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스 강 Oct 02. 2020

터키 음식은 다 맛있다

여행과 이민은 다르다

나는 캐나다로는 이민, 터키로는 반 이민을 한 경력자이다. 캐나다를 여행하면 볼 거라고는 산, 숲과 나무이고 음식이라곤 그래비 소스를 잔뜩 뿌린, '푸틴'이라고 하는 프렌치프라이가 명물이라고 내놓는다. 추수 감사절에  터키(나라가 아닌 칠면조)를 주로 굽는데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육즙과 기름이 범벅이 된  육수로 그래비 소스를 만든다. 기름 감자에 기름 소스라니. 그 외엔 버거류와 피자나 스파게티에 그린 샐러드가 전부이다.

한 마디로 볼 것도, 먹을 것도 쌈빡하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당신은  왜 거기로 이민을 갔냐고 물으신다면 여러 복합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민병에 걸려서이다. 한번 외국 가서 살아볼까?라는 마음에 지펴진 불길이 점점 거세어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면 반드시 이민 길을 떠나야 한다. 여행은 때가 되면 돌아갈 곳이라도 있지만 이민은 뿌리를 뽑아서 옮겨 놓았으니 비실비실하면서  그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혼자 똑똑한 척, 영어는 잘하겠거니, 뭐라도 할 거야 라는 야심 찬 초심이 어리버리 함으로 채워진 질곡의 세월을 지나서 이제는 은퇴한 이민자의 현재 삶은  편하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공기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숨을 자연스레 쉬는 것처럼.

남의 눈치 안 보고 체면 차릴 일도 없으며 부러워할 것도 없는 무색무취의 사회라서 속이 덜 시끄럽다. 그러나 음식은 정말 특징이 없다 못해서 캐네디언들은 무슨 맛에 살까 의심이 간다.

외국영화를 보면 먹는 장면이 아주 없다고 보면 된다. 겨우 있다고 하면 아이들의 아침은 시리얼, 그나마 틴에이저들은 아침부터 이유 없이 화가 나서 그마저도 안 먹고 휙 나가버리고 맞벌이 부부는 커피 한잔과 차 키만 들고 출근.

한국 영화나  스페인, 이탈리아 드라마는 식탁 위주로 장면이 세팅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캐나다 이민 생활은 단조로운 음식 때문에 밍밍하지만  생활은 단조로움 때문에 평온하다.

 


터키의 음식을 말하라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입이 아플 지경이다.

나는  터키에서 다시 캐나다로 돌아올 때까지  처음부터 터키에서 사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조용한 무색의 나라인 캐나다에서 금방 온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이 꽉꽉 찬 버스를 보았을 때의 첫인상은 '케이오스'였다. 내가 어릴 때 버스 안내양이 있어서 사람을 등으로 밀어서 욱여넣고 '오라잇'하며 버스 몸통을 두드리며 출발시켰던 콩나물시루 까지는 아니더라도.


몇십 년을 동네 길에서 사람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거의 없던 내가 터키 이스탄불의 거리에서 바글거리는 사람을 보고 초장에 질려버렸다.

탁심의 이스틱랄 거리를 걷던, 놀러 온 친구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데모하냐고 물었던 것은 애교. 양념 시장에 갔을 때는 인파에 끼어서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터키 사람들에게 갇혀서 옴짝 달짝 못 하던 숨 막힘. 여자들이 스카프 쓰고 남자들이랑 내외하는 것이 거기서는  전혀 적용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람 많은 장면을 찍으려면 이스탄불 아무 데나 가면 된다. 절대 실패 없음.

그런데 터키 음식은 나에게 개안이 될 만큼 반전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가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비몽사몽간에 먹었던 고기 고추 조림은 그냥 한국 음식이었다.

밥에 비벼 먹는 고추 장조림보다 더 맛있었다. 쇠고기의 부드러운 육질은 확실히 호르몬 고기와 달랐다. 북미처럼 장거리 로지스틱만 있는 나라의 우유, 고기, 과일이 뭐가 그리 신선하겠는가? 다 냉동빨이지.

터키의 우유는 생우유로서  병에 넣어서 팔고 캐나다 우유는 장거리 수송상 생우유를 건조해서  분유를 물에 타서 플라스틱 통이나 심지어는 비닐봉지에 넣어서 판다. 육류도 풀로 키운 고기 파는 데에 가야 사니 나머지는 뭔데?



남편이 터키 가기 싫다고 꿍얼거리는 나에게 터키에 가자고 꼬실 때에 터키 오이와 토마토가 맛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실제로는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일 년간 유급휴가를 줄 테니 푹 쉬었다가 복귀하기를 원했다.  년이 아니라 무려 년이나 터키에서 살았다.

그 저주의 터키 오이와 토마토가 어찌나 싱싱하고 향긋하고 달고 아삭하고........

캐나다에 와서는 웬만하면 오이도 안 사고 토마토는 아예 다도 안 본다. 세상에 그렇게 뻣뻣한 토마토라니 안 먹고 말지. 


