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게 없으면 잘 버티기

순간 한 조각(16/30)

by Shysbook

초,중,고등학교 나아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의 재능을 찾고 발견하는 법을 선생님이 가르쳐줬더라면 아마 꽃다운 대학생 막바지를 허둥지둥 보내지 않았을 터. 대학교 4학년은 본격적인 취업 막바지 시기이기도 하다. 이력서를 채울 마땅한 경험이 없는 듯 했다. 책상 위 노트북의 커서가 깜빡거리는 것을 지켜보다 밤새도록 내가 했던 경험을 어떻게든 쥐어 짜내어가며 썼긴 썼다. 문제는 더 큰 난관인 자기소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1번 항목인 '지원 동기' 에서 내가 왜 가야하는지를 설득해야하고 2번 항목인 '자신의 강점' 을 찾으려 심리상담센터에서 MBTI를 검사한다든가 지원할 회사의 여태껏 해온 경험과 성격을 인재상에 끼워맞춰가며 자신의 강점을 드러내는 수고를 해야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잘 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학업 등수는 중하위권. 4년제도 낮은 과 겨우 들어갈 성적이었다. 운동도 잘 하지 못해 덩치 큰 애들에게 한 번 부딪치기라도 하면 툭 하면 쓰러지곤 하는 부실 체력 소유자였다.

언변도 화려하지 못하고,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친구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무시받기 1순위였다. 열등감과 열패감에 사로잡히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미래가 막막했다. 아나운서가 꿈이었다. 국어책 하나 잘 읽어서 그 시간이 그나마 즐거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정한 보도를 위해 낮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전하는 것 자체가 이 직업을 꿈으로 삼는 데 한 몫한 것도 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 꿈을 향해 그라운드를 질주하다가 언제라도 태클을 걸어왔다. '뭐? 이과 나와서 아나운서 한다고?' 라며 핀잔과 비웃음을 샀고 가족들 조차도 나의 그런 도전에 별로 달가워하지 않아보였다. (이과를 택한 건 아나운서가 되지 않을 때 차선책으로 삼은 것이다. 중학교 시절 김주하 앵커의 자서전을 읽으며 이과 출신도 방송국에서 뉴스를 진행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분도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나오지 않았던가. 실제로 이과 출신 현직 방송인들이 정말로 많았다. 내가 상상한 그 이상으로.)


태클을 여럿 받고 그라운드에 주저앉는 시간이 잦아들수록 나는 유리몸이 되었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국 포기해버렸다.


뭘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대학 입시도 급히 치르고 최저 성적에 맞춰 4년제 대학을 다닐 무렵 나는 잘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공대로 진학했어도 전공 공부에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고, 경쟁에 치여 나는 번아웃이 일찍 찾아왔다. 하면 할 수록 이해되지 않는 문제와 풀리지 않는 의문들 틈에서 급기야 군대 전역 후 편입에 도전해서 성공을 맛봤지만, 편입 이후의 삶은 더더욱 가시밭길이었다. 군대 전역 후 리셋되다시피 한 텅 빈 머리에 아무리 전공 지식을 욱여넣어도 소화되기는 커녕 모조리 토해버렸고, 성적은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꾸역꾸역 학점을 채우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졸업을 앞둘 무렵이었다.


학점도 엉망이고 자격증도 못 따고 그나마 했던 경험이라곤 일본어 한 마디 못하는데 일본가서 무급으로 단기 인턴 갔다온 거랑 소소하게나마 공학 설계 캠프에서 구글링 하는 일만 돕다가 우수상 수상 한 것과 유니스트에서 밤새도록 고민해도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결국 입상 하지 못한 채 빈 손으로 집으로 온 경험 밖에 없었다.


전공에 대해 어필 할 수 있는 것도 딱히 내세울 경험도 없어 막막했다.

잘 했다기보다 운이 좋아서였다. 그저 노력했는데 얻어걸린 것 뿐이었다.

하지만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기심은 잠깐이지만, 그게 전부였다.


뭘 해야 내가 즐거울까. 즐거움은 사라지고 대학의 낭만도 항상 어딘가 주눅든 채 지내왔는데 내가 졸업을 해도 받아줄 회사는 있기는 한걸까 싶었다. 결국 졸업 전 어떻게 반도체 설비 회사에 들어갔다. 일은 단순하면서도 조심성만 발휘하면 한 달에 원하는 만큼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방진복과 안전모 언제든 위험이 도사릴 수 있는 반도체 공장 내에서는 일의 보람보다 긴장이 앞섰고 뭘 하더라도 자신있게 할 여력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짧게 다니다 때려치우고 거듭된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취업 준비를 위해 이력서를 새로이 썼고, 토익 스피킹 성적을 갱신했고, 유튜브 강의를 열심히 찾아들으며 합격자들의 비법을 찾느라 먹이를 찾아 해메는 표범이 되었다. 하지만 해발고도 5895m의 킬리만자로에서는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등정한 자들의 메아리만 들릴 뿐. 유튜브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진 자신감에 동기부여 약간은 되었을지언정 과한 채찍질로 불안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결국 작년 7월. 마침내 퍼져버렸다. 잘 하는 거 찾아보려 전전긍긍했는데 돌아오는 건 젊은 사람을 어떻게든 착취하려는 못난 어른들의 심보와 무례한 언어와 막말을 구별할 줄 모르는 뇌에 필터링 좀 심어줘야 할 거 같은 인사담당자와 나보다 스펙과 경험이 출중한 자들을 목도했다. 그들 앞에서 빈번히 좌절할 뿐이었고, 현실은 너무 고통스럽기만 했다.


