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게 아니라, 익숙한 ‘척하는' 겁니다.

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32

by Shysbook

휴일 아침. 모처럼 집 청소를 마치고 TV를 킨다. 나 혼자 산다> 박나래 씨의 VCR이 나왔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을 마치고 늦은 밤 귀가하는 장면이었다.


분장을 지우지 않은 채로 집에 도착한 그녀는 온몸 구석구석에 붙은 장식품들을 하나 둘 떼어낸다. 힘으로 떼었다간 살갗에 상처를 심하게 입기 때문에 알코올이나 석유(!) 그리고 화장솜으로 오랫동안 붙어있던 분장 자국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머리카락부터 얼굴까지 온통 땀으로 흥건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주 단순하고 대충 한 듯한 분장일지라도 실은 여러 명이 모여 분장을 그리고 붙이기를 반복한 노력의 결실이었음을 여실히 느꼈다.


박나래씨가 코미디언이 된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오랜 시간동인 코너를 준비할 때마다 분장을 하고 지우기를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분장에 적응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 여전히 쉽지만은 않았다.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아픔이 익숙해지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덜 아픈’ 나만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어 애써 견뎌내는 법을 살면서 배우고 있지는 않은지.


서점에서 일한 지 10달이 넘었다. 곧 1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어쩌다 만난 진상들 혹은 난생처음 겪는 사건들 앞에서 쉽게 다치고 아파했던 내 모습이 그려졌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기본적인 응대, 정보를 잘 몰라 허둥대곤 했다. 고객들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화를 돋우기도 했다. 컴플레인도 받았고 그로 인해 낙심했던 적도 있었다.


허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응대도 나름 익숙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웬만한 상황 앞에서는 어느 정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일 처리에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해진 것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을 대하는 일 자체에는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고, 언제 낯선 감정이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응대가 때론 버겁고 어쩌다 툭 튀어나온 감정의 날에 찔리기라도 하면 마음 한쪽 구석이 쓰라릴 때가 있다.


맞으면 맞을수록 맷집이 생겨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건 덜 찔리도록 피하는 것과 맞아도 쉽게 응급 처치할 수 있는 방법만 배운 것만 같다. 살갗에 달라붙은 분장을 손으로 쫘악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독용 알코올을 피부에 묻혀 조금씩 떼어내듯, 상처를 받으면 조금씩 약을 발라내어 더 이상 출혈과 흉터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해도 익숙한 듯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상황에도 의연하게 다루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픔에도 훌훌 털어내느냐 아니냐로만 쉽게 바라보는 것 같지만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면, 결국 그것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달랐던 것이다.


아울러 직업에서 가져다주는 막중함이며 상처가 만만치 않고 그만두고 싶을 법도 하지만 이 모든 걸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진심' 은 아닐까. 어떤 상처에도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있는 보루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다.

박나래씨의 개그로 일과 사람에 치여 웃을 일 잘 없던 직장인에게 피식 웃음을 줬다면, 그로 인해 잠시라도 일상 속 여유를 느끼고 힘든 순간을 잊고 다음을 살아간다면 그녀의 진심은 통한 것은 아닐까. 마찬가지로 나 또한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만나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의 폭이 넓어지길 바라는 바람이 크다. 책을 통해 자녀와 부모를 잇고, 독자와 작가의 생각을 이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객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때, 손님이 책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다가 나의 도움으로 비로소 책을 찾았을 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 진열한 책을 사람들이 사서 미소를 띠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팠던 마음이 쉽게 아무는 기분이 든다.


의연하게 대처하는 내공과 한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이 이 일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하나를 다루는 것도 힘든데 두 가지를 다뤄야 해서 '일' 이 힘든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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