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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길이음 Jan 06. 2022

전지적 딸 시점 - 보청기

3세대 여자들의 이야기

벌써 5~6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학교 앞에서 매점을 하시던 엄마는 주변에 큰 공공기관이 들어서고 24시간 편의점이 2개나 들어오면서 매점을 접게 되셨다. 고등학교 앞이라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종일 매점에

매달리시면서도 애들 보는 게 좋다시더니만 매점 문을 닫고 1개월도 안되어 너무 우울하고 죽고 싶은 생각도 난다며 전화를 주셨다. 일평생 아침 일찍 나가 농사를 짓다가 중년 이후 시작한 매점 일도 농사짓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을 해 오셨던 터라 갑자기 생긴 시간에 대해 두려움이 앞서신듯했다. 


그나저나 자식들은 다 타지에서 살고 있고 혼자 있으신 시간이 많다 보니 더 우울감이 찾아오신듯하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때 마침 방송통신대학교 입학 신청 시기라서 은근슬쩍 엄마에게 공부하시는 것은 어떠냐고 여쭈어 보았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장녀로 태어나 집안의 남자들은 대학까지 보내주는데 본인은 중학교를 못 가신 것이 한이 되어 매점으로 바쁜 와중에도 검정고시를 치러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셨었다. 같이 공부한 동기들이 다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때 생업에 묶여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시고서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남아 있었던지 도전하시겠다고 하셨다. 


방통대에 원서를 넣는 순간부터 나와 우리 딸들은 초등학교 입학 준비하는 학부모처럼 학습 준비에 돌입했다. 그중에 하나가 보청기였다. 그 당시에 그렇게 청력이 나쁘지 않았건만 엄마는 자신이 처음 듣는 단어들이 생경하고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자신의 청력 이상이라고 생각하시고 '보청기'를 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셨다. 동네 친구가 코스트코에 있는 보청기 판매점에서 했는데 괜찮었다며 꼭 거기서 하셔야 한다고 하셨다. 아니 이비인후과에 가셔서 제대로 진찰을 받고 하셔야 한다고 그리 설득을 드렸건만 '보청기'는 거기서만 하는 냥 그 아주머니가 하신 곳에서 꼭 하셔야 된다 하셔서 광명에 있는 '코스트코'를 찾아갔다. 


신기하게도 거기에 보청기는 일명 '미국산'이 주를 이루었고 더군다나 아이폰과 연결하면 이어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보청기가 있었다. 친구에게 지기 싫어서 꼭 코스트코에 와서 해야 한다고 했지만 막상 와 보니 본인한테 그리 필요한 거 같지 않으셨다고 생각되어 나중에 다시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길래 "무슨 소리냐? 여기까지 왔으면 그냥 맞추시고 가셔라....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그리 우겨서 거의 200만 원이 넘는 보청기를 맞추시게 되었다. 막상 맞추고 내려가셔서 써 보니 귀찮고 당신 귀에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으신다면서 그래도 잘 들린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보청기는 다시 깊숙이 잠들게 되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를 뵈니 무언가를 꺼내어 주섬주섬 맞추더니 귀에 꽂으셨다. "엄마, 그게 뭐여요?" 물으니, "얼마 전 이비인후과에 가서 전에 가지고 있던 보청기를 가지고 가서 물어보니 사용법을 잘 알려줘서 요즘 밖에 나갈 때나 사람들 만날 때 하고 다닌다"라고 하신다.  혼자 계실 때는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들 만나고 대화할 때 사용하니 좋다 하시면서 그래도 그때 맞춰 놔서 다행이라시란다. 오래간만에 본 딸과 이야기 나눌 때 잘 듣고 싶으신 마음으로 그것을 꺼내어 착용하신 것이다. 예전에는 잘 못 들으시는 것 같아 큰소리로 이야기해야 하니 제발 보청기를 차시라고 말씀드려도 나는 아직 잘 들린다고 하시면서 보청기 착용을 거부하셨었다. 이제 조금 편안해지셨는지 스스로 찾아서 착용하시면서  나한테 작게 말해 보라시는 엄마의 환한 미소가  왜 그리도 가슴 찡한지 모르겠다. 


나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 

나이 듦을나의 나이듦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 맞춰 또 다른 나를 맞이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엄마는 그 어려운 일을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신다. 조금씩 욕심을 버리시면서... 그래서 감사하고 고맙다..... 

삶의 여정이 내 마음 같지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는 용기를 내어 주는 분이기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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