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볼링에서 배운 인생철학.

by Shysbook


나는 볼링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이유는 딱 하나. 스크린 앞에 떡하니 나타나는 스코어 때문이다.


레인 위에 자세를 잡고 공을 굴렸는데 공은 늘 도랑에 굴러 떨어졌고 정중앙에 공이 가지 않아 속은 타들어간다.

그렇게 모니터에 찍힌 스코어는 0점. 그다음 친구가 공을 치니까 스트라이크. 모니터엔 10점이 떡하니 찍힌다.


점수를 합산하면 늘 내가 꼴찌였기에 모니터에 스코어가 나타날 때 나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았고, 아무리 공을 굴려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니 스트라이크 할 때의 그 쾌감 따윈 느낄 수 없었다.


팀으로 나눌 때는 더욱 곤욕이다. 나 때문에 다른 팀원들이 피해를 끼칠까 던질 자신감이 없다.

공을 던지는데 잘못 맞는 게 아닐까 걱정만 한 가득했다.

자세를 잡아보려 해도 방향이 신경 쓰이고 방향을 신경 쓰니 자세가 신경 쓰이니 내 몸은 마치 로봇처럼 삐걱대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정리가 되지 않았고 온통 속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넘쳐났다.


과거의 아픔이 떠올랐다.

늘 성적에 평가받고 비교당하고 늘 경쟁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 교내 친구들은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면 시험 친 과목마다 성적이 반 게시판에 걸릴 때 즈음 내 성적을 본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달려가


'너는 새 빠지게 노력해도 왜 성적이 그 모양이냐!'

'이것도 점수냐!'

'넌 성적이 그따위인데 잠이 오냐!'



라는 말로 나를 공격해왔다. 나의 치부가 드러나자 공부를 할 때 오히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노력해도 뭐하나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이 많은데라는 회의감도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고민을 토로할 만큼 용기 있는 성격도 아닌지라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지도 몰라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백방 찾아보고 달리해 봐도 의지가 부족해서였거나 아니면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결국 공부방법은 나를 위한 공부방법이 아니라 남의 공부 방법이었다. 내가 아무리 벤치마킹해도 그들이 수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당장 따라잡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노력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도 괴롭지만 그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치부가 드러나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속은 타들어가고 답답했다.


이후부터 성적에 더 정확히는 숫자에 민감해졌다.

누가 몇 점 더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 장학금을 받고 못 받고 시험에 합격하고 떨어지고를 많이 봐왔기에 더 이상 성적에 민감해지기 싫어졌다.


다시 볼링으로 넘어가자면 공을 던질 때 집중이 되지 않자

볼링을 치러 같이 갔던 어떤 누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상현아. 나도 옛날엔 말을 심하게 더듬고 남들 앞에서 발표도 못했던 적이 있었거든.

그럴 때 나의 감정에 집중했었어. 남들이 뭐 라건 신경 쓰지 않고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말하는데 집중하면서 말 더듬는 걸 고칠 수 있었어. 너도 공을 던질 때 네가 어떤 감정을 하고 있는지만 집중하면 돼. 스코어에 신경 쓰지 마."

볼링을 할 때 이것만 기억하자. 힘 빼기. 감정에 집중하기. 자세를 떠올리기.그러자 공은 정확히 가운데로 굴러들어갔다.



나는 그저 남들 시선 벗어던지고 부정적인 감정을 잊고 공을 맞췄을 때 쾌감의 감정만을 떠올리기로 했다.

공을 던질 때마다 친구들이 나에게 기술적인 이야기도 떠올려봤다.

'상현아 네가 긴장해서 그래. 힘 빼고 던져 봐.'

'어깨를 자꾸 왼쪽으로 향해서 던지거든 손목이 정중앙으로 가도록 던져 봐.


그렇게 호흡을 고르고 레인 위에 올라 공을 던졌다.

기억하자. 힘 빼기. 감정에 집중하기. 자세를 떠올리기.

그러자 공은 정확히 가운데로 굴러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친구들은 나를 격려해주었다. 아.. 몸은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 여유를 되찾게 되었고

남은 시간 여느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볼링을 차차 즐기면서 칠 수 있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볼링을 치면서 왜 또래 아이들처럼 즐기면서 치지 못하는 거지?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국 남들의 시선에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들이 평가에 민감했기에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기 일수였고 남들의 반응에만 신경 쓴 나머지

나를 돌아볼 여유는 사라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늘 애쓰며 살았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잘해나가야 된다는 강박이 알게도 모르게 마음에 자리 잡게 되자 실수를 해도 스스로 채찍질하며 완벽주의를 고집하게 되었고, 긴장하지 않고 풀어지면 뒤쳐지기 때문에 늘 나에게 힘을 빡 주며 살아갔다.


김하나 작가의 책 <힘 빼기의 기술>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만다꼬는 내 삶에 있어 꼭 필요한 질문이 되었다.

"난 꼭 그 자리에 오르고 말 거야."

"만다꼬?”


만다꼬란, 경상도 사투리로 '무엇하러? 뭐 하려고?' 영어로 'What for'라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왜 나는 그 자리에 올라가야만 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스스로 납득한 대답이 겨우 남들 시선을 견디려고였다.

그렇다면 내가 살면서 왜 이렇게 긴장을 잘하고 힘이 잘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를 살펴보니 ‘~을 해야 한다.’라는 집착은 아니었을까?


~을 해야만 다음에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어. 그러니 잘해야 된다는 강박은 나를 압박하고 몸에 힘은 들어가고 마음에 부담은 배가 되고 생각은 굳어버리는 연쇄반응이 이어지고 만다.

남들 반응까지 의식하다 보면은 자연스러운 반응이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 나의 역량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이것의 무한 반복. 내 삶은 그래서 여유라곤 눈 씻고 찾기 힘든 삶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그런 고백은 또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만은 꼭 살면서 기억하리라 다짐한다.

남들의 시선보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집중하자고.

그 뒤로 사람들의 격려와 가르쳐준 삶의 방식을 잘 기억하자고 그렇게 조금씩 힘을 빼고 스트라이크를 칠 그 날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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