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12

우한 폐렴이 가져다 온 ‘혐오’ 감정

by Shysbook

요 근래 가장 시끌벅적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다.(이하 코로나)


코로나는 호흡기를 통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전염되는 질병으로써 사망자가 2020년 2월 1일 기준으로 258명, 격리조치자는 1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인만큼 WHO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매장 안에는 어느샌가 마스크를 쓰는 손님들이 늘었고, 직원들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근무를 시작했다. 간혹 중국에서 온 손님들 중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오신 분들이라도 간혹 있으면 본의 아니게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현재까지 감염되어 격리 조치된 인원은 아무도 없어 다행이지만, 혹여나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영업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세먼지 가득했던 날에도 쓰지 않던 마스크를 쓰다 보니 아무래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특히 안경을 낀 나에겐 마스크는 답답함 그 자체인데다 마스크를 쓴 채 숨을 쉬다 보면, 렌즈 밑에 김이 서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와 입이 막혀있다 보니 숨 쉬기가 참으로 갑갑했다. 심지어 내 날숨이 마스크 안에 고여(?) 있기에, 직접 내 입냄새(!) 맡으며 스스로 화생방 훈련을 자처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 덕분에 나의 미비한 위생관리에 반성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일상생활이 여러모로 불편해지는 것도 문제 이건만, 더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안 그래도 의심 많은 채로 바라보는데 더더욱 낯설게 혹은 날이 선 채로 상대를 응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론에선 격리 조치 인원이 연신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우후죽순으로 쏟아내기 바빠 불안을 조장한다. 마치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 유럽으로 돌아간다면 아마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까 싶다.


코로나가 확산될 때, 이러다 '혐오'의 감정도 확산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신문기사에서는 이탈리아 음악학교에서는 동양인들의 수업 참석을 거부했고유럽에선 중국인 관광객에게 침을 뱉는다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는 제보가 들려왔다.


‘중국인=감염'이라는 일반화, 나아가 아시아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모두가 혐오를 부추기는 것임을 유럽인들은 알고는 있을까.


유럽과 아시아라는 대륙 간 혐오감정도 문제지만, 같은 아시아 안에서도 혐오 감정이 확산되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매장 안이건 길거리나 여행지에서건 종종 중국인 여행객들을 많이 보는데, 그들을 보면서 '중국인=우한=감염=위험' 이런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걸 보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나 또한 저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연약한 녀석이었다는 것에 반성하는 바다. 책이나 학교에선 혹은 교회에서는 '누군가를 사랑으로 품고 이해하고 차별하면 안 됩니다! '라고 배워왔는데, 막상 이론에서 이해의 영역으로 넘어가기란 참으로 힘들기만 했다. 특히나 사람들 마음 잘 헤아려야 하는 서비스직이 이런 혐오감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말이다. 한 사람의 서비스는 누군가에게 있어 회사 전체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니까.


서로가 불신하는 시대에 불신이 나날이 더해져만 간다. 아울러 마음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숨 쉬기가 갑갑해져만 간다. 다만, 지금으로썬 일단 조치를 취할 게 있다면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비누로 손 잘 씻고, 사람 많은 곳은 가급적이면 피하거나 마스크 끼고 다니고, 기침 나면 옷소매로 가리는 것만 잘하면 된다. 확실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취하면 된다. 불확실한 정보와 막연한 감정을 가지고서 상대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감정은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서로를 밀어내는 감정은 불확실함과 더불어 그것을 스스로 판단해버리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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