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17

소외에 대해.

by Shysbook

2/28, 일상의 관찰기


1.

서울삼성병원으로 가는 길. 한강대로를 따라 택시는 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릴 때 빗줄기가 조금은 굵어지기 시작했을 때 1만 8천 원 가까이 요금을 지급하고서 비로소 병원에 도착한다.

맨 처음 본관으로 들어서자마자 체온 측정이 이뤄졌고 몇 가지 해외여행 및 대구 경북 방문 여부를 물어본다. 통과 이후 병원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키오스크 한 대 였다.

주변 어르신들을 관찰하니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키오스크 사용을 잘하는데 비해 어르신들은 그저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기기는 하나의 넘어설 수 없는 장벽처럼 다가왔고, 그 장벽은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게 느껴진다.


패스트푸드점, 기차역 그리고 병원까지 들어선 키오스크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기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어르신들은 불편을 겪었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노화보다 급격히 진행하고 상대적으로 정보를 쉽게 찾는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어른들은 빠른 속도로 변하는 기술에 적응하기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느끼기엔 키오스크란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넘기 위해 또다시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로 여길 따름이다. 사람 대 사람 면대면으로 응대하며 감정의 주고받음에 익숙했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효율의 가치로 전환되고, 그 가치마저도 당연시 여기다 보니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 것은 아닐까.


2. 어머니가 안과 검사를 받던 중,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즈음된 한 아이가 제 키보다 훨씬 높은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뉴욕 양키즈 모자에 옷은 검정 트레이닝 복을 입었고 신발은 운동화를 신은 채 아주 편안한 복장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두 아이의 다리는 또래와 달리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일어서서 달리고 싶지만 너무 몸이 가냘펐고,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약한 몸으로 병실을 뛰어다니지 못해 휠체어에 온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제 몸집보다 넓고도 높은 건물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머금던 또래 아이들을 일을 하면서 여럿 봐왔다. 아이들 특유의 신남, 까불거림, 유쾌한 미소는 이 아이에게선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얼굴색처럼 창백한 표정, 굳게 닫혀있는 입술은 또래 아이들의 장난이란 누릴 수 없는 이상 그 자체였다. 건강이 또래의 자유를 앗아가 버렸다.

휠체어 바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형형색색의 꽃이 그려져 있었다. 언젠간 이 아이가 꽃이 가득 핀 꽃밭, 공원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봄볕을 맞이할 순간을 마음속으로 소망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을 “지금 건강함에 감사해야 한다. 너보다 어리거나 나이 엇비슷한 아이들 중에 몸과 마음이 아픈 불쌍한 이들이 있으니 너희들은 불평하지 마라.” 라고 이 이야기를 끝맺고 싶지가 않았다. 그건 너무 극단적이자 요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으면서,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애써 정상인의 범주에 억지로 맞추려고 한다던지, 장애인을 외면하는 그런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들었다.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나도 머리로는 아는데 속은 그렇게 하지 못할 정도로 모순적인 녀석임을 알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혐오보다는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 진다. 각기 다른 장벽을 마주친 사람들을 바라본 오늘. 그 벽을 언젠간 허물고 넘어설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평화롭지만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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