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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Jul 22. 2021

인생은 숫자 놀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어머니께서 93세에 돌아가셨는데 80세 즈음부터는 주위에 친구가 없어져서 전화 올데도 전화 걸을 데도 없어졌다고 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요즈음 같이 코로나로 노인들과 기저질환자들이 사망하는 시기에는 더욱더 노인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연락이 오고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친구들도 다 떠나서 아무도 없는  88세 노인이 쓸쓸하지만 생일 자축으로  식당에 갔다. 밴쿠버의 '키칠라노'라는 동네에 위치하고 있는. 운전면허증 같은  생일을 증명할 수 있는 ID를 가져오면 음식값에서 나이를 빼 주는 행사를 하는 식당이었다.

노인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88을 빼 줄 만큼, 즉 100불어치 먹으면 88을 빼서 12불만 내면 되는데 치아도 성치 않은 노인이 혼자 어떻게 100불어치를 먹겠는가. 

친구들 것은 안 된다니. 그런데  얼마 전에 식당을 폐업했다고 한다.

          37세 생일에 먹은 음식값


월급 통장도 숫자만 확인하고 스쳐 지나간 장이 되고 현찰은 구경도 못한 채 현실감 없이 카드를 북북 긁어대다가 초라한 잔고를  보면 무슨 정신으로 살아야 할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결국 실감이 안 나는 돈의 숫자와  바꾼 물건들 사이에서 울고 웃다가 늙어가고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내려가서 회복을 못 하면  생명이 위험해지다가 숨을 거둔다.


코로나 시대처럼 지겹도록 숫자와 씨름한 때도 없을 것이다. 감염자들과 사망자들의 숫자가 일별로 보고되는 1년여의 세월 속에서 두려움으로 정신이 혼미하다.

아무도 꺼내어 주지도, 꺼내어 줄 수도 없는 늪지에서 허우적거리는 암담함으로 몸을 떨면서.


2주 전의 캐나다 서부의 폭염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해양성 기후라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던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더니 밴쿠버도 42도를 찍었다.

살다 살다 4라는 숫자가 들어가는 기온은 처음 보았다. 딱 5일 동안 그렇게 더운데 한 3일만 더 지속이 됐으면 죽을 것 같았다.

몇십 년 동안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선선하고 기껏 더워봤자  최고가 29도 정도였다. 서북미 지역은 지진대라서 고층 빌딩보다는 4층 정도의 목조 저층 아파트가 대부분이다. 공동 주택도 나무집이니 실외기를 달면 이웃에 소음으로 방해가 된다고 많은 건물들이 에어컨 설치를 허용하지 않았다.

선풍기도 몇 번 안 틀고 넣어 두었던 여름이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방문을 하나 열면 소금방이요 다른 방문을 열면 황토방, 거실은 불가마. 밤에도 불타는 더위로 침대는 뜨끈뜨끈하고 목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옆집 엄마는 딸과 함께 코스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에어컨을 켠 차 안에서 새벽 세시까지 졸다가 왔다고 할 정도로 정말 괴로웠다. 방송에서는 계속 탈수되지 않도록 물을 많이 마시고 에어컨이 설치된 실내에 머물라고 한다. 도서관이나 쇼핑몰에 가 있으라는데 코로나 때문도서관의 책들을 집에도 가져가고 많은 사람들이 만지니 께름칙해서 제일 안 가던 곳인데. 쇼핑몰도 유니클로 같은데서는 피팅룸을 한동안 사용하지 못하게 했었다. 결국 더위가 코로나를 이기는 역사적인 순간이 왔다.

 코로나에 걸릴 땐 걸리더라도 더위에 먼저 죽겠다 싶어서 냉방이 된 쇼핑센터를 배회했다. 아이케아의 리필 콜라가 그렇게 맛있는 줄이야.  낙 리필 음료는 달기만 하고 가스가 많지 않아 맛없는 것이 특징인데 더위에 엄청나게 마셔대니 가스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거리두기 때문에 통로의 벤치도 많이 없애서 계속 걷다가 지쳐서 집에 와서는 냉면 말아먹고 냉동에 넣어두었던 물수건을 목에 두르고 쓰러지곤 했다.

냉동 수건도 처음엔 동태처럼 빳빳하다가 금세 녹아서 누굴누굴 해지더라.

더위에 변형된 깻잎과 단풍으로 변한 나무


이민 오면 한국에 있는 부모에게 불효자, 불효녀가 되기 십상이다. 부모님이 아파도 기껏 전화나 하고 화상 통화가 고작이니. 장례식은 또 어떤가?

임종은 커녕 소식 듣고 바로 비행기 표를 끊어도 다음다음날 도착이니 말해 뭐하랴.

그래도 건강하신 부모님이 밴쿠버에 처음 오시면서 내가 언제 또 오겠냐 하시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하시고 그 후에도 여섯 번 오셨다는 특별한 분 빼고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만 하고 있다.


이번 밴쿠버 더위로 가정불화까지 생길 판이었다. 여기에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노모도 90 평생에 이런 더위는 처음 본다고 하시면서  더위에 지쳐서 꼭 돌아가실 것 같아서 집에 모셔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고. 서부의 많은 노인들을 포함 720명이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다 단 5일 동안에. 더위가 한국 뉴스에도 나고 딴 집들은 형제자매 친척들까지 괜찮냐고 연락들이 오는데 한국에 있는 오빠는 자기는 둘째치고 구순의 어머니 어떠시냐고 전화 한 통 없다고 무척 서운해했다. 다른 친구는 무슨 걱정거리 있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의 동생이 전화하더니 일체 연락이 없다고 다 소용없다나. 이민 간 형제자매에게 부모님 장례 외에는 알릴 여유가 없이 바쁘게 사는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 다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도, 할 필요도 없으니 각자  선택한 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코로나로 인해 엄청난 사망자의 숫자에 패닉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바이러스는 변이에 변이를 계속하면서 아직도 약한 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멀리서 출구가 보이는 듯하다가도 그 희미한 밝은 빛이 마치 신기루였던 처럼 다시 어두움에 덮이는 것 같은 희망 없음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전쟁보다 더 독한 감염병으로 신음하는 이때에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서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형상이다.

백신도 만능이 아니라며.


코로나로 앰뷸런스는 안 다녔는데 이번 서부 캐나다의 더위로 하루 종일 오가앰뷸런스가 내지르는  사이렌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더위로 쓰러진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모양이었다..

이래저래 사투를 벌여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사이렌일까?

물과 불로 인한 자연재해에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까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을 막아내기에는 너무 벅찬 나날들이다.


참, 구독자 수와 좋아요 숫자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담담함을 장착해야 심신이 편할텐데.

그것도 결국 숫자 놀음일 뿐인데 말이다.

아기곰도 더운지 수영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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