나는 잘 하는 게 없었다. 잘 하는 게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한다는데 노력조차도 재능이 없었다. 강점을 써보라는데 수치화가 되지 않았다. 마치 보여줘야 믿는다며 보이지 않는 것을 글로 아무리 떠들어봐도 믿음은 쉽게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예수의 제자들처럼.

(오늘 날 예수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떨까, "나는 알지만 너희들은 알아듣질 못하는 걸 어떻게하란 말인가. 믿음을 구글 애널리틱스를 써서 웹로그 분석 해서 보여줘야하나 아니면 엑셀파일로 수치화해서 너희들의 믿음이 어느정도인지 척도를 매겨야하나." 라고 한탄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보여지지 않는 노력과 강점을 증명할 수 없어 답답했고 경험조차 알린다 한들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곳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는 족족 서류에서 탈락했으니까. 하루에 두 통을 연달아 받다가 두통에 시달릴만큼 아찔한 경험도 있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 내가 해온 경험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짓밟히고 결국엔 그저 지나가는 경험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경험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갈 곳 없어 막막하기만 할 것이다. 쉬기엔 눈치가 보이고 수중의 돈도 전부 떨어졌는데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만은 않아 보여서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뒤져봤을 정도였다.


그런데 높게 느껴졌던 취업 장벽이 서서히 무너졌던 건, 나를 돌아봤을 때였다. 얼마 전 모티비에서 본 '오르에르' 김재원 대표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누가 어느 회사에 들어갔느냐,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파악해야 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있다. 그것을 캐내다보면 분명 나만의 자산을 발굴할 때가 온다."
-오르에르 대표 김재원-


(대표의 대화를 듣고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결국 내가 어떤 성향인지를 체크해야했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책을 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의 생각을 담는 게 좋아. 좋아하니까 매일 일기를 썼고, 글모임에 참가했고, 독서모임도 종종 놀러갔으며, 그 시간을 즐거워했구나. 좋아하니까 꾸준히 하고 꾸준히 하다보니 내가 생각해도 잘 해왔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는구나 싶었다.


잘 한다는 기준에 대해 명확하게 콕 찝어서 설명할 수는 없으나 잘 한다는 것이 '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내가 만족하고, 꾸준히 해오고, 이 일에 즐거움이 있다고 믿는다.


즐거우니까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꾸준히 할수록 즐거울 수도 있다.서로 상호작용하는 명제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좋았던 마음이 최우선이라고 본다. 어릴 적 부모님이 아동용 전집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동화책을 함께 읽어줬던 기억, 서면 지하상가에 있던 큰 서점에 같이 데리고 갔던 경험 등이 켜켜이 쌓이다보니 자연스레 책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책을 읽으니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이 재밌어 지금까지 책과 글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베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불과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 나로 돌아간다면 내가 지금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독립출판을 하고, 서점에서 일을 할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결국 좋아하는 그 마음이 나라는 정체성을 이루는구나 싶다.


선생님들이 학창시절에 '입시' 운운하기보다 너희들이 즐거운 일을 찾아야한다고, 강점을 찾아줄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인다면 최소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방황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무엇보다 '잘 하는 게 없는거 아닐까' 로 출발한 고민을 하다가 손에 닿는대로 무슨 일이든 하다보니 내가 누구이고 뭘 좋아했던가를 떠올릴 수 있던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서점에서 근무하기까지 나는 먼 길을 돌아왔었다. 엔지니어, 까대기, 공학 설계, 글쓰기, 독서 모임, 홍보물 제작 등등.. 이 중에서 서점에 꼭 필요한 경험이 아니었어도, 지나간 경험 속에서 나름의 짧은 교훈과 태도가 나를 자랄 수 있게 하는 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해야 해, 하면 안 돼라고 구분짓기보다

일단 하면서 나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저마다가 내리는 결론과 삶의 이유에 대해 고찰하 때 비로소 자신을 알게되는 법이기에. 아무튼, 잘 버티면서 나를 잃지 않길 바란다. 코로나로 자기 검열과 비하가 심해질지라도 세상에 소중한 사람이고 이런 고민을 통해 충분히 성장해나갈 사람임은 변치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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