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만큼의 산만함.
‘산만하다.’ 나의 가장 큰 단점이다.
‘산(山)’ 만큼 공을 들여야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산만함으로 일을 그르칠까.
내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닌만큼 인생을 적잖게 산 것도 아닌데, 실수를 늦추고 ‘산(live)만큼’ 뭔가를 일궈나가야하는데, 산만함. 이 고질적인 문제를 뛰어넘기란 산만큼이나 높다랗고 험난하다.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으나 집중하기 힘든 내 증상을 보고 누군가 덜컥 성인 ADHD라 단정지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증상을 놓고 봤을 때 전혀 그렇지는 않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무언가를 할 때 디테일을 놓치고, 지시에 대해 너무 대충 보고, 듣고, 판단해버리는 게 문제다.
대충본다는 것은 나의 성미가 급하다는 증거다.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귀를 열고, 모르면 한 번 더 묻고 이해를 해야하는데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기 전에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관성의 궤도에 이미 이탈한 지 오래여서 다시 되묻기엔 이미 머나 먼 영역으로 넘어가 버렸다. 결국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행동하여 실수가 발생한다.
역시 말로나 글로 옮겨 적으면 쉽게 느껴지지만, 수 십년 간 유지해온 나의 성미를 이기기란 힘들 수 밖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군에 있을 때에도 이런 실수를 보고 한 선임은 ‘네가 제대로 집중안해서 그래!’ 라고 나에게 일러줬다. 그 선임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망정이지, 잊어버렸다면 지금도 원인을 찾느라 헤맸을 것이다.
뭔가를 집중한다는 건 결국 대상을 잘 보고,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일련의 과정을 총칭한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일의 실수가 늘어날 뿐. 실수가 잦아지면 그것이 주변 평판으로 직결된다. 내가 아무리 좋아서 했던 일이 산만함으로 발생한 실수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내가 앞으로 일궈나갈 일들을 할 수 없게 되겠지. 아는 것에서 그치지말고 행동으로 옮겨야겠지.
얼마 전 김인환 선생의 신간 <타인의 자유>를 읽다가 나온 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아랫배로 생각하라.(…)깨달음은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상처를 견디면서 상처의 한복판을 뚫고 넘어서는 자연 치유이다.
(p.65)
생각해보니 아랫배의 영역으로 내 행동이 이어질 수 있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용하다.
무언가를 깨닫는 영역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머리에 각인시켜야한다는 걸.
때때론 시행착오를 겪을 진 모르겠으나, 머리로만 알기보다 아랫배의 영역으로 다가가야지. 몸에서 우러나와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야겠지.이 글귀를 읽고 실수로 위축된 마음을 다독여본다.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들으며 대상에 집중할 것.
그 때야 비로소 무언가가 열린다.
마음먹은대로 당장은 이뤄지지 않으나 부단한 연습으로 상황을 맞딱뜨리다보면 비로소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아직도 부단한 연습이 내겐 필요하다. 오늘도 글을 쓰면서 반성한다. 하지만 내일은 더 나아질거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