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지는 하늘을 기다리는 일(17/30)

by Shysbook

글을 쓰는 책상 바로 옆벽면에 노을지는 다리 위 풍경을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속에는 퇴근길로 차량들이 일렬로 다리 위에 서 있고, 다리 사이에 맑고 은은하게 타오른 노을이 하늘에 별과 달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듯했다. 날이 좋으면 내일 또 만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오늘 하루도 수고가 많았음을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오늘 해운대 백사장을 걷다가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멈춰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골든 스위트와 고층 건물들 틈새로 비치는 노랗고 불그스름한 노을이 마치 물감처럼 번져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저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채, 순간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에 취해 카메라 셔터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기다리는 일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임을 몸소 깨달았다. 기다림이 다음주로 한 주 유예되었다.’
-오은 <다독임>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있다. 아직 여문 나의 생각을 켜켜이 모아다 추수 때 곡식을 거두는 농부처럼 나는 결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조바심과 걱정이 앞서는 내게 기다리는 것이 다소 힘든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제본과 인디자인 원고를 동시에 검토하며 곳곳에서 크고작은 실수들이 보였다. ‘오탈자’ , ’맥락과 상관이 없는 글’, ‘폰트 크기나 굵기’. ‘잘못 표시한 내용’ 등등.. 막상 손에 잡히는 책으로 바라보니 나의 서툼과 부족함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필통에 붉은색 제트스트림 볼펜을 꺼내어 가제본 책에 여기저기서 부족한 부분을 체크하고 또 체크하다보니 책 한 페이지엔 낙서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들여쓸 부분’, ‘맥락과 무관한 글은 삭제해’, ‘띄어쓰기란 체크’, ‘단어 수정’ 등등..

겉으로 보면 온전한 글로 보이지만, 그 안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는 퇴고 작업을 하다보면, 내 글이 얼만큼 엉성한지

어떻게 고치면 더 잘 읽힐 수 있는지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나의 실수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대로 책을 냈더라면 엉성한 작가로 꼬리표를 달고 지냈을 테다. 글을 고치고 또 다듬다보니 매끄러워지는 과정 자체가 마냥 신기했다. 진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분명해지거나 아니면 어색한 부분이 바로잡히어 읽기 쉬워졌으니.


무엇보다 순간을 집중하게 되었다. 더 세심하게 글을 보고 체크하다보니 시간이 3~4시간이 훌쩍 지났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그 때가 오후 6시 무렵이었다.


왜 오은 시인이 기다리는 것이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인지 알 것만 같다. 완벽까진 아니어도 온전한 상태가 되기위해선 충분히 거쳐야할 관문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관문의 첫 서문을 열었으니 앞으로의 여정도 더욱 세심하고도 관심있게 기울일 수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물감처럼 번진 노을이 나를 반겼다.

나도 사람들 틈에 섞여 노을지는 해운대 하늘을 바라보며 고단했을 오늘 하루를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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