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법
작년 모 대학에서 영어회화 강좌를 수강했던 적이 있다.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은 원어민 교수님의 질문에 서로 대답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그저 말하기 보다 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해 아쉬울 때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수업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곤 했다.
하루는 베트남 유학생이 교수님께 물었다.
“어떻게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셨나요?”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화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연구실에서 틀어박혀서 연구하는게 너무 싫었어요. 고심 끝에 저는 한국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그렇게 수업을 가르친 지 17년이 지났네요.”
엔지니어에서 교수로 진로를 완전히 바꾼 순간의 선택이 그가 사는 나라의 주보다 아니 미시시피 호수보다 작고도 작은 동양의 낯선 곳으로 몸을 싣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나라였고, 누구보다 외국인에 대한 환대가 넘치는 곳에서 그는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쩌다 한국으로 왔을까? 그 결정이 쉬웠을까?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언어도 통하지 않고, 조금만 버티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엔지니어 직업을 그만두고 코딱지만한 월급을 받으며 살아야하는 낯설고 자그마한 나라에서 국립대 교수를 하는 게 조금은 의아한 결정은 아니었을까?
때론 자신이 이 길을 걸으면서 후회의 순간도 찾아올 법도 했다.이 길이 맞다고 여겼는데, 막상 해 보니까 맞지 않아 당황할 때 우린 '후회'가 물밀 듯 쏟아진다.
대학교 1학년 입학 전, 선행 학습차로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던 적이 있다.
첫 수업 때 자바를 배웠다. 간단한 명령어만 익히면 'Hello World' 를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띄우는 일은 식은 죽 먹기여서 흥미가 조금 생겼다.(이 때까지만)
하지만, 연습문제에 직면했을 때 키,몸무게를 측정하는 방법을 프로그래밍 해오라는 교수님의 과제에 나는 막막함을 느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한들 책에 나온 내용 중에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있어야말이지.. 나름 머리를 짜내어 코딩을 했지만 컴파일 에러가 무수히 뜬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도 제대로 알 수도 없었다.
결국 1학기 만에 나는 이 과를 나와서 무엇을 해야할까 막막함을 느꼈다. 전공을 살려서 S/W나 H/W 개발자로 들어간다 한들,주말을 포기하고 월화수목금금금의 삶을 밥먹 듯 해야한다는 게 나에겐 커다란 괴로움이었다.
그러다 머리를 식힐 겸 영화를 보는데, 어떤 회사에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접었다 펴는 광고를 보자마자
나도 저런 소재를 개발하고 싶었던 욕구가 마구마구 샘솟았다.
'그래, 나도 저거 만들어 볼테야!'
1학년 1학기 때부터 나름 열심히 전과를 목표로 삼고 공부를 했다. 2학년에 올라가기 전, 전과에 성공하여 이제는 나도 어엿한 소재 개발자가 될거라는 희망을 한동안 품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벅차기만한 감정이 물밀 듯 솟구쳐 올랐다.
재료가 온도에 따라 상이 천차만별로 바뀌고, 물성도 달라진다. 결합에 따라 강도,경도,인성 등 기계적 특성이 달라진다.전자 회로도를 보고 이게 병렬인지 직렬인지 계산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공업수학에 나오는 편미분,상미분 라플라스가 뭔지 나를 미치도록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슈뢰딩거 방정식까지 등판하니 내가 전공지식이 있다가도 없는 게 동시에 나타나는 듯한, 한 마디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가까스로 공부를 해서 낙제는 면했고 장학금도 가까스로 받으며 빚이 늘어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그 후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한 후, 제대하자마자 집안 형편상 편입공부를 하기로 다짐했다. 가족들과 상의 후 지방의 한 국립대의 같은 학과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을 했다.
하지만 막막함은 더했지 그치지 않았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전공 언어 속에 나의 자신감은 무겁게 가라앉아버렸다.학점은 엉망이고, 내가 바라던 이상은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다.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회사가 공개한 2019년 상반기에 지원한 사람들(공대 기준)의 스펙에 따르면, 평균 학점 3.7이상 어학이 LV6 이상이라고 들었다.
어학은 무리없이 충족된다만 문제는 학점이 3.7 미만인데다, 너나 할 것 없이 공부했던 반도체 8대 공정을 자신있게 설명하기도 힘들 뿐더러 수 많은 무리들이 줄지어 너나할 것 없이 대기업에 들어가도 숨막히는 경쟁 속에서 내가 2년 이상은 다닐 자신이 없다고 여겼다.
한 때 이 길이 맞다고 나름대로 확신을 했지만 막상 상황에 부딪혔을 때, 제대로 노력도 하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셈이다. 나에게 남은 건 결국 낮은 학점,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떨어지는 흥미와 자신감, 억지로 노력해봤는데도 남들 앞에서 전공을 논하면 처참하게 깨져버리는 나의 지식 수준과 멘탈리티 뿐. 결국 공대생들의 선호 직무인 R&D, 생산,설계 그리고 품질 직무는 조금씩 내 영역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졸업 후 갈 곳 하나 없었다. 아주 운 좋게(?) 입사한 회사는 대감집 대문으로 들어가 머슴살이하는 신세였다. 그 곳에 들어가 장비 설비를 했지만, 전혀 적성이 맞지 않아 나온 것이 내 이력의 전부였다.
퇴사 이후 나의 미래는 어둡기만 했다. 어디로 가야할까. 이력서를 써도 내가 나아갈 길은 보이지 않고 답답했다. 조금만 더 참고 고생했다면 내 삶은 많이 변했을텐데라는 후회만이 남아있었다.
직업에 대한 후회에 대해 생각에 잠긴 채, 수업에 참석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카지노 슬롯머신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마트의 생선코너에서 일을 한 남자가 보였다.
수 많은 나라를 제쳐두고 한국에 와서 어려운 공부를 결심한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학과에서 공대로 전과와 편입을 하며 방황했던 나와 이 외에도 워홀, 유학 등등 나이 성별 막론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온 학생들이 보였다.
저마다 후회의 감정이 있지만, 이미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일 뿐, 순간을 반면교사 삼고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택한 이 길에 책임을 가지고 걸어가는 확신이 후회를 잊는 방법일 지도 모르겠다.
오늘 배운 단어 Career와 Regret에서 나는,후회 없는 삶이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임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