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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Feb 16. 2021

생각 습관병

알면 병, 모르면 약

옷만 유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60,70년 대에는 암이라고 하면 자궁암이 대부분이어서 자궁암 검사를 권장했는데 어느새 위암이 발병률 1위를 차지했다. 그러더니 유방암과 갑상선암이 줄줄이 확진되어 나오고 냉장고의 최대 폐해와 지방의 과다 섭취, 즉 식생활이 서구식으로 변하면서 생긴다는 대장암을 비롯해서 듣도 보도 못 한 부위의 암환자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루프스, 장의 융모가 닳아 빠지는 실리악, 루게릭 등 희한한 병들까지 가세해서.


내가 어릴 때 중국 영화인 '스잔나'라는 영화에서 '리칭'이란 배우가 뇌에 암이 퍼져서 눈이 멀어 화로의 불에 손을 대고 괴로워하던 장면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뇌암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나만의 기억만은 아니리라.

그 후에 암의 증상 및 투병과 치료 후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조기검진과 발견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말기암 환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죽음과 싸우고 있다.

사실 미국에서 키모 러피의 발단은 백혈병 치료에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암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표적치료 등으로 상당히 발전해서 다행이다.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친구 한 명도 아픈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데 친구 따라 검사하러 갔다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3개월 만에 이 세상을 떠났다. 친구 따라 강남은 가도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지 말란 말도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생존율이 낮은 난소암으로 8년을 고생하면서도 명랑하고 꿋꿋하게 투병을 하다가 남편이 한국에 갈 때마다 첫사랑을 만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급작스레 악화되어 몇 달만에 눈을 감았다. 두 경우 다 남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재혼을 빨리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부인이 투병 중에 딴 여자를 만난 남편이나 갑자기 부인을 떠나보낸 남편이나 왜 그렇게 서두르던지 그 소식을 들으니 속이 뒤집어지더라. 누굴 믿고 사냐고.


주위에서 보면 신경을 많이 쓰는 직업군의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는 사람들은 다리 관절이나 팔다리는 멀쩡한데 비해서 육신을 많이 써서 인공관절에다 허리 수술을 한 사람들을 보면 잠을 잘 자고 혈압이나 그 외의 대사질환은 많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살면서 균형이 깨지면서 병이 난다는 결론인데 사는 게 누구 좋으라고 굴곡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겠냐고. 부부 사이가 좋으면 자식이 힘들게 하고, 자식이 효자면 남편이 속을 썩여서 온 가족이 다 같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혹독하던 시부모가 다 돌아가신 후에 애면글면 살다가 내가 갈 차례가 되니 서글픈 인생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제는 정보화 시대가 되어서 병이나 약에 대한 정보에 실생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증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줄줄이 내려가다가 나중에는 암으로 귀결된다.

약은 또 어떤가?

 그 약만  먹으면 만병통치,  나중에 부작용은 거의 미미한 수준으로.

결국은 상술에 놀아나는 것 같아서 역겹다. 귀중한 생명이 걸린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런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약을 좋아하는지.



먹방 아니면 건강프로가 쓰나미같이 덮치는 시대에서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갖 치료법, 수술 없이 통증 완화할 뿐만 아니라 삼천리 방방곡곡의 나물만 채취해서 삶아 먹어도 못 고칠 병이 없는 것 같다. 도움을 받아서 완화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도 이 약 저 약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인이, 기운이 없어 축 처진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서 뭐가 좋다고 구해서 권하면 '에잇. 그까짓 거가 무슨 효과가 있겠어'하며 틱틱거리다가 며칠 후에 똑같은 약을 져와서 친구가 줬다며 한라산이라도 오를 듯이 기운이 펄펄 넘친다. 약도 먹기 전에.

남의 말은 잘 들어요.


영양제를 하루에 5~6 가지를 먹는 친구를 관찰해 보니 완전 플라세보(위약) 효과가 아닐까 할 정도 약에 심취해 있다.