터키 음식에 빠져버린 나.

기름밥도 고소하고 케밥도 맛있고 포도잎에 싼 '돌마'도 입맛에 맞으며 아침 대용 죽인 '쵸르바'는 붉은 녹두를 갈아 만든 배신의 수프. 장자권을 빼앗은 붉은 팥죽이 이 죽이었단다. 예전에는 식당에 들어가면 손님 키만큼의 케밥을 팔았다는 매콤한 '아다나 케밥'. 그 전문 식당에 가니 애피타이저를 다 먹은 후에 포도주 잔을 군데군데 뒤집어 놓더니  쿠킹포일로 싼, 마루 한 폭 사이즈의 긴 판자에 얹힌, 무지하게 긴 사이즈의 케밥은 맛보다도 신기했다. 또 '장군 케밥'이라 해서 장군복을 입은 서버가 칼을 들고 케밥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항아리 케밥'은 전통적인 모양새에 비해서 맛은 별로 없다. 요거트와 토마토 수프로 덮은 고기 위에다 펄펄 끓는 버터를 들어붓는 '이스켄데르 케밥'은  그런대로 터키 냄새가 난다. 그러나  만인이 다 좋아하는 고등어 케밥은 케밥의 왕이다.

한 입 베어 물은 후의 첫마디는 '왜 비린내가 안 나지? 였다. 생선을 빵속에 끼운다는 것도 예측 불가. 그 발상도 터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뜨거운 태양과  해협의 비릿한 바람 냄새와 섞여서  갓 구워낸 생선의 고소한 기름 맛과 무조건 맛있는 터키 바게트 빵과는 숙명의 조합이 되겠다.  음산한 런던의 비 오는 거리나 어둡고도 을씨년스러운 북유럽의 거리에서 고등어 샌드위치?

생각만 해도 비려서 한 입도 못 먹을 것 같다. 그들은 나름대로 헤링 통조림의 생선을 빵에 발라서 잘 먹고살고 있으니 다 살게 마련.


날씨가 뜨겁고 건조하기 때문에 농산물을 자급자족하고 러시아 등지로 과일, 특히 토마토와  야채를 수출하고 견과류나 올리브 오일은 고소하다 못해서 먹으면 온몸에 기름이 좔좔 돌 정도 윤기가 나는 것 같다. 특히 헤이즐 넛은 세계 생산량의  40 % 를 차지한다고 하니 중동의 대추 야자와 함께 견과류가 터키 사람들의 에너지 원인 것 같다. 요거트도 물론. 플레인 요거트에 물과 소금을 탄 요거트 드링크인 '아이란' 역시 그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고.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마시는 티, ' 챠이'에 있다. 동네 어귀에 노인들이 애기 의자에 앉아서 티를 마시는데 각설탕 다섯 개가 기본일 정도로 무지하게 달게 먹는다.

그래서인지  당뇨가 많고 당뇨성 망막염인지는 모르지만 눈에 허연 막이 낀 노인도 꽤 있었다. 티뿐만이 아니라 과자나 케이크가  어찌 달던지 당뇨를 부르는 당뇨식임에 확실하다.


나에게 지금 다시 터키에 가서 살겠냐고 하면 음식이나 주거도 그런대로 살만하고 터키 말도 어느 정도 하니.  비 오는 겨울의 밴쿠버에서 태양의 나라로 탈출할 의향은 물론 백퍼 있다. 그러나 배짱도 줄어들고 의욕도 모닥불이 질 때처럼 허연 재 속에서 작은 불빛만 깜빡이고 있으니 움츠러드는 건 사실이다. 그리운 마음에 일 년 살이만 하고 오면 어떨까? 하는 얌체 같은 생각이 슬며시 든다.


배추도 때가 되면 나오니 김치도 담가먹고 한국식품점인 스마트 마켓 여 사장님이  직접 만드는 맛있는 각종 떡이  떡순이의 배도 채워주니..

돼지기름을 안 넣은  한국 라면도 수입이 되고 돼지고기가 정말 먹고 싶으면 네덜란드에 가서 먹고 오면 된다. 내가 살 때는 외국인을 위해서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정육점이  탁심 근처에 있었다. 최소한의 한식으로 일단 위장을 코팅을 한 다음에 터키 음식과 신선한 야채와 창고시설이 많지 않은 관계로 달콤하게 완숙이 된 제철 과일을 먹어야 하는 고충 외에는 없다.

양고기가 노린내가 난다고요?

터키 양고기 다리 구운 걸  먹으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간답니다.

 쇠고기, 닭고기, 양고기 다 야생의 맛이 나면서 진짜 고기 맛을 알게 되었다. 불고기 감으로 얇게 썰어주고 갈비찜용으로 썰어서 배달까지 해 주는 한국 식당까지 있으니

한식, 터키식 모두 만족스럽고 슬기로운 식생활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가보고 싶은 터키!!!!

 

그러나 여행조차도 가고 싶다고 갈 수 없는 잔혹한 코로나 시절이여.


작가의 이전글 맛있는 음식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