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소리를 듣다.
충수일기-2-
아침이 밝았다. 11시가 되어도 잠을 자지도, 물도 마시지도 못하고, 바싹 말라가는 혀와 풀려가는 마취에 온 몸이 꼬여버릴 것만 같았던 밤을 무사히 넘겼다. 창가엔 해가 떠오르진 않았지만 사방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을 넘기고 밝아질 일만 남은 것인가.
아침. 간호사 선생님이 주기적으로 혈압을 재고, 링거에 약이 떨어지면 약을 채우기를 반복하셨다.
주,야로 교대 근무하는 일이 무척 고된데 환자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무척 고마웠다.
아침에 일어나 9시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수술 자국 소독을 받으면서 들었던 말이 있다.
‘아침에 가스가 잘 나와요?’
나는 “조금 나온다.” 라는 말에 ‘며칠 더 입원해야할 거 같다.’ 라는 말에 정신이 번뜩여졌다.
가스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장 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채 폐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있지만
‘일단 빨리 이 병실을 나가야했다.’하루에 10만원이나 드는 1인실인데 또 지갑에서 돈이 나갈 수는 없다.’ 는 현실의 문제가 내 건강보다 커졌다. 뼛속까지 자본주의의 노예로 물들어버린 나는 내 목숨을 돈에 저당잡힌 듯했다.
아무튼, 가스가 잘 나와야지 식사를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나는 입원날짜가 길어진다고?
어떻게하면 가스를 배출할 수 있을지 물어보니 선생님께선 자주 걸어라고 하셨다.
장 운동을 활발하게 하려 병실 바깥을 왔다갔다 거릴 겸 입원 기간동안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병원 앞 편의점을 가기로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 병원 건물 근처와 편의점 주변을 어슬렁거리자 링거가 걸린 폴대를 한쪽 팔로 힘겹게 끌고다니면서 환자복 차림으로 걸어다니는 사람은 유일하게 나 밖에 없었다. 멀끔한 옷차림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눈에 띠는 ‘환자’ 였다.
연휴 직전. 이 시간에 다들 직장으로 부랴부랴 발걸음을 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무겁다.
내 부주의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는 왜 저 무리들처럼 일을 할 수 없을까라는 스스로의 무지를 탓하기도 했다. 그들에겐 건강한 몸이 있고, 직장에서 일할 능력이 있으니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일을 해야할 사람이 병실에 갇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걸까하고 답답함이 밀려왔다.
답답한 마음으로 편의점 안을 들어서자마자 마실 물 두 통, 티슈 하나 그리고 마스크 2개를 샀다.
냉장고와 매대에는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먹던 과자와 음료들이 즐비했지만, 아프니 이마저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에 내 입은 마치 사회에서 훈련소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과거의 찌든 떼를 벗겨내는 듯, 이제는 속을 깨끗하게 하자는 의미인건가. 답답함이 몰려온다.
물건을 갖고 계산을 하는데 직원 분이 ‘비닐 필요하시죠?’ 하시며 비닐에 물건을 담아드린 후 링거 폴대에 걸어주셨다. 따로따로 들고가기엔 한 손엔 링거가 연결된 폴대를 다른 한 손은 물건을 움켜잡아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했는데, 직원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문 밖을 나갈 수 있었다.
내 속이 이토록 엉망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한 달 동안 멀쩡해보여도 속은 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정도로 나를 방치한 채 하루하루를 덜 건강하게 살아온 것만 같았다. 왜 사람들이 식사를 규칙적으로하라, 건강하게 먹어라하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침대신 커피나 인스턴트로 떼우며 혹은 한 끼를 과하게 먹다보니 내 위와 장이 염증이 심할 수 밖에. 그러고보니 아프고나서부터 방귀가 잘 나오지 않았다. 장이 꾸르르륵 거리는 소리조차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장폐색이 생기면 위험하니 최대한 오래 걸어본다. 같은 곳을 반복해서 걷고 또 걷다가 슬슬 몸이 피로해질 때 즈음 다시 병실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할 일 없이 그저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은 둥둥 떠다니며 자유로운데, 나는 침대에 누워 꼼짝없이 있구나.. 하지만 생각은 구름처럼 흐르는구나.
나쁜 생각을 조금 덜어내려 책을 꺼낸다. 조금씩 펼쳐 읽어본다. 저자가 남긴 생각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장에서 꾸루룩 거리다 괄약근 쪽으로 신호가 온다. 방귀가 조금씩 푸숙 나온다.
내 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아, 이 사실을 때 마침 혈압을 측정하러 온 간호사님께 말씀드렸다.
그제서야 저녁부터 일반식이 나올 것이고 더불어 물을 조금씩 마실 수 있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장의 움직임도, 꾸루루룩 거리는 소리도, 푸숙 거리는 소리도 이렇게 깊이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그 소리가 실은 내가 살아있다라는 신호라는 것을. 별 거 아닌 일에도 ‘충분히 잘 해오고 있어.’ ‘회복하고 있어.’ 라고 마음의 소리를 들었던 날. 무기력한 육체에도 분명 조그마한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이른 시기에 퇴원을 했고 집에서 푹 쉬며 죽을 먹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걸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별다른 무리 없이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아파야 내가 누리던 것이 당연하지만은 않으면서도 내가 그간 많은 일을 해오고 유지해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낮출 필요가 없구나.
무엇보다, ‘혼자서 잘 견뎌왔구나. 잘 해왔다.’ 라고 어색하게나마 다독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