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 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순간 한 조각(10/30)

by Shysbook

어린 나는

무너지는 마음 안에 있었다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

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안미옥 시인의 시 <온> 중 톱니-


쌓았던 마음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기초 공사가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방법을 몰라서였을까.


간신히 부여잡아가며 흔들거렸던 마음에 균열이 가서 파스스 무너질 때.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3년 전, 나는 잘개 쪼갠 시간 틈 속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시간의 틈 속에서 나는 살아야했다.

실험 조장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로, 운동하는 나로, 과제하는 나로, 독서하는 나로.

찰나의 순간 속에 나는 다양한 경험과 생각과 행동으로 모든 것을 채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낌새라도 알아차릴 새도 없이 균열이 갔고, 그 허점을 노려 빈틈은 서서히 벌어져 이윽고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누군가의 기대에 쉽게 무너졌다. 고등학교 시절, 밤새도록 화학 문제를 붙잡고 외울 대로 외워가면서 공부했지만 좀처럼 성적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 분석하고 공부했지만 또 나오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똑같이 밤을 새고, 도서관에서 하나의 과제를 할애하기 위해 5권에서 10권이 넘는 전공 서적을 뒤적였다. 인터넷으로 논문을 찾아서 읽고 또 참고했다. 발표는 처참했다. 결과는 처량했다. 그 후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평가와 조롱에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마음이 회복될 틈도 없이 바쁘게 보내야 살아남는다며 아픈 나를 안아주지 못했다.


‘공부머리가 아니니까 차라리 진작 그만둘걸 그랬어.’

마음이 무너진 이후 무너지는 일에 익숙하다고 여겼다.

차라리 다시 쌓기보다 무너져 무뎌져버리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설혹 좋은 일이 찾아오더라도 기쁨을 기운삼아 전진하기보다 온전히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튀어나왔고 불안감이 새어나왔다. '이것도 운인 걸.' , '뭐 이거갖고..' , 굳이 좋게 말하면 '더 노력해야죠.' 라며. 겉으론 겸손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불안을 감추려는 행위였다.


무너진 마음에 의심이 자리 잡았다. 좋은 일 뿐만 아니라 나쁜 일이나 슬픈 일에는 '이건 내가 처신을 못해서 남들이 피해를 입은 거야.' 라고 의심을 했으니까.


의심의 전재는 누군가의 평가가 종종 뒤따랐다. 좋은 일에 대해 피드백을 받더라도 진심인지 긴가민가했다.

슬프거나 나쁜 일로 인해 피드백을 받으면 '이게 나야.' 라고 인정해버렸다.


결국 나를 믿지 못했다. 스스로 믿지 않았고 그런 연습이 결핍된 채 그저 나는 남들이 주는 용기의 말로 애써 의심을 덮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은 늘 시리고 갈망했다. 어딘가 당당하지 못한 채, 쭈뼛거리는 모습을 감출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마음이 무너졌을 때 아침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최악의 생각까지 할 정도로 머릿 속에는 짜증과 불쾌함과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 동안 대화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속한 단체 채팅방을 나가고 SNS를 끊어버렸다. 누군가와 아무런 말 한 마디 하기 싫을 정도였다. 우울함이 미친듯이 지속되었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빈도가 잦아졌다.


의심의 감정은 증폭되었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착하다는 말, 성실하다는 말은 가식으로 여겼다.

그렇게 나는 외로워지기를 택했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며.


좋은 말은 쉽게 잊어버렸다.

나쁜 말을 들으면 냉소와 의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음을 쌓아올릴 힘은 사라져만갔다.



하지만 그런 나를 다시 돌보게 된 건, 작게나마 나를 기억해주고 있는 존재였다. 사람으로 상처 받은 나는 되려 사람으로부터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무너진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 더디지만 차근차근히 쌓아가는 법을 다시 연습하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쪼개어가며 애써 나를 갈아넣지 않았고 마음에 여유 한 점을 남기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멀리 하며 타인의 보여지는 모습에 비교하고 열등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했다.

나를 향해 진심어린 조언과 격려를 한 사람들은 실은 진짜 나를 위해서 그런 말을 했음을 기억하고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감정표현이 서툴자 조금씩 감정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결코 자책하지 말라고, 남들의 시선, 누를 끼친다는 표현도 하지 말라는 말을 떠올린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부담이 가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다독였던 분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그 후로 내 마음은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쓰기보다 스스로에게 향하려 한다.

타인의 평가가 내 삶의 척도가 되는 순간부터 내 삶은 이리저리 휘둘리거나 흔들리기에.


흔들거리는 삶에 불안을 느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연못에 물결이 요동칠수록 표면에 이끼나 녹조가 끼지 않고 썩지 않으니까. 불안은 결코 없어지는 감정이 아니기에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오롯이 나를 견뎌낼 중심을 지켜가기로 한다.


주저 앉은 마음에 너무 상심을 갖지 않기로 한다. 쌓아올린 마음이 있었기에 나는 그 과정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쌓고 쌓을 연습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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