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 바야흐로 20년 전이다. 당시 학교에서 '충효일기' 라고 부모님 효도를 주제로 쓰는 일기를 검사하곤 했다. 나도 여기에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부모님과 연관(?)지어 억지로나마 썼던 기억이 난다.
이 일기를 쓰면서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와 비슷한 일기를 쓸 줄은 몰랐다. 꿀같은 연휴.부모님 몰래 내 아픔을 숨기고 이틀을 입원했던 기록을 적어본다. 효도는 커녕 몸을 함부로 다룬 불효자의 철없는 회고를 밝히는 바다.-
요 근래들어 식습관이 엉망이었다. 한 끼를 거하게 먹고 점심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주로 먹는 식사가 라면같은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었고, 나가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나 돌체라떼 같은 위 점막에 부담을 주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설상가상 밖에 나가면 과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루는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떡볶이 1인분에 쫄면 그리고 튀김 1인분을 시켜 그 자리에서 다 먹곤 했으니까.
그런 식습관이 나를 병원을 인도하게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이 흘러 오른쪽 하복부 주변이 슬슬 아파오더니 통증이 1주일 동안 지속되었다. ‘언젠간 낫겠지.’ 싶어 방치해뒀지만 도저히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집 근처 외과로 찾아가서 검사를 받기로했다.
피 검사와 X-RAY 촬영에 이어 CT촬영까지 거쳐야한다니 내 몸 상태가 이토록 심각했나 벌써부터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이러다 내가 ‘암’ 진단을 받으면 어쩌나 싶었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는 어느 병원 몇인 실에 있어야할 지 예약하고 유언장까지 머릿 속으로 구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튼 6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의사선생님께 최종 진단을 받은 결과 다행히도 ‘충수염’ 흔히 말하는 ‘맹장염’에 걸렸다고 말씀하셨다.(여기서는 정확한 명칭은 충수염으로 통일하겠습니다.)
문제는 내 충수가 보통 5mm 정도 되는데 지금 1cm 이상 늘어났으니 급히 수술해야한다고 하셨다.
충수가 이물질이 끼어서 그런지, 뭔가 쌓이고 쌓이다 빠지지 않으니까 충수가 늘어나 오른쪽 하복부 통증이 심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료받은 곳에서는 마취도, 입원도 할 수 없으니 근처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갈 것을 선생님이 권유하셨다.
진료를 마치고 CT촬영 결과가 담긴 CD를 영상의학과에서 받은 후, 진단결과표를 큰 종이봉투에 담아서 즉시 입원할 병원부터 찾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저렴하고 빠르게 수술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수술’ 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아 멘붕이 왔다. 살면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어딜 가야할 지도 몰라 막막했기에 휴대폰으로 부랴부랴 찾다보니 집에서 지하철로 8정거장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진료받은 병원에서 받은 자료를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다.
원장 선생님께선 초음파 검사를 한 번 하자고 하신다. 오른쪽 하복부에 젤을 바르고 기구를 가지고 이리저리 문질러보시더니 ‘ 진짜 아프셨겠어요.’ 라고 말씀하셨다. (속으론 왜 이제까지 병원에 안 오고 버티고 있었나? 생각하셨을 것이다.) 라고 의아한 표정을 짓기까지 하셨다.
초음파 진료까지 마치고나서 수술하기 전 입원 병실을 정해야한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4인실, 1인실, 특실 중 나는 1인실을 정했는데, 4인실로 하면 여럿이 모이면 생기는 코골이 소리, 떠드는 소리, 이어폰 볼륨을 최대치로해도 새어나오는 티비 볼륨 등등의 외부 자극을 잘 못 견디기 때문에 과감하게 1인실로 정했다. 1박에 10만원이라는 이야기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안그래도 생애 처음 수술받는 거 긴장을 늦추고 마음 편하게 회복하려면 1인 실이 아무래도낫지 않겠나 싶었다.
병실을 정한 다음, 의사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받을 수술이 어떤 수술인지에 대해 설명과 더불어 보호자 방문 여부에 대해 물어보셨봤다. 나는 보호자 방문은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는 기분 좋은 연휴에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까봐여서다. 오롯이 나혼자 왔다가기로 하는 배짱+고집인 셈이다.
배정받은 5층 병실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침대 하나에 화장실 티비랑 냉장고가 있는 말 그대로 1인실이었다. 수건이나 휴지 그리고 세면도구는 별도로 챙겨왔어야하는데, 나는 무작정 맨몸으로 온 탓에 이것은 수술 이후 다음 날 사기로하고침대 위에 놓인 환자복이 있기에 갈아입었다. 바지는 헐렁하고 윗옷은 딱 맞는 언밸런스한 옷을 입으니 우스꽝스럽기만하다.
옷을 갈아입고나서 간호사 선생님이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난생 처음으로 링거를 맞고,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4층으로 내려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대에 누워 전신 마취를 시작한다. 심호흡하라는 소리에 스읍…한 번 하고 그대로..
“환자 분 눈 뜨세요!” 철썩철썩! 눈을 뜨고 고개를 드니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킨다.5시 30분 즈음 들어간 거 같은데 수술이 생각보다 길어졌나보다. 전신마취를 하면 헛소리를 한다는데 나는 어떻게든 쥐어짜낸 정신력으로 ‘수술이 잘 되었는지’ 물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환자분 염증이 생각보다 심하네요.’ 라는 말에 ‘내 몸을 함부로 대했구나.’ 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마음이 더 아려오는데 손과 팔은 추욱 늘어진 인형팔처럼 힘이 없다. 졸음이 급격하게 밀려오고 마취는 풀리고 있고.. 숨은 입으로만 쉬어야하니 이 때부터 내 몸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입은 바짝 말라오고 마취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할 때 즈음 의식이 회복되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부터 고통의 시작이었다.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이 통증을 견뎌야했다. 충수가 잘린 부위로 마취가 풀리니 속에서 통증이 밀려오는 듯했다. '아아..아아..' 아픔은 계속되는데 밀려오는 졸음을 애써 참아야하는 것이 나에겐 큰 곤욕이다. 얼른 잠에 취해 이 고통이 멎어야하는데, 잠시라도 지친 몸을 쉬게하고 싶은데.. 왜 잠까지 못자게 하는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나 이러다 제때 퇴원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