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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이음 Jan 02. 2022

전지적 딸 시점-딸네 집

3세대 여자들의 이야기

동생이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시골 벽돌집을 리모델링하여 예쁘게 꾸며놓았다는 전화를 주었다. 그동안 가족들과 상속 문제며 세금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어머님의 체취가 묻어나는 그 집에 대해 큰 애정을 주지 않던 동생이 내일모레 정년퇴직을 준비 중인 남편을 위해 기꺼이 시골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우리 자매는 나이 많은 신랑을 만나 시어른들을 모시고 산 공통점이 있다. 시어른과 같이 산다는 것은 그분들의 모든 추억을 단시간에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엄청난 무게감을 가지게 한다. 그 어려웠던 시절 우리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어설픈 시댁 살이를 해나갔고 그런대로 잘 버텨서 지나왔다. 리모델링 한 그 집도 여러 가지 추억을 안고 있기에 나도 몹시 궁금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돈어른이 계신 딸네 집을 간다는 것은 친정엄마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도 안 오실 때가 많았고 거의 딸네 집은 왔다가 잠시 머물다 가는 그런 곳이었다. 특히 혼자 사시는 엄마에게 바깥사돈이 계신 우리 집은 더욱 오기 어려운 장소이었고 집안의 대소사, 즉 손주, 손녀들의 돌잔치나 친척 결혼식 등을 보기 위해 오셨다가 잠시 머물다 가는 그런 장소였다. 그랬던 엄마가 이번에는 동생네서 2박 3일을 머물게 되었다. 


목요일 저녁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언니는 언제 와?? 엄마는 금요일 저녁에 모시고 와서 주무셔서 일요일 오후에 가실 건데 엄마가 혼자 계시면 심심하니 빨리 와서 같이 있어줘"라는 명을 받고 토요일 아침 일찍 7시 인천을 출발하여 9시 반 정도 온 마을에 성애가 하얗게 내린 공주에 도착했다. 싸늘한 공기가 마스크를 벗자  내 코끝을 지나 이마를 거쳐 정수리에 멈춰 번쩍 정신이 들게 하였다. 역시 시골 공기의 상큼함은 도회지의 비염을 뻥 뚫려 버리는 신기함이 있다. 


동생 내외와 엄마는 내가 오면 아침을 먹기 위해 아침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시골에서 담가온 간장게장과 김치가 아침 식욕을 높여주었다. 제부는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간장게장 담그는 법과 장 담그는 법을 전수해 주셔야 한다고 요청을 드리는데 엄마는 당신의 요리는 그냥 하는 거라면서 겸손해 하지만 우리 4남매와 손주들은 밖에서 간장게장을 먹지 않는다. 엄마의 게장은 게 비린내가 나지 않고 게 살이 살아 있다. 그런 맛을 일찍 알게 된 우리 집 두 딸도 외할머니의 간장게장 맛은 일품이라고 엄마도 꼭 배워야 한다고 노래를 부른다. 정말 나에게 어려운 과제이지만 도전해보려 한다. 


엄마는 딸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시면서 본인이 여행 말고 자식 집에서 2박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며 조그만 캐리어 가방에 베개, 각종 약들과 본인이 사용하실 모든 물건을 꼼꼼히 챙겨 오신 것을 보여주시면서 준비하셨던 과정을 이야기하시면서 마냥 웃으신다. 새롭게 꾸민 집을 둘러보며 동생네의 호기로운 귀촌 계획을 들으며 엄마는 귀촌생활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 시골살이에서 묻어져 나오는 경험담을 들려주시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집 앞에 있는 논에 과실수 심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경험을 나누어 주셨고 시골 예절이 걱정이 되었는지 이웃들과의 관계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셨다. 


날이 추워져 엄마가 가시고 싶었던 공산성은 올라가 보지 못하고 차 안에서만 바라보고 곧바로 민물장어, 닭발집, 대추차집 등 공주에서 유명한 맛집 투어에 들어갔다. 시골에 혼자 계시다 보니 접종 QR을 사용할 일이 없으셔서 카톡에도 QR이 없어서 그걸 깔아 드렸더니 그리 좋아하신다. 이번에 이런 것도 배워가니 이제 어디를 가도 되겠다며 든든해하신다. 


어렵기만 한 딸네 집에서의 2박 3일은 딸들과의 어린 시절 추억여행에서부터 손주 손녀들의 미래까지 세워보는 알찬 시간이었다. 시골에 혼자 계시고 코로나 시국이라 4인 이상 모이기 어렵고 어디를 가기도 어려운 상황에 딸들과 2박 3일은 멋진 여행이셨단다. 캐리어 가방이 무색하지 않은 여행이셨다고 하니 우리들도 기쁘고 자주 이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동안 딸들이 시댁 어르신들과 같이 사니 딸네 집이라고 마음대로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고 아들네 보다는 사위가 더 어렵다는 엄마이기에 이번 여행은 남다른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은  엄마가 생애 처음으로  딸네 집에서의 2박 3일을 보낸 시간이었다. 나이 들 수록 활동량이 줄어들고 행동반경이 좁아지면서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는 시점이 있는 듯하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그 시기가 빨리 오는 사람들도 있고 늦게 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80살을 전후해서 오는 경우가 많은듯하다. 혼자서 극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족 공동체 속에 살아오셨던 분들이라 외로움과 혼자라는 감정으로 힘들어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어 그런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려면  주변에서 잘 살펴드려야겠다. 코로나 시국에 더욱 간절해진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인듯하다. 세대 간의 경험이 공유되어야 할 이야기도 넘치는데 그런 게 점차 없어지면서 세대 간 이야기도 없어진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나누어 볼 수 있도록 자주 연락드리고 좋은 경험의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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