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2022.04.02 일기

by Shysbook

봄이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볍고, 한겨울 얼어붙은 땅처럼 굳어버린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 채 그 위로 생기 넘치는 미소가 솟았다.


나뭇가지 틈새로 꽃봉오리가 헤집고 피어오를 무렵, 석촌호수, 한강 어디든 사람들은 꽃의 향연을 즐기며 걷고 또 걷다 발을 딛는 곳곳마다 하늘과 꽃을 바라보느라 걸음을 잠시 멈추곤 했다. 길에는 셔터 소리로 가득했다. 봄은 얼어붙었던 몸을 이완하는 계절. 새롭게 피어오르는 생각에 정신이 아늑해지는 순간,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을 지도 모른다.


소란한 봄. 사람들이 붐비고 기대에 부풀어 오를 때 즈음이면 나는 마음에 일교차를 겪곤 한다. 한겨울 새벽 추위 처럼 오돌오돌 떨다가 따뜻한 오후가 되면 잠시 이완되기를 반복하니 쉽게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친구 B가 추천한 뷰클런즈 카페에 들렀다. 페이퍼에 적힌 공간 설명과 이 가게의 존재 이유에 대한 사장의 철학은 깊고 단단했다. 무위. 즉,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이 곳을 찾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곳이라 말한다.


도심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에 활기를 돋기를 바라는 듯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 누군가의 연락과 안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종종 있어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사람 그리고 텅 빈 시간 뭔가를 채워넣으려 유튜브와 게임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한다. 뭔가 하지 않아도 시간은 늘상 자기 속도대로 흐르는데 조급해하는 마음이 들어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그만큼 아쉬움이 많았다고 여길 때도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늘 스스로를 다그치며 무언가를 하라고 지시했던 지난 시간들이 스쳤다. 그러다보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낙오자가 된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심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과 에너지를 끊임없이 쓰고 또 끌어당겨서라도 써야했다. 무리한 대출로 빚을 잔뜩 진 채로 살다보면 그 자체만으로 모든 빚이 탕감될 날이 올거라 믿었건만, 나에게 빚을 내보아도 결국 빚은 불기만하지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깨와 승모근은 늘 뭉쳐 있을만큼 몸은 긴장상태로 있었고, 에너지는 갈수록 바닥나기 시작했다. 시간빚이 많아 탕감할 게 많아보였다.

강력한 접착제같이 나를 붙들고 괴롭힌 생각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인정 욕구와 더 이상은 누군가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곧 부담으로 바뀌고 부담을 하루종일 짊어지다보니 그 에너지는 타인에게도 오롯이 전해져 상대방마저 불안과 답답함을 전해준 것만 같다.


20대 초반의 나는 늘 불안했다. 쉼 없이 달려야 살 것 같았다.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또래보다 못난 게 많았고, 이러나 저러나 나태하다고 여겼다. 장단도 어디에 맞출 지 몰라 헤매곤 했다. 실은 이런 움직임의 실체는 불안이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내심 기대를 바라곤 했다. 기대는 타인이 아닌 내가 해야했다. 그걸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하고 있으니 서툴 수 밖에 없다.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을까. 나의 마음이 오롯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찬찬히 기다릴 틈도 없이 ~해야한다고 다그치는 세상은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자발적이건 타의에 의한 것이건 간에 스스로에게 독촉할 수록 그 자체만으로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휴대폰보다 만나고픈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바라보고 대화 한 번과 웃음에 봄이 주는 이완과 무위의 안온을 즐겨야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의식하는 것도 벗어던지고 생각 스위치를 잠시 꺼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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