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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Feb 24. 2021

남처럼 살지 않기

나답게 살기                                  

아이들이 학교에서 숙제를 낼 때 남의 것을 베끼면 절대 점수가 안 나올 뿐만 아니라 빵점이라고 설치면서 밤새 낑낑거리며 책과 씨름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북미는 표절에 대한 지나친 결벽증으로 글자 하나까지 신경을 곤두 세운다. 요즘처럼 SNS 때문에 모든 정보를 실시간에 공유하다 보니 베끼기가 퇴출되어가는 바람직한 분위기이다.

창의성보다는 암기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점수 경쟁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창작의 산통이 배가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극도의 창의성이 요구되는 예술 분야에서는 고전할 확률이 더욱 커진다. 그래서인지 인내가 요구되는 창작이 어려워서 좋은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독서량과 실제의 삶에서 체험한 것, 문학적인 재능과 자질로 창작해야 하는 고된 작업의 소유자들만이 진정성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인스턴트식의 짧은 재치 글로 소통하는 이 세상은 이미 신세계이다.

울림이 있는 글은 어느 한 줄도 쉽게 나오는 법이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창작자의 숙명임을 다 알고 있다. 그 이유는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먼저 알아본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영혼만이 진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남아있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뭐든지 비즈니스로 치닫는 이 시대의 모퉁이에서.


몇십 년 전에는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헝그리 정신으로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개천 용'이 나올 수 없는 엄청난 빈 부 차이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 같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래서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늪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형편이어서 답이 없다.


그 시절의 사기를 치는 것이란 돈을 빌려가고 떼어먹는 일이었다. 또 언변이 좋거나 사람을 홀리는 수단이 있는 사람들은 이 돈만 있으면 사업이 불 일듯이 일어난다고 설레발을 쳐서 그 모습에 홀딱 넘어간 친척들이 십시일반 모아주곤 했다.  그중에 고지식하고 인정이 많은 친구는 자식들 대 여섯이 오글거리는 콧구멍만 한 집 한 채를 담보로 보증을 섰다가 친구가 망하는 바람에 대신 친구의 빚을 갚느라고 온 식구가 거리에 나 앉은 가슴 아픈 가정사가 비일비재했다.

그 세대 아버지들의 계산할 줄 모르는 우정 때문에 가난이 대물림이 되어 고통받는 자녀들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추스르지 못한 채 여전히 내 주위에 있다.


생활에서의 거짓도 이렇게 힘이 든데 예술인이나 지식인들, 특히 창작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산다면 타인에게 주는 그 정신적인 폐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볼 수 있다.

 글 속에 담겨있는 진실되지 못함이 잘못된 정서로 이끌므로.

그래도 양심의 소리는 들을 텐데 관종을 추구하는 세태 때문에 자칫 창작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 할 수도 있다. 애써 외면할지도.


 그리스의 유명한 연설가인 '데모스테네스'란 사람은 호흡이 짧고 부정확한 발음을 극복하기 위해 조약돌을 입에 물고 피 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런 자기 극복을 통해서 당대의 유명한 연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연설을 통해서 설득하고 감동을 주었던 말들과 그리 삶은 일치하였는가에 대해서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다.

말과 글이 그럴싸해도 행위와 인격에서 전혀 반대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한 사람으로 알려진 '데모스테네스 '의 동상 밑에는 '그대의 지혜만큼이나 그대가 용감했더라면'이라는 글이 적혀있다고 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데 확실하게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말일 것이다.

반대로 이중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뱉어놓은 말대로 살지 못한다는 역설로 들린다.


한 번의 거짓말이나 위선적인 삶은 처음이 힘들지 두세 번 하다 보면 합리화와 당위성을 서서히 장착해서 당연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래서 거짓의 거대한 파도에 의해 서서히, 아니 금방 휩쓸려 내려가서 자포자기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란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의 비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려는 발상이었다고.

 그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 매콧'이란 이름으로 다른 장르의 소설을 썼던 동기는 순수한 창작에로의 열정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의 창작물을 표절하는 것이나 자신의 말과 글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똑같이 거짓과 껍데기의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지식은 혼돈스럽고 우울한 반면에 지성이나 지혜는 단순하고 관대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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