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용성, 얼마만큼 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
효용성의 시대라고 한다. 시간을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써야 하고, 취업에 반드시 도움이 될 법한 활동을 해야만 취업의 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취업과 전혀 무관한 취미나 활동은 시간 낭비 혹은 헛짓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동아리 활동이 대표적인 예다. 취업에 도움이 될법한 동아리와 대외활동에는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그 외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면 그런 걸 왜 하냐며 혀를 끌끌 차는 친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취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과 그렇지 않은 활동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그걸 구분 지어 색안경을 낄 필요도 없다고 본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책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구내 도서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운 좋게 당첨되어 3달 정도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나의 행동을 보고 더러는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혹은 시사 상식 정리하거나 스펙 쌓는 거 하나라도 제대로 하기에 시간이 없는데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게 너에겐 도움이 되겠냐는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나는 ‘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보자.’는 배짱이 앞섰다. 효용성을 넘어선 배짱과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였으니까. 하나, 효용성 측면에서 보면 심각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남들보다 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효용성에서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시간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였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책 만드는 일은 시간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교육장소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지 30분 만에 도착하는 곳이고, 수업 참가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3시간이 낭비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수업을 받을 때, 나의 마음은 흥미 반 걱정 반이었다. 전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후자는 취업 준비하는 사람이 이걸 꼭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은 으레 그렇듯, 무엇이든 흥미롭게 다가왔고 무엇이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2~3주 차는 본인이 어떤 책을 만들 것인지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자가 어떤 책을 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는 간단명료하기보다 으레 늘어지곤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생각이 불쑥 튀어나옴과 동시에 감정엔 알 수 없는 짜증과 조급함이 도졌다.
그때의 나는 책을 만드는 수업 사이에 몇 번이고 면접을 보러 다녔었고 , 그곳에서 쓰라린 패배를 안았던 상태였다. 마음은 자꾸만 부정적으로 변하던 시점이었고 언제 취업하나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을 때였다.
면접에서는 분명 결론부터 이야기하지 않으면 감점 요인인데, 저렇게 길게 늘어서 이야기하면 면접관들이 싫어하는데라는 생각이 숱한 면접을 보면서 들었던 탓일까, ‘그래서 결론이 뭔데?’ 이 말 역시 나 스스로를 효용성이라는 인사담당자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한심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만약 면전에 저런 이야기를 했더라면 나는 아마도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수업 때 이야기 한 사람은 단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뿐이었는데, 수업 의도에 맞게 잘해오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해 한 사람의 삶에 딴지를 걸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집에 도착해서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몇 년 동안 내가 해왔던 취미와 행동을 머릿속으로 검토해봤다.
크건 작건 내가 해온 모든 경험을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했던 일의 매출은 얼마인지, 사람들이 얼마만큼 찾아왔는지, 이전보다 시간을 얼마나 단축시켰는지에 대해 경험을 재해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가고 면접을 봤다.
‘매출’, ‘재방문율’, ‘시간 단축’ 등등.. 이 모든 요소가 효용성에 포함되는 것들이었다. 효용적이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상대방에게 증명해야지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재라 여긴 채 말이다.
경험과 내가 해온 과정마다 정당성을 부여했고, 정당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색안경을 끼고 살아왔으니 그 결과는 극심한 무기력과 조급 함이었다.
그 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취업 준비할 때는 준비에 신경을, 책을 만들 때는 책을 만들 때 집중하자.’ 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책도 만들었고, 함께 책을 만들던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가제본으로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었고,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극적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꾸준히 해왔고, 즐기면서 했던 것들을 돌이켜보니 오히려 그것들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왔다. 특별한 목적과 정당성을 매칭 해가며 해왔던 일들은 오히려 즐거움보다 의무로 가득했다.
책을 만든 경험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책을 더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책에 대해 생각을 더 깊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 한 권을 만드는데 한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있고, 삶 그 자체가 들어가 있기에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효용성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은, 내가 뭘 얼마만큼 했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어떤 태도를 가졌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얼마만큼 했는가를 넘어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가 일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해온 모든 일들이 의미를 그리려고 애를 쓰면 정작 재미를 느끼거나 의미가 퇴색되어버리기 마련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