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감정을 복잡하게 풀어내도 되는 건가
자존감, 이 단어는 늘 인간관계에서 항상 대두되는 개념인 듯하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넘어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근본적인 의미인 것 같으니.
자존감을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나 자아 인식으로,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형성된다는 상투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념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사람을 대하면서 이 사람의 기본적인 자존감에 대해 무의식적인 평가를 하게 되면서 가치를 매기고 있는 걸로 보인다. 감히 내가 이 타인에 대해 평가를 가져도 되는 가에 의문을 품겠지만, 글쎄. 마음의 뒤편에다 숨기면서 본인은 평가의 척도에 대해 기준이 없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필자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 아님을 여기서 말해두지만, 조금 겁 없이 더 적어보자면 이를 높여보기 위해 스스로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았으나 여전히 어렵다. 타인을 통해 높여보는 것은 연애 같은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었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만, 위의 관계는 상당히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추천하지는 않는다. 극복하면 연애의 의미를 넘어 결혼까지 관계 정립이 되는 듯해 보이지만 관계의 확실성이 자존감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에. 관계는 관계일 뿐, 개인의 궁극적인 인격체를 완성해주진 않는다.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수히 많은 관계들이 얼마나 상호작용하며 오가고 있을까. 때론 나의 유약한 자존감을 내보이기 무서워 자존심이라는 다른 개념으로 피력을 해보고자 했으나, 자존심이 높다거나 세다는 건 요즘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로 쳐주지는 않는 듯하다. 다른 예시로 “있는 것도, 되는 것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센 OO"라는 표현을 통용하니, 위 문구를 한 번쯤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필자와 함께 자기 객관화를 잠깐이라도 해보도록 하자.
참 웃긴 것이 처음부터 성정이 그런 것도 아니었을진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했을까. 자존심도 자존감도 그렇게 크게 고민을 처음부터 하진 않았을 터인데, 스스로에게 확신이 생기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런 물음을 하루에도 한 번씩 되뇌어 본다. 태어나서 최초로 시도했던 인간관계는 내가 어떤 식이었을까? 이를 통해서 지금의 내 본질이 이렇게 만들어졌던 걸까?
위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도 어차피 정답은 늘 스스로에게 있다 말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받아도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도 본인이고, 어차피 본인 스스로 내릴 답이기에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조차 이미 답이 있는데 뭐 하러 물어보느냐 한다. 소위 ’ 답이 정해져 있으니 너는 말해 ‘처럼 말이지. 오늘도 이렇게 듣고 싶은 답을 던지면서 내 자존감에 대해 또 답을 찾아간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