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해 묵혀둔 어두운 말(29/30)

말을 못하면 세상 살이는 포기해야하는건가.

by Shysbook

기억을 세세하게 푸는 사람이고 싶었다.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으로 상황이 그려져 상대를 설득할 수 있길 바랐다.어제 갔던 카페 분위기는 어땠고, 커피 맛은 어떤지 뭐가 맛있었는지 아주 섬세하게 풀어내는 사람이자

상대를 설득해서 어떻게든 내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내는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역부족이었고, 말을 어버버하다가 말려들다가 존재마저 부숴져버리는 일이 다반사인데다 서서히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말보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아니, 정확히는 글로 도망친 사람이라고 해야할까.

말을 해도 늘 마무리가 아쉬워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설령 작심하고 말을 오랫동안 할수록 질질 늘어져버리는 기분에 상대를 질리게 만들거란 두려움이 튀어나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끝까지 하기가 힘들었다. 말은 나에겐 높다란 장벽을 뛰어넘는듯한 도전 그 자체였다.


나의 말은 쉽게 툭 끊어지기 십상이었다. 생각은 많은데 괜시리 어떤 말을 하면 상대가 상처를 입을 수 있을거란 우려까지 더해지니 말을 하는 횟수도 내용도 빈약해지기 시작했다.


말의 빈약은 곧 사회성 부족으로도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동료들과 말을 꺼냈을 때 그나마 공통 주제가 있으면 그 안에 말을 담아 레퍼토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음에 있어 그나마 안전했으니까.


반면 접점을 찾기 힘들거나 혹은 처음 만난 곳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를 때가 많아 입을 닫곤 했다. 자주가는 서점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앞에 서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말을 꺼내어 편하게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런 햇수가 잦아지다보니 표현마저도 퇴행하는 것만 같았다. 말도, 행동도, 말을 이루는 단어조차도 하나 둘 기억속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즉각즉각 꺼내쓸 대상이 없으니 빈자리를 채운 것은 공허 뿐인 외로움이었다. 외로운 감정은 착각을 일으켰다. 마음이 헛헛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심어주었으니까.

나는 그 외로움에서 벗어났어야했다. 어떻게든 말을 몇마디라도 꺼낼 수 있도록 했어야했다.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화술을 따라해보고, 책을 사서 읽고 따라해봐도 부질 없는 짓이었다. 내 마음의 그릇이 좁아서였나. 아니면 말을 담기엔 아직 마음이 여리고 순진해서일까.작은 말이라도 툭툭 뱉어낼 수 있도록 조금씩 시도는 하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단타에 지나지 않는다.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말이 장거리 러닝처럼 이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부던히 다듬어야겠지.


드라마를 보거나 밖을 나서더라도 어딜가서 굶어죽지 않고 처세에 능한 사람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 혹은 제 밥벌이 겨우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은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건가 싶다. 할 말 다하고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대로 살아남는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지 않고선 쉽게 이용당하며 사는 것만 같다고 짧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다.


세상에 보여지는 것이 말뿐이라 속고 속이는 일이 당연시 되는 것만 같다.그래서 말을 잘 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만 같다.

무례한 사람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것을 지켜내야지만 살아남는 것이 세상살이의 처세라는게 너무 잔인하고 토악질이 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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