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없는 기분_1

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28

by Shysbook

기분이 없는 기분 1탄


휴일 아침. 기상 알람과 동시에 눈을 떴다. 눈꺼풀이 무겁다. 커튼을 열었는데 하늘은 흐렸다. 곧장 비라도 쏟아질 기새로 구름은 땅 가까이로 향했다. 마치 내 기분을 대신 표현한 심경이다.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머리는 멍했다. 침대에 겨우 몸을 일으켜 발을 한 발짝 바닥에 내려놓기가 인류가 처음 달 표면에 착륙한 것처럼 생경했다. 그 정도로 힘겨운 일이 돼버렸다.

일을 한 지 9개월째,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왜 그런 거지'라는 의문의 부호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버린 스트레스 때문은 아닐까. 그것이 내 몸을 무겁게 하더니 순식간에 마음마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나를 집어삼킨 울적한 기분 앞에 나는 한 없이 무력했다.


기분을 전환하려 책을 읽어도 문장이 읽히지가 않았다.

눈으로 문장을 넣으려 해도 머리는 거부했다.

하릴없이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는다. 바닥에 붙은 끈덕진 껌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그저 보고 또 본 유머라든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타인의 인증 사진, 피드의 장단 문의 글을 읽으며 ‘좋아요’ 버튼만 꾹 누르기를 반복했다. 유튜브로는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아무런 영상을 보며 눈과 머리를 낭비했다.


뭘 보는 것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글을 쓰려 노트북을 켠다. 전원에 불이 들어오고 얼른 메모장을 켰다. 커서가 끔뻑거렸다. 내 눈도 끔뻑할 뿐, 생각은 깜빡한 게 대부분이라 쓰려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억지로 생각을 짜내도 도무지 쓸 거리가 나오질 않으니 답답했다. 하는 수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글을 싸질러라도 봤다.


유려한 생각들이 일필휘지로 촤르르 쏟아지기는커녕, 짧은 글만 간신히 툭하고 스파게티 면처럼 끊어져 나올 뿐이었다. 맥락도, 연관성도 전혀 없는 아무 말 대잔치 투성이의 글은 결국 하나의 트레져(treasure, 선물)가 아닌 트래쉬(trash, 쓰레기)가 되었다. ‘틀에 쉬이’ 박혀버릴 만큼의 문장을 쓰던 내 머리가 갈수록 굳어지면 안 되는데라는 조바심이 생겼다.


억지로라도 글을 완성하고 메모장을 얼른 닫았다. 찝찝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전구 안 필라멘트가 타버린 듯, 내 머리가 올바른 생각을 하지도 마음에는 흥미도 남아있지 않은 이른바 ‘번아웃(burnout syndrome, 번아웃 증후군)'을 겪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잠잠하게 있던 아이가 다시 나를 향해 접근해 온 것이다.


2. 번아웃에 이은 우울.


사실 책이 좋다는 순수한(?) 동기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고객 응대, 책 진열, 입고, 서가 관리가 순수한 동기의 일부라는 믿음과 일을 배우는 것이 재밌어서 출근길이 설레고 그랬던 나였다.


하지만 일이 익숙해지면서부터 몸도 마음에도 슬슬 부담이 차오른 것은 물론, 업무를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에 실망감도 쌓이기 시작했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 100명 중 한 명 꼴로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진상의 역정에 그 날 하루 재수가 없었던 적도 있었다. 철제 슬로프 위로 쿵쿵쿵 소리 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이리저리 들려오는 고성, 이리저리 어질러놓은 채 나뒹구는 책과 물건들, 포장을 몰래 뜯어 내용물을 가져가는 도둑까지 만나니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여만 갔다.


아울러 내가 하는 일이 제때 끝나지 못하거나 혹여나 실수로 인해 동료들에게 민폐 끼치기 싫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담감은 나를 옥죄어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연이은 지적으로 온몸은 조금씩 경직과 긴장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여유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좁아지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크고 작은 실수로 이어지더니 고객에게까지 실망감을 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책을 진열한다거나 정리하는 일을 하다가도 손님이 ‘저기요~ 이 책 좀 찾아주시겠어요?’라는 멘트에서 ‘아이 씨~’라는 짜증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속은 굉장히 냉소적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 슬슬 알아차려야 했다. 내 마음이 지쳐가는 중이란 것을.


하지만 고객들의 촉은 예리했다. 나의 냉소 섞인 태도를 보고 컴플레인을 걸었다. 고객은 매니저를 보고 "아니 이렇게 응대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불만을 토로했고,

그걸 들은 매니저는 당혹감과 동시에 고객의 마음을 애써 진정시켜주며 내가 저지른 실수를 수습하기 바빴다. 그로 인해 매니저에게 개인 면담을 받았다. 자책과 자괴감이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응대나 업무 중 실수가 있었다.

그로 인해 지적을 받고 나 스스로가 또 자책하기를 반복하자 몸과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억눌린 마음을 내 의지로 솟아 올리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실수를 해도 '괜찮아!' 하고 애써 기운을 내보려 해도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았다. '세 얼간이' 속 주인공 세 명이 나와 '알 이즈 웰~'이라 5분가량 노래 부르고 춤을 춰대도 울적한 감정은 그대로일 것만 같았다. (실제로 이랬다간 매장에서 제지당하겠지.)


심지어 유일한 낙이었던 점심시간 때 조차도 식사를 해도 도저히 입에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자꾸 멍했고, 일 생각에 한숨이 쉬어졌다. 평소에 먹던 음식에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식욕마저 잃기 시작했다.


3. ' 다른 사람에게 내 기분을 정당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는 mbti 항목이 있다.


사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토로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컸다. 부모님에게 하자니 걱정 근심만 쌓이게 하실 것만 같았고, 근처 친구들에게 하기엔 너무 생뚱맞거나 아니면 기회를 만들기가 힘들었다. 혼자서 삭히자니 어찌할 방법을 몰라 막막했다.


지나가는 아무 사람 붙잡고 ‘내 기분이 이렇게나 울적하고 괴로운데 아무나 이야기 좀 들어달라’ 고 하소연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하기 시작한다.

(2탄에 계속)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슬럼프, 일이 더는 즐겁지 않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