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점을 잡고 지평을 넓히는 일 찾기
군대 말년휴가를 나갔을 때다.
2015년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위병소까지 분명 쌀쌀하게만 느껴지던 공기의 흐름이 밖을 나서자 변하기 시작했다. 날카롭지 않은 포곤한 바람결이 나를 애웠다.
같은 날 휴가를 나온 후임과 같이 식사를 하러 어느 해장국 집으로 들어갔다.식사를 마치고나서 그 후임이 내게 물었다.
“전역하면 뭐 하고 싶으십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 그냥 책 쓰고 싶다.” 라고 툭 하고 던졌다.
그러자 후임은
“대박 나면 저 사인받으러 찾아가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는 식당 문 앞에서 헤어졌다.
막상 후임에게 이야기를 하고서 집으로 가는데.. ‘뭘 쓰지?’ 라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당시 서평도 겨우겨우 쓰던 나였는데, 책을 만든다면 어떤 장르에 무슨 내용을 담아서 쓸까만 고민했다. 당황해서 헛말이 튀어나온 것이라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전역 후, 군대에서의 기억들 팔할을 리셋시켰다. 애증의 기억들을 묻을 건 묻고 잡을 건 잡으며 나는 다시 사회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사회에 나와서도 가장 먼저 뭘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습관처럼 군대에 있을 때 써온 일기를 사회에 나와서도 쓰기 시작했다. 군대에서는 노트에 4권 정도 썼지만, 사회에서는 컴퓨터로 하나 둘 일기를 써서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기 쓰기는 나 혼자만 보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고픈 욕심이 언제부턴가 생겨났다. 일상 속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인스타그램 피드에 길게 남기기도 했고, 책을 자주 읽었으니 서평을 간단히 남기기도 했다. 나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약간이랑 다른 사람과 순수하게 어떤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에 분량 상관없이 그저 주루룩 썼던 걸로 기억한다.
인스타 뿐만 아니라 어쩌다 생각나면 꾸준히 쓰기 시작했다. 메모장이건, 노트건, 책 여백이건 어디든 썼다. 쓰다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쉽게 해소되는 것도 있으면서도 서평을 남길 때 힌트(?)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쓴 글을 보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생기자 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쓰고 쓰다보니 나에겐 소소한 기회들이 찾아왔다.
쓰면서 나의 삶이 아주 조금씩 변했으니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지겹기보다 행복했고,
글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어 더 글을 열심히 쓰고 싶었고,
우연히 라디오 DJ로 발탁되어 1시간 동안 단 꿈을 꾸었다.(라디오 DJ 2탄 글은 조만간 남기겠습니다.)
꾸준히 쓰면서 늘어난 건, 노트와 노트북 용량 무엇보다 습관이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썼지만 소용이 없었던 필기도 있었다.
썼지만 가차없이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회사도 있었다.
썼지만 디테일이 떨어져 의뭉스러운 글로 혼란을 야기한 적도 있었다.
쓰는(write) 것은 참으로 쓰기만(bitter) 했다.
쓰기만하면 나아질(better) 것만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런 실패에도 좌절하기보다 좋은 점을 발견하고 뭔가를 꾸준하다보면, 분명 기회는 열릴 것이 분명하다. 가까이서 보면 참 암담해도 멀리서 보면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후임과의 약속을 조금씩 회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후배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중에 있었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대로 가지만은 않겠지만은, 무심코 툭 하고 튀어나오는 말이 사실은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한참을 고민한다고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민할 틈도 없이 툭 하고 튀어나오는 말이 가볍게만 여길 수도 없는 일이니까.
5년 전, 아직 다듬어지지도 않고 뭐든 미숙했고 -지금도 유리멘탈의 소유자고- 무얼 하더라도 자신있기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많지만 시간이 흘러 그 간격이 점점 좁혀나가는 중에 있다고 본다.
아주 작은 좋은 습관 하나를 가진 것이 어쩌면 말한 대로 삶이 이뤄져갈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것이 삶을 이루는 구심점이 되고, 그 구심점을 기준으로 삶이란 도화지에 컴퍼스를 꽂아 원을 그릴 수 있으니까.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기점으로 서서히 글쓰기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반경이 조금은 넓어진다고 해야할까.
나 같은 경우에는 인스타그램 독서계정, 브런치, 독립출판 등으로 글을 알릴 수 있는 곳의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글을 알릴 수 있는 곳이 서서히 확장되는 과정이다.
넓히다보면 꼭 글쓰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변을 넓혀나가게 된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쓰기 위해 매일 러닝을 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효과적으로 글과 친숙 할 수 있도록 매일 밤 12시 전에 1분의 짧은 시간동안 책 한 구절을 읽어주는 ‘1분 낭독회’ 를 하면서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담뿍 생각에 잠시 잠길 수 있도록 했다.
지변이 넓어지자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마케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있고 나의 포트폴리오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에 리뷰를 카드뉴스로 만들기로 다짐하고선 학창시절에 배우지도 않았던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다시 책이나 유튜브 혹은 지인을 통해 물어가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콘텐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콘텐츠를 만들다 실패해도 분명 되돌아올 수도 있는 지점이 있으니 일단 미약하게나마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쓰면서 책임의식도 늘어만 간다. 더 잘 담고 디테일을 챙길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