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30
아침 식사를 마쳤다. 커피를 내려 마신다. 시계를 확인하니 9시 45분. 모든 일정이 딱딱 맞아 떨어졌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5mg을 삼킨다.
5mg 분량의 차분함이 마음에 들어오고난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업무에 조바심을 느끼기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모든 것이 소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몸에 점점 활력이 생겼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생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몸을 약이 제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약 기운으로 애써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 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렇게 읽고 계신 분들을 위해서 오지랖을 피우자면, 이는 핀트가 매우 엇나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하고 싶고, 지속하기 위해서, 나아가 언제 모를 미래를 위해 쓸 에너지를 잘 관리하고 싶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약을 처방받으며 복용하는 것이지 단지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 정상인들처럼 기분 좋게하기 위해서 먹는 건 절대로 아님을 밝힌다.
허나 약은 내 일상의 루틴을 조금 더 견디기 위함이었지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업무를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냈다. 삐그덕거리던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끔 약이 돕고 있는 셈이다.
사실 약을 먹는 내내 마음에 걸린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약을 언제까지 복용 하느냐는 것이다. 반대로 약을 먹다가 어느 순간에 복용을 중단했을 때, 애써 회복한 마음이 다시금 삐그덕거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약 중독자가 된 기분이든다.
하지만 환자인 나를 중독자로 만들만큼 선생님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처럼(기분이 없는 기분_2 참고) 잘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약을 먹는 찰나의 순간에 나를 도울 방법을 찾아라는 것이 치료를 받는 이유이자 약을 복용하는 더 큰 목적이기도 했다.
사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나서도 고개가 갸우뚱했다. 나를 돕는 방법을 스스로 찾고 고민해보아도 사실 별다른 방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책에서는 ‘취미활동을 가져라.’ ‘나 자신을 사랑하라.’ 라고 말한다. 나도 그 방법을 따라해보려했지만, 의지가 타버릴대로 타버린 사람에겐 그럴만큼의 여력이 남아있지도 않다.
어찌어찌 좋아하는 취미를 하며 나를 도와본다한들 결국 그것도 ‘일’에 불과하다. 골칫거리인 셈이다. 취미라하더라도 정작 내 안에 어떤 동기도 즐거움도 생겨나지 않는데 굳이 해봤자 시간만 낭비일 뿐.
게다가 나를 사랑하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말해보라한들, 성격상 오글거리는걸 못 견뎌하는 사람들은 어쩌란거냐. 그렇게 해 봐도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하는 수 없이 나 자신은 참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쩌겠는가, 인간이 신은 아니잖는가.
나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오히려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불완전한 상태에서 무언가 더 채우고, 더 하려고할수록 도리어 탈이 날 수 있으니 마음 속 부담과 생각을 좀 비우라는 일종의 ‘정중한 거부’ 가 아닐까.
어릴 적 TV에서 방영한 <꼬꼬마 텔레토비>가 생각났다. 4명의 친구들이 무언가를 하다가 시간이 되면, 나레이션이 ‘이제 그만~’ 이라 외친다. 친구들은 아쉬워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이내 꺄르르 웃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내일 그 일을 또 할 수 있기 때문이니까.
더 채워 넣는 것에 익숙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심하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에게 ‘이제 그만’ 이라는 외침을 마음 속에서 하고 있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마음에서 ‘이제 그만’ 이라는 말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해야한다.’ 라고 고집피우기보다 20년의 묵힌 관성을 약을 통해 조금 내려놓고 마음 속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려고한다. 그렇게 꺄르르 웃으며 내일도 여유있는 모습으로 삶을 사는 방법을 다시금 배우는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