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18

-처음부터 미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by Shysbook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용기.


매 달 첫째 주 <채널예스> 월간지가 매장에 도착했다.

월간지에 사람들의 관심사, 출판 동향을 한눈에 파악하기 좋아 종종 읽는 편인데, 특히 인터뷰를 가장 좋아한다.

인터뷰를 통해 삶의 자세를 다시금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 몇 달 권태기에 빠져하는 일에 재미도 즐거움도 사그라드는 와중에 읽은 ‘문정연’ 작가의 인터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릴 적 문구를 좋아해서 문방구 사장이 꿈이었던 작가님은 현재 어엿한 문구 브랜드 디자이너가 된 작가님은 소위 ‘덕업 일치’를 이룬다. 기사를 읽는 내내 작가님이 문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 시구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취미를 일로 해보니 어때요?

너무 좋아요. 제 삶을 보드게임 ‘젠가’로 비유한다면, 블록을 손수 다 쌓아서 올리는 느낌이 들어요. 잘하고 싶은 일이니까 더 고심해서 결과물을 내고 싶어 지더라고요. 누군가 툭 건드려도 이건 절대 안 무너질 거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어려움도 많지만, 제가 주체적으로 삶을 걸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구류가 좋아 작가님 스스로 택한 일에 자부심이 묻어 나오는 작가님의 모습을 인터뷰를 보고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분도 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잃었던 혹은 한 번도 꾸지 못한 꿈을 꾸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는 증거니까. 그러나 뒤에서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덧붙인다.


“즐기는 것만으로 안돼. 미쳐야 해.”



이 말에는 ‘무엇에 미쳐야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안 그래도 내가 원하는 삶 그리기에도 빡빡한 삶인데 응원해주지 못할망정 이런 말을 누군가 한다면 꿈꾸는 사람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따름이다.


문득 대입을 준비하던 9년 전 어느 겨울날이 생각난다. 고3 시절이었던 나는 ‘미치지 않으면 실패한다.’라는 말을 맹신했다.


어떻게 서든 남들보다 노력해서 수능 대박을 꿈꿨고, 나보다 더 성적이 좋은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출처, 리디북스 , 나무 위키

자는 시간을 아까워해서 졸리면 맨 뒷자리에 서서 수업을 들을 정도였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어쩌다 공부가 손에 안 잡히는 날이면, 인강 강사들의 쓴소리를 듣거나 공부법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까지 나를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그런 삶을 수능 전날까지 계속해왔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내가 경쟁상대로 지목했던 친구들은 이미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훗날 시간이 지나서 보니 내가 경쟁상대로 둔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꾸준히 기본기를 다져놓아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 나에겐 사상누각인 셈이었다.


‘미친다’라는 기준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미치지 않고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미친다는 표현 자체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기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좋아하는 것을 하는 용기라는 부제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으로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했어요. 용기를 없는 상황인 분들도 있잖아요. 다만, 직업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말하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문구를 좋아하는 문경연입니다라고 말할 훨씬 뿌듯하더라고요. 용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대상에 미치기 전에 처음부터 관심을 조금씩 가지며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수능을 치른 지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거창한 생각, 무언가 절실해야 하고 매달리고 나를 착취해가며, 필요한 것을 줄여가며 간절하게 매달려야 미쳤다는 증거는 그저 비치는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여전히 세상에서 자기 개발서에서나 서바이벌 프로그램 속 멘토 하다못해 음악에서도 무엇이든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외친다.


그렇지 않으면 낙오한다고 나약한 정신을 번쩍 깨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일을 막 하려는 사람, 관심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미치기에 앞서 일단 관심이 가면 한 번 해봐야 정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이 일을 할 주체는 ‘본인’ 이지 ‘타인’이 아니다.


이 일을 하고 책임을 지느냐 못 지느냐, 적성에 맞느냐 아니냐의 판단도 본인이 내리는 것이지, 타인이 평가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짧게라도 해 봐야 이 일이 나와 맞는지 아닌지 판별이 가능하다. 발을 들였을 때 이 일은 내가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일을 해나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어떤 분야에 미친 사람은 전혀 없다. 우연한 계기로 가진 관심에 매력을 가진 것뿐임을 기억하자.

뭔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한테서 간절함을 강요하고 무엇인가 미쳐야 한다고 외쳐대는 건, 상대를 향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관심이란 기초부터 차근히 쌓아나갈 수 있도록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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