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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강 Jul 09. 2018

남자가 사는 길

캐나다 이민생활

캐나다에 이민 온 지 일 년도 채 안 되는 가장이 갑자기 병에 걸려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곳으로 이민을 왔는데 소심한 성격에다 한국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했던 그는  한국에서의 일을 접고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민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고 마치 옆 동네로 이사를 가듯 쉽게 결정을 내리는 요즘 같은 세상이라 할지라도 남의 나라, 그것도 캐나다 같은 서양권에서 적응한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젊은 세대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해서 적응 하기가 좀 더 수월하겠지만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가히 혁명적인 정보의 홍수 때문에 세계가 하나가 됐으니 외국에 사는 것이 마치 피크닉이라도 가듯이 가뿐한 마음으로 이민을 결정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다.  

일단 한 가정에 이민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부부간에도 동상이몽이 시작된다. 부인들은 아이들의 사교육비와 생활비에다 거주환경 등을 조목조목 땨져 보는 반면에 남편들은 그날부터 저녁마다 술자리를 만들고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벌써 이민을 다 간 사람들처럼 송별회 때문에 바쁘다.

주위에서는 부러움 반, 서운함 반에다 한국도 좋은데 웬 이민? 하면서 약간의 질시가 섞인 눈초리도 받으면서.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가장은 외국에 와서도 '그까짓 것,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인데 뭐라도 해서 먹고 살리라'는 배짱으로 오는데 비해서 직장생활을 하던 가장은 매달, 수돗물같이 공급되던 월급이 딱 끊어진다고 생각을 하면 갑자기 공포심에 휩싸이게 된다.

요즘처럼 정년이란 개념조차 없는 회사에서 정리해고, 구조조정이니 해서 40대는 물론 30대에도 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의 이민은 하나의 돌파구 인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온 가족의 운명을 걸어 본다.  


이민을 와서 사람들도 만나고 직장이나 비즈니스에 대한 정보를 한 보따리 끼고 앉아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 부인은 온 지 얼마 안 됐어도 여자만의 직감으로 캐나다야 말로 축복받은 나라라고 흥분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한국에서 비싼 교복으로 장착하고도 모양내는데 한계가 있어서 불만인 데다 왕따에다 학폭에다 지긋지긋한 학사 일정에서 탈피해서 이민오면 일단 거쳐 가야 할  ESL 클래스에서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느슨함에 숨통이 트인다며 좋아한다.


가족들은 그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곳이라고 좋아하는 반면에 가장은 이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머리가 무겁기만 하다. 점점 쌓여가는 이민 스트레스를 속 터 놓고 이야기하자니 뻔한 동네에서 가십거리 되기가 십상이라 말할 곳도 없고 풀 곳도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다. 그러다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못 이겨서 쓰러지는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닌, 이민사회의 돌림병처럼 퍼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마치 페스트가 한 두 마리의 쥐에서 병이 퍼졌듯이.


남의 앞에서 눈물은커녕 콧물도 안 보이는 한국 남자들의 가부장적인 사고가 어떤 면에서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병을 초래하는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별 것도 아닌 것에도 환호하며 호들갑을 떨면서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반면에 눈물을 흘리는 것에 인색한 한국 남자들은 마음속에 쌓이는 독을 풀 방법은 오로지 술로 해소하려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운동으로 흘리는 땀이나 눈물이나 다 같은 액체로써 노폐물이라는 것은 똑같으나 한 맺힌 것, 서러움, 미움의 찌꺼기, 회환 같은 것은 눈물이 아니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한 성질의 화학 물질이다.


남자들이여, 특히 이민 온 남자들이여, 부인이 외출한 사이에 슬픈 드라마를 보고 울던가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울어보라. 물론 처음에는 눈물이 잘 안 나오니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기도 하고 사랑하던 이와 헤어지던 장면을 생각하면서 시도를 하면 된다. 그러다가 눈물샘이 터져서 평평 울고 나면 마음의 짐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감 비슷한 것들이 짓누르던 무게가 어느 정도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실낱같은 소망의 빛이 어디선가 비취는 것 같은, 그래서 '씨익' 웃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길 것이다. 울다가 정말 웃을 수도 있다는 실감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부부싸움을 해도 화가 난 부인이 먼저 차를 몰고 나가 버리면 남편도 속이 답답해서  집 밖으로 뛰쳐나가 보지만 가로등도 많지 않은 동네 골목도 음침하거니와 집 근처의 공원에 가서 머리를 식히려 해도 수시로 나오는 곰 때문에 무서워서 집에서 나갈 수도 없다. 자연이 좋다는 캐나다의 밤은 그야말로 창살 없는 자연 감옥이니.

이민이라는 또 다른 삶의 여정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것이 주는 시련과 불행이라고 생각되는 작위적인 우울감을 오래도록 견디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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