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
141p. “완벽의 어원을 아세요? 완전무결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실은 귀한 구슬을 끝까지 무사하게 지킨다는 뜻이에요.” -김버금, <당신의 사전>
책을 출간하려고 퇴사 후 2주간 원고 쓰기에 전념했다. 기억을 어떻게든 쥐어짜내가며 작성했던 기록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내어 차곡차곡 모았다.족히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이 나왔다.
기록들을 살펴보니 갓 바닷가 바위 틈에서 자란 생굴껍질처럼 날카롭고 다듬어지지 않은 채 있었다.아직 표현이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보여 껍질을 다듬고 속을 꺼내는 작업을 또 2주일 정도했다.
원고를 자꾸 다듬어보니 자꾸 흠이 보였다.
내가 손님이어도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이 보였다. 문장은 중학교 학생수준처럼 한창 세련되지 않은 채 그냥 나의 감상에 지나지 않은 일기처럼 깊이가 없어보였다. 다른 작가님이 쓴 독립출판물을 읽어봤지만 역시나 나의 글은 누가 읽어는줄까라는 연민이 피어올랐다. 도대체 이 원고를 읽고 받아줄 사람은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에 자신감은 한없이 떨어져만가고 원고 다듬는 일조차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디자인조차도 정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예쁘고, 차별화되고, 누구보다 통통 튀어야한다는 생각을 안고 있었다. 허나 혼자서 하기엔 너무 벅차서 직접 발로 움직여가며 사람들을 만났다.
일러스트를 배우려고 부산에서 해방촌 스토리지 워크샵에 다녀왔을 정도였고 포토샵을 알려주시는 분과 만나 필요한 기술들을 익혔다.
하지만 디자인 툴에 쓰이는 기술들을 배우고 써먹어봤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서점에 진열되어 팔리는 책들을 보니
이제 갓 디자인 툴을 배운 사람이 하룻밤사이에 디자이너처럼 세련된 디자인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아무리 써먹는다한들 결코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혼자서 디자인을 해보았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예쁘고, 잘 팔리는 책도 팔릴까말까 하루하루 위태롭게 책장 한 켠을 차지한 채 있는 책을 보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원고나 디자인 둘 다 완벽하게 만들어야한다는 강박에 더욱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만드는 진짜 목적은 갈수록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책을 만드는걸까… 무엇을 위해서 만드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책을 만들기 전 작성한 기획서를 꺼내서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예상 독자가 누구냐는 질문이 보였다. 콕 찝어 한 명의 구체적인 대상을 지정한대신 다소 모호한 대상을 지칭한 문장이 남아있었다.
‘서점일에 로망을 품는 서점 단골 손님’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망설임이 큰 사람’
‘이미 일을 하고 있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을 위해’ 라고 적었다.
기획서를 쓸 당시, 예상 독자 세 사람이 내 책을 사서 읽고나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이 준비한 일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만큼은 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원고를 쓰는내내 욕심이 자랐나보다. 그 욕심은 더 잘 팔려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하며 그러면서 너도 나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 했나보다. 욕심은 순수한 가치를 가린 채 나의 철저한 계산된 욕망을 드러낸 셈이었다.
철저히 셈법으로 계산한 채 글을 쓰고 디자인을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글을 쓰고, 책을 디자인하는 일이 재미보단 어떤 스트레스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마이크 사장님이 쓴 <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라는 글을 읽다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문장을 발견했다.
214p. 독립출판은 온전히 내 이야기를 세상에 어떻게 풀어낼지는 온전히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타인의 기준, 타인의 경험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책을 만들려는 나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그 행위가 최소한 나에게만 의미가 있으면 된다는 것.
-마이크,<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
이미 책을 완성하는 일 자체가 구슬을 꿰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완벽은 완전무결함이라 여기는 생각 자체가 실은 실체를 알 수 없는 허상의 벽을 넘으려는 일종의 무리수였던 것이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온전히 나의 몫이자 나에게 의미가 있으면 되는 일이 독립출판을 하는 일이기에 너무 타인의 것에 종속되어 목걸이를 만들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되었다.
일단 죽이되건 밥이되건 완성부터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디자인 전공자 인친님께서 디자인을 도와주시니 그분의 도움을 받아가며 디자인이 서툴어도, 어떻게든 표지를 만ㄷ원고가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을지라도 일단 출시 기간안에 과정에 충실한 후에 그 결과를 손님들에게 맡겨야했다.
완벽은 완전무결이 아닌,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였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함을 기대하고 힘을 잔뜩 들인 채 내가 만든 기준에 모든 걸 맞추려든다면 결국 제때 결과물을 완성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