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하는 서점원

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31

by Shysbook


작년, 서점 근처 갤러리에서 본 전시회 작품이 생각난다. 1931년 생의 박서보 화백의 작품이었다. 캔버스 속에는 일정 굵기의 선이 그려져 있었다. 단조로웠고 일관성이 느껴졌다.

모처럼 맞이한 주말 휴일.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명상>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 찾았다. 그곳에서 오래전에 만난 박 화백의 작품을 또 한 번 보게 되었다.

전시회를 둘러본 후, 다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판화를 그리는 분의 질문에 공감이 갔다.

“작품을 보는 내내 화백은 한 줄 한 줄 그리며 무수히 고민을 많이 했을 것만 같다. 그림 안에 더 많은 것을 채우고 그릴 수도 있을 법했지만 이를 비워낸 것만 같다.”

질문을 들으면서 화백도 같은 굵기의 선을 그리는 동안 무수히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충대충 그리지 않았다. 선 하나에도 일관된 색과 굵기 그리고 길이에 따라 절도 있게 그린 그림에서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조롭고 복잡한 감정을 덜어낸 흔적이자 내적 갈등과 싸워온 투쟁으로 비쳤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선들은 애초부터 세우는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단지 선을 계속 긋는 반복행위를 통해 자신을 비워내고자 했던 것이다. 수 만 번 무의미한 선을 긋고 있으면 어느새 선과 선 사이의 골짜기가 형성돼 자연스레 선이 솟아 올라온다. 스님이 하루 종일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한다면, 박 화백은 수 만 개의 선을 그으며 자신을 비우고 참선의 길로 들어선다.
출처: 서울문화 투데이(2013.3.13 기사)

박서보 화백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단순한 선의 반복에서 숭고함을 느꼈다. 이는 마음속에 커다란 경종이 울리어 나의 정신을 번뜩이게 했다. 집중하지 않는 어리석은 중생에게 때리는 죽비 같달까.

서점에서 일을 하면 주로 하는 게 고객 응대, 책 진열, 카운터 계산 등 여러 업무를 보지만, 실은 단조로운 업무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일조차 나는 올곧게 해왔는가부터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진열하다가 고객의 질문에 속으로 짜증을 냈던 적이 있었고, 아예 대놓고 물건을 모른다고 답한 적도 있었다.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나라도 정성을 다하기보다 ‘그저 시키니까.’ ‘마음이 급하니까’라는 태도로 일을 대하다 보니 선이 비뚤어져 하루의 결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일관된 자세에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끝이 휘어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참을 수 없는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엇이든 참선하는 심경으로 임해야 했다. 반듯하게 그리는데 신경을 기울인 하루의 결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길 바라본다.


(사진 출처: 국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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