 이 약은 어디에 좋고 저 약은 어디에 좋고 해서 온 몸의 구석구석까지 정기를 불어넣어 줄 것 같은 희망에 차서 매일매일 약을 한 움큼 씩 삼키고 있다.

그 플라세보 효과로 치면.

내가 어렸을 때 양키 장수 아줌마(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파는)가 대 주던, 이름도 기억하는 'Libby'라는 미제 오렌지 주스가 있었다. 당뇨가 있으셨던 모친은 비타민C 섭취를 위해서 장복을 하셨는데 우리도 감기 기운이 있거나 하면 한 잔씩 얻어 마셨다. 무슨 보약을 하사 받듯이.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새콤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주스 한잔에 감기가 다 떨어져 나갔다.

벽장에 몇 십통의 군인이 사열하듯 서 있는 주스 깡통이 감기퇴치약이었으니. 모친은 흰밥은 입에도 안 대고 일생 보리밥만 드셨는데 그 주스가 딱 설탕만 안 들어간 'unsweetened'였다.

디카페인 커피만 마시는 내가 아들이 깜빡하고 사온 카페인이 듬뿍 들어 간 커피를 마시고도 쿨쿨 잤다는.

식후에 목에서 얕은 트림을 자주 한다고 했더니 패밀리 닥터가  식도염이라고 준 약을 먹어도 별 효과가 없고 속으로 이게 무슨 큰 병이지 싶은 생각에 과식만 해도 위가 틀리고 배가 아프곤 했다. 병에 대한 걱정이 극심할 무렵에 위 내시경을 했는데 식도도 깨끗하고 위도 별 문제없다는 결과를 받고는 그다음 날부터 트림도 딱 그치고 입맛만 좋았다. 그만큼 심인적인 요소가 몸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 나게 체험했다.

1~2월에 꼭 아프다는 친구는 자기는 모르지만 그 시즌에 아프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을 정도로 생각으로 병에 대한 습관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약 저 약 먹는 것이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개선이 될 거라는 심리적인 안정감 면에서는 권장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아무리 calm 한 사람이라도 기분에 좌지우지되기 쉬우니 말이다.

똑같은 상태라도 어제는 맘이 편했고 오늘은 왠지 불안하며 감정이 요동을 치니.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그 당시는 화가 나면서도 나중에 그 일을 되돌아보면 안 되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많지 않은가.  지금 잘 됐다고 좋아서 방방 뛰다가 한 큐에 나가떨어지기도 했고.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지금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짐에

항상 초조하다. 앓고 있는 병의 절반은 사고 이외에 걱정과 근심,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환멸로 인한 자괴감 같은 감정으로 인한 아픈 생각으로 생겼다고 단언한다.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마음, 마음 하다가 요즘의 추세는 심리 상담과 신경 정신과 치료를 많이 하는 추세인 것 같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때에는 사춘기라고 애교머리도 하고 좀 엇 나가보려고 하면 부모님에게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것이'하며 등짝을 맞으면서 큰 세대들에겐 상담이 배부른 투정이라고  이해가 안 가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결국 육신과 마음이 병들면 각각 디테일한 치료를 요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생각이나 인격이나 스스로 형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집안부터 가정환경 주위 환경에다 제일 중요한 유전자에 달라붙어서 증식되는 한 인간의 삶이란 어떤 면에서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약에 의존하고 기분에 좌우되며 실적위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채찍질하다 보면 지쳐서 병들게 되는 것이 수순일지도.

유리멘탈은 몸으로 병이 오고 강철멘탈은 몸이 버거워다가 쓰러지기 쉽다.


병은 저주도, 고난을 이기기 위한 위장된 축복도 아니며 그냥 몸과 마음에 통증이 있는 것이다.

또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며 살아있는 것이 형벌도 즐거움도 아니나 생각이 병과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확실하다. 좋은 것을 먹으면 몸이 좋아지고 나쁜 것을 먹으면 몸이 나빠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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