들락거리고 점점 내가 글을 못 쓰는 사람 인증만 되어서 한 때는 좋은 글들에 댓글만 쓰는 것도 너무 좋아서 '우아한 댓글러'로 남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시니어에 대한  우대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브런치에 고마움을 느낀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자가 힐링을 하며 치유되어가는 모습이 보이므로.

옷 정리를 하다가 코로나로 입어보지 못한 옷들을 화딱지가 나서 마룻바닥에 놓고 코디를 해 보았다. 올 봄엔 블루에 꽂혔었는데 어이가 없네.

나 같은 시니어도 글은  못 써도 옷은 좀 젊게 입어도 되지 않나?



(위의 세 삽화는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의 작품으로서 남편의 고교 동창 기념물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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