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한 조각(18/30)
밥을 먹으려 밥솥을 열었다. 밥은 없고 20시간 넘게 달궈진 솥에는 온기만이 그득하다.
텅 빈 밥솥을 한참을 바라본다. 매일 꾸역꾸역 글을 쓰는 내 심정도 그랬다. 딱히 떠오르는 글감도 생각도 없어 도저히 뭘 써야할 지 감이 오지 않고 감정만 오랫동안 달궈진 채 남아있지만 감정과 어울릴 글감이 남아있지 않는 날 말이다.
브런치에는 전문가들이 가득하다. 부동산,주식투자, 육아 등 일상에 밀접한 전문가부터 본인이 종사한 업계에 잔뼈가 굵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도, 탄탄하고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전문지식을 아주 쉽게 알려주는 사람, 읽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는 사람까지 본인의 역량과 더불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 곳에서 나는 마땅히 쓸 글을 찾지 못해 먹먹하기도 했다.
삶의 내공이 부족하다면 경험을 더 살려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간 쌓아온 경험을 돌이켜보며 기억을 떠올리면 분명히 쓸 수 있는 소재가 많지 않을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생각이 안난다는 게 정확하겠지만. 설령 표현이 떠오르더라도 내가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도, 경험과 경험을 연결짓는 일도, 다채로운 표현을 현란하게 쓰는 일도 부족하다. 바다를 보면 이건 바다라고. '넘실대는 새들의 군무처럼' 이라고 쓰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이 되려 감성과 다채로움을 막아버리는 건 아닐까 한탄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일부로라도 이런 표현을 글 중간 중간에 넣어서라도 글맛을 살리려 애를 써보고 경험을 더 생생하게 떠올려보려고 일종의 발악(!)을 하고 있지는 않나 싶다.
한 편으론 나를 표현하기엔 아직도 나를 알아가야할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쓸게 없다는 것을 쓰는 역설적인 상황을 쓰는데 오히려 이마저도 소재가 되어 글을 풀어쓴다는 게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