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점 밖에 있습니다.

서점에서 일을 한다는 것_33

by Shysbook

제주에서 3박 4일 휴가를 보내면서 읽었던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182p.이 안온한 회사 안에 머물며 성취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나열하는 동안, 나는 점점 ‘mbc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뭔가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속 목소리가 자꾸만 나를 다그친다. mbc에서의 생활이 이렇게 책으로 쓰고 싶을 만큼 큰 의미이고 기쁨이면서도, 한편으로 언제까지 여기에 있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수연,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서점원 유니폼을 벗어 던진 후 서점을 빠져나왔을 때, 나는 누구로 불릴까?서점 스텝 누구누구씨 아니 그 누구누구씨 조차도 불리지 않고서 ‘학생’ ‘아저씨’ 혹은 ‘어이’ 이렇게 불리지 않을까.


서점이 주는 아늑함(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너무 먼 근무 환경이지만)은 마치 쿨 에어 티셔츠처럼 온 몸에 착 달라붙은 기분좋은 감촉이 느껴졌다. 나와 딱 맞는 일자리를 구했고 그 곳에서 일을 하며 정신없이 지내온 시간이 1년을 향해 간다는 게 신기할 따름. 한 편으론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게 충분한 기회를 준 회사 동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안온함에 빠져 내게 찾아오는 기회가 기회인지 모르고 살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서점에서 하는 일과 더불어 책 리뷰까지 둘 다 하면 좋겠지만, 서점 일만 평생 할 수 없는 시대다.


서점에 나와서도 리뷰를 작성할 수 있으나 다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서점원이 추천해주고 쓴 리뷰는 믿을만하다는 게 아니라 ‘서점원’ 수식어를 빼고서도 이 ‘사람’이 쓴 리뷰는 믿을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할 때다.


즉, 서점이란 울타리에 벗어나서도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서점에서 일하는 이유, 책을 사랑해서요. 이 말은 이제 빈약한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다.


굳이 서점이나 출판사에 근무하지 않아도 전문가 못지않게 충분히 책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다.외국 도서인 경우, 어떤 출판사가 번역을 더 잘하는지, 오역이 심한지 검토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책 소개를 흥미롭게 할 수 있거나 카드뉴스나 영상을 만들 수도 있는 사람들은 유튜브에 북튜버로 활동 중이다. ‘북튜버’ 라고 검색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찍고 편집한 자료들로 가득하다.


영상 시작부터 화려한 조명이 사람을 감싼다. 책 설명은 깔끔하고 논리정연하다. 차분한 목소리로 구독자들에게 신뢰감을 더하는 건 덤이다.


영상 썸네일 제목도 카피라이터 못지않게 잘 뽑는다. 보지 않으면 후회할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초반에 보여주니, 영상을 끝까지 보면 마우스는 온라인 서점 사이트로 향하곤 한다. 아니면 서점에서 이 책을 찾으러 매대를 기웃거린다.


다재다능 엔터테이너로써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서점 안에 갇혀 트랜드를 읽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되었다.



위와 비슷한 사례가 문득 생각난다. 최근 넷플릭스에 가입해서 <더 라스트 댄스>를 즐겨보고있다.


에피소드 중, 1984년 nba 드래프트 장면이 나온다. 조던이 시카고 불스(이하 불스)에 입단한 시기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맹활약하는 조던을 보고 군침을 흘린 팀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 한 팀이 서부 컨퍼런스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이하 포틀랜드)였다.


당시 조던은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에 속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3순위에 속했다. (*참고: 1위는 하킴 올라주원이고 휴스턴 로키츠가 지명함.)


포틀랜드 단장은 3순위 정도면 충분히 조던을 영입할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단 측은 “우린 드랙슬러라는 훌륭한 가드가 있다. 센터가 필요한데 굳이 조던이 필요한가.” 라며 영입하지 않았다. 대신 샘 보이라는 드래프트 2순위의 낯선 선수를 영입한다. (훗날 이는 드래프트 역사상 최악의 영입으로 회자가 된다.)


아무튼 포틀랜드는 다 잡은 기회를 놓친 채 불스에게 기회를 넘겨주게 되고, 조던이 입단하기 전까지 하더라도 동부 컨퍼런스에서 약체에 속한 불스는 이 때다 싶어 덥썩 조던을 낚아채는데 성공한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 생략.)

1984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마이클 조던.전설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출처:historyrat.wordpress.com)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단 이유만으로 다른 건 필요없다며 여러 기회를 놓친 포틀랜드처럼 나도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일들은 하지 않을거야라는 안온함에 취해 강렬한 충격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서점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책을 사랑하고 그 사명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다.출판사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책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안겨주려고 홍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서점에서 일하는 게 더 이상 특권이 아니라는 말이다.


서점 안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줘야할 때가 왔다. 유튜브를 하건, 팟캐스트를 하건,플랫폼이 무엇이 되었든 일단 손에 잡히는 게 있으면 꾸준한 결과를 보여줘야 할 때다.


그렇게 꾸준히 작업하고 서서히 빛을 발할 때가 되면 비로소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 지지 않을까?


아울러 뭐 하는 사람이라고 굳이 불리지 않아도 내 이름을 대면 무엇을 하는 사람임